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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tenjohn Aug 25. 2016

이름 없는 편지

노상 습득 노트 탐독기 1




프롤로그. 


 길을 걷는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도 나와 같은 길 위를 걷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꺼운 노트가 하필 내 발에 차인 건 그저 우연이었다. 나는 발에 차인 노트를 주워 들고 주변을 살펴봤으나, 무엇인가 잃어버린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모두 가던 길을 가고 있었고, 내가 손에 든 노트에도 역시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 노트를 다시 그 자리에 내려놓든지, 어딘가에 버리든지, 혹은 가지고 가야만 했다. 겉에 제목도 이름도 연락처도 없는 노트를 그렇게 영원히 들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난감한 마음으로 스르륵, 노트를 넘겨보았다. 세월이 제법 묻은 노트의 낱장들에는 검거나, 또 파란 글씨들로 첫 장부터 거의 끝까지 많은 글들이 쓰여있었다. 이렇게 두꺼운 노트에 이렇게나 많은 글들이라니. 내가 노트 한한 권을 남기지 않고 다 써본 것은 언제였을까. 문득 초등학교 방학의 끝무렵 억지로 밀린 일기를 써낼 때가 떠올라버렸다.

 길에 떨어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지 길바닥에 뒹굴어 흔적은 없는 그 노트를 굳이 가방에 넣고 집에 들고 온 것은 넘겨 본 첫 페이지가 무언가 연애편지였기 같았기 때문이어서는 아니다.(라고 변명하고 싶다... 만, 남의 맨 감정을 들여다보는 죄책감 섞인 즐거움이란!) 굳이 가져온 이유를 말하자면, 꽤나 두껍고 수많은 글들이 담긴 이 노트에 약간의 경외심이 생겼기 때문이고(내가 해보지 못한 것이니까), 왠지 보관을 잘하고 있으면 내가 이것을 주인에게 찾아줄 수도 있을 거라는 뭐 그런 생각 때문이라고 하자.    


 집에 돌아와 밤이 되었고, 난 첫 장을 펼쳤다.




첫 번째 글이름 없는 편지


 오늘 날씨도 무척 덥습니다더위는 잘 피하며 지내나요여름에도 그 속이 시원한 건물들이 참 많지만어쩔 수 없이 볕을 맞으며 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거나, 계속 에어컨을 켜놓을 수 없는 밤이면 더위와 피곤에 절어 잠을 잘 까 봐 이런저런 생각에 또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간밤의 잠결에는 소나기가 퍼붓는 즐거운 소리를 들었습니다아침에 집에서 나설 때는 벌써 그 비가 내린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긴 했지만분명히 밤에 들리던 것은 소나기가 내리는 소리였습니다간밤에 빗소리를 듣지 못한 누군가는 벌써 바짝 마른땅을 보고 제게 거짓말을 한다고 할지도 모릅니다만나는 소나기의 또 다른 증거를 찾았습니다.     


 매일 걷는 길그 보도블록 아래에 아직도 잠자고 있었던 씨앗이 있었나 봅니다그 씨는 오랫동안 더위와 싸우느라 웅크리다가 간밤의 소나기를 맞고는 불쑥 싹을 틔운 것이 분명합니다보도블록의 틈에서 비어져 나온 그 싹을 나는 다리가 저리고 볕에 목덜미가 빨갛게 익어갈 때까지 몇 분이나 쪼그려 앉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사람들이 나와 그 싹을 무심하게 지나갔지만오히려 더 좋았습니다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 같았으니까요. 

    

 혼자만 알고 있거나 간직한 귀한 것혹은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그렇다고 믿는 것에는 애정이 생기기 마련입니다작은 소행성의 '어린 왕자'도 자기 별로 날아온 장미 한 송이에 온 마음을 쏟았고고작 평화 시장 앞에서 줄지어 선켜지지 않는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서울, 1964년 겨울>의 주인공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나는 곧 일어나야 했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싹에 이름을 붙이기로 하였습니다자기가 사랑하고 의미가 있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사람들의 오랜 버릇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中

 싹에 이름을 붙여주고 뿌듯한 마음으로 한참 길을 따라 걷고 있었을 때 나는 문득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한참 이 묘한 기분의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에언젠가 당신과 함께 보았던 영화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그는 알츠하이머로 머릿속에 담긴 것들을 잃어가고 있었지요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잃어버리기 시작했던 것은 '명사(名司)'였습니다그건 '사물들의 이름'이지요의사에게 절망적인 진단처럼 하나씩 사물의 이름을 잊던 주인공은 이름으로 사물을 기억하는 대신에 사물들이 가진 속성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옮겨보기 시작합니다그야말로 ''를 쓰게 된 것이지요.     


 아마 이 영화가 생각난 것은무엇인가에 애정을 쏟고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특히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오해가 많았던 내 지난날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부모들은 아이들에게반려동물을 들인 사람들은 모두 그 동물들에게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둘만의 특별한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연인들은 서로에게 애칭을 서로에게 붙이고기업에서는 많은 돈을 들여 상품의 이름을 정합니다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과 같은 것 아닐까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간편한 소유의 방식이기도 하지만또한 오해의 시작임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습니다누군가혹은 무언가의 이름을 외우거나 붙이는 일보다누구인지무엇인지 이해하려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어떤 것의 이름을 안다고 하여 알고 있다고 믿었던 오만하고 부끄러운 날들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지요내가 이름을 붙일 만큼 이해하고 있는 것들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는 것그래서 그 싹에 내가 이름을 붙여도 되는 것인지 갑자기 불안해졌던 겁니다.   

  

 이 편지에 당신의 이름을 쓰길 망설이다 결국 쓰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돌이켜보면이해의 노력을 게을리 한 탓에적어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질 못한 탓에나는 당신이라는 사람을 실제로는 잘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나를 일컫는 세상의 말들도 어쩌면 내게 속한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자기의 이름을 내던지고 속세를 떠난 사람들의 마음을 왠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나니 밤이 제법 깊었다. 뭔가 달짝지근하고 살짝 민망하고 킥킥 웃음이 날 것 같은 이야기가 적혀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누군가에게 보내는지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편지를 쓴 사람의 이름도, 받는 사람의 이름도. 어쩌면 이건 말 그대로 연습장, 그러니 편지지에 옮겨 적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적어도 편지 봉투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이라도, 받는 사람의 이름이라도 적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여기에는 이름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이 노트의 주인이 편지를 쓴 사람은 그가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둘 사이에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 있었는지, 편지 봉투에는 과연 두 사람의 이름이 있었을지, 혹은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없었을지, 받는 사람의 이름은 없었을지, 보냈을지,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알만한 사이였겠지, 혹은 직접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겠지. 없는 것은 두 사람의 이름뿐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궁금해진 것이 너무너무 많았다. 하긴, 이름이 적혀있었던들 내가 무엇을 더 알 수 있었겠는가.          


* 이창동, <시>(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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