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_ 모바일과 인쇄의 중간에서...
인쇄물 디자인만 담당해왔고 그쪽일만 능숙하게 해왔던 사람이
인공지능, 부동산 빅데이터 스타트업에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 한 가지를 풀고자 한다.
해상도의 비극이 시작됐다
이번 미션은 인쇄물에 익숙한 나에게는 수월한 업무였던 편에 속하는 X배너.
뭐 그쯤이야 하고 있었는데...
"우리 앱을 소개하는 X배너였으면 합니다"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X배너는 기존에도 해오던 업무라 어떻게 해야 최적의 사이즈로 작업할 수 있는지는 계산이 다 되어있던 편이었다. 홍보 디자이너에게는 X배너의 전설이 하나 내려오는데..
'실제 사이즈인 600X1800mm를 1:1 사이즈로 작업을 하면 반드시 뻥이 난다~~'는 오랜 나의 선배들의 가르침이었다. 실제로 작업을 하다가도 컴퓨터가 용량을 따라오지 못해 마우스 커서가 모니터의 바다에서 아주 느긋하게 유영을 하는 모습을 본 목격자이기도 하다.
고대 선배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많은 연구를 하셨으니, 300X900mm 300 dpi를 이용하기도 하고
X배너를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프로그램으로 작업을 하여 축소판 작업을 했다가 뻥튀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선배들 덕택에 지금의 나는 공식처럼 배너 작업을 하곤 한다.
이렇게!! 이렇게!! 능숙했던 나에게 해상도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72 vs 300
앱 소개 배너이니 열심히 화면 캡처를 받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거기서부터 비극의 시작이었다.
캡처이미지를 X배너 판형으로 끌어온 순간...
"에게?" 마치 마법이라도 걸린냥 개미 똥꾸멍 만해져 버린...
그때 알았다. 난 인쇄물 디자이너였고 여긴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이용한 모바일/웹 상품을 다루는 회사!라는 것을... 그동안은 정말 해상도가 아주 높은 착한 해상도 300 친구들이 나의 주위에 있었는데...
지금 현재 나의 주변엔 몸뚱이가 아주 아주 아주 가벼운 해상도 72 친구들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머리가 멍~ 해지기 시작했다. '아 어떡하지... 망했다..'
한동안 멍을 때리다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최대한 키울 수 있는 만큼 키워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그래... 얼핏 보면 모를 거야...'
정말 그래서는 안되지만 내면에서의 원만한 타협을 못 이기는 척 받아주며 작업을 시작했다.
내면의 타협은 삽질의 지름길
내면과 타협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수도 없이 많이 해왔다.
특히 인쇄물이 받아보았는데 오타가 보이는 순간... 그때부터 가슴은 콩닥콩닥해지고
이를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누군가 말을 걸면 모른 척 연기를 해야 하나... 온갖 잡생각을 다 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내면과 타협이 협상된 순간 돌아오는 건 호통뿐이었다.
이를 그렇게 알고 있었으면서도 잘 안 되는 게 현실이었다.
이번에도 그랬었다.... '모르길 모르길... 넘어가길... 넘어가길....' 그 순간만큼 그렇게 신이 간절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디자인을 가져갔는데..
맙소사!!!
나만 빼고 다들 안다......;;;;;
"이거 해상도가... "
"하하... 그렇죠? 다시 손봐볼게요..."
그럼 그렇지...
그렇게 나의 세 번째 삽질이 시작되었다.
미련해도 정직하게
수많은 잔머리와 꼼수로 단련되어온 나에게 항상 돌아오는 교훈은 미련하지만 천천히, 돌아가더라도 정직하게 였다. 그걸 알면서도 마녀의 꾐에 넘어간 나는 항상 그만한 벌을 받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것은 바로... 모바일 화면 고해상도 재작업!!!!!
업체서 해상도를 좀 높였다고 줬는데도 그래도 부족했다..
아.. 나의 300들.... 그립구나...
천천히 앉아 캡처받은 이미지 중에 쓸만한 이미지로 몇 장 걸러내고 포토샵 프로그램을 켰다.
해상도는 무조건 300으로 판형을 잡고 원본 파일에서 빼낼 거 빼내고 추가 재작업하고 그렇게 3~4일의 시간이 걸렸다. 디자인은 일단 뒷일이었다. 해상도 뇨오석을 잡는 것이 먼저!
그렇게 하나둘 데이터가 쌓여갔고, X배너를 작업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의 파일이 쌓인 다음에야 나는 디자인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부분을 앱과 적절히 설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을 하다가 '걸리버 여행기'가 생각났다. 우리 로빅 앱을 만드는데 까진 수많은 노력과 시도가 들어갔었으니 그 장면은 소인국의 사람들처럼 묘사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앱 화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부분!
핸드폰 이미지에 캡처 이미지를 놓으면 하나밖에 못 넣고... 그러기엔 보여줄 기능들은 많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구글링의 힘을 얻어보기로 했다.
검색명 : mobile
나의 신 구글 님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수많은 모바일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그 안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보통 핸드폰을 검색하면 예쁘게 찍은 핸드폰 사진들이 가득 나올 건데 내가 여태껏 느껴본 바로는
그 이미지들 속의 코어를 잘 발견해 내는 능력이 디자인 작업을 수월하게 풀 수 있는 지름길 같다.
핸드폰 이미지들을 쭉쭉 넘기다 보니 어떤 각도로, 어떤 기법으로 했는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나의 레이더망에 얻어걸린 누워있는 핸드폰 구도.
그 구도로 핸드폰을 눕히고 손수 재작 업한 캡처 이미지들을 얹혀 작업을 시작하였다. 점점 하다 보니 재미도 있어서 신나게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X배너!
내 눈에만 이뻐 보여도 어쩔 수 없다. 내 새끼니깐!
인쇄물 디자이너가 모바일을 주로 하는 회사에 들어갔을 때 첫 번째 장벽인 해상도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럴 땐 재작업을 권장한다.
이미 작업물이 나와 있을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재작업이지만.. 초기 밑단에서의 작업이라면 처음부터 약간 높은 해상도로 작업을 했다가... 버전을 내리는 방법을 추천한다.
또한 포토샵강의도 나가는 나로서 수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효과적인 실무 적용사례를 발견하게 되는데 웹/앱 상의 모든 작업물이 도형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저해상도에서 고해상도로 올라가는 건 어렵지가 않다. 여러 테스트를 해본 결과 도형 툴은 벡터 방식이라 화면을 키워도 해상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디자이너 겸 강사인 내가 보증한다.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면서 매 미션이 어찌도 이리 다양하고 벽에 부딪히는 것도 다양한지..
너무나 스펙터클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신은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 이번에도 삽질 하나 배웠으니 다음 삽질을 위해 또 떠나볼까나?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