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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Apr 10. 2023

꿈의 입구

첫 인터뷰의 실패 이후에도 나는 몇 명의 다른 미국 현지의 리쿠르터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동일한 패턴으로 계속 떨어졌다.


나는 이렇게 무작정 맨땅에 헤딩하듯이 부딪히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느꼈다.

이렇게 하다가는 계속 시간만 가고 죽도 밥도 안된다.


일단 나는 현재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일 하고 있는 한인들은 어떻게 현지에서 취업을 했는지에 대한 리서치를 해 봤다.


그 결과 알아낸 사실.

역시 미국에서 유학한 후 취업한 케이스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유학이라…

나도 한때는 유학을 꿈꾸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나를 유학을 보내 줄 정도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그 당시엔 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을 접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이라도 유학을?


그러기엔 40대 중반인 내 나이가 너무 많다.

경제적인 부담은 또 어쩌라고.

나 혼자 외벌이로 살고 있는 빠듯한 우리 집 형편에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나 혼자서 기러기 유학생활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뭔가 주어진 내 상황에 맞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일단 나는 회사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사장이라면 어떤 사람을 뽑겠는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리고 특히나 실리콘밸리는 인재가 넘쳐나는 곳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IT 종사자들과 디자이너들이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나처럼 꿈을 꾸고 지원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취업시장 환경에서 현지인들과 동일하게 경쟁해야 한다.


일단 현재 상황에서 내가 그들보다 불리한 점 몇 가지를 나열해 봤다.


1. 적지 않은 나이

2. 부족한 영어실력

3. 신분상의 자격요건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암담하다.


좋아, 그렇다면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관점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첫째, 나이가 많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이 분야에서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취업 시 나이에 대한 제한이 크지 않으니 내 많은 나이를 ‘풍부한 경험’이라는 측면으로 바꿔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장점이 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더 어려 보인다!)


둘째, 부족한 영어실력은 최대한 이를 메꾸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인터뷰를 위해 내 작업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최대한 잘 설명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나는 디자이너이니 말보다는 이미지를 강조해서 커뮤니케이션하자. 즉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부족함을 비주얼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메꾸자.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세 번째인 신분상의 자격요건을 해결하는 것이 문제다. 즉,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신분을 확보하는 것.


신분확보라…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살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하게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현지의 유학생들도 결국엔 워크퍼밋에 대한 비자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즉, 이 신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미국의 취업시장에서 적어도 현지인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부분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지금의 내 상황에서 미국진출을 이루어내기 위한 핵심 요소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난 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을까?


그러다 떠오른 생각.


만약 내가 영주권자가 된다면…?


‘영주권’이라는 단어의 뜻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아래와 같이 나온다.


영구거주권이라고도 하며,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은 영주권자라 부른다.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에게 체류기간의 제한 없이 특정 국가 국민들과 동등하게 거주하고 취업할 수 있도록 부여하는 권리이다.


‘특정 국가 국민들과 동등하게 거주하고 취업할 수 있도록 부여하는 권리’라니 이거야 말로 내가 찾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미국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까?


이를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미국에 사는 직계 가족들의 초청을 받거나 (내겐 그런 가족도 없거니와 있어도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미국인과 결혼을 한다거나 하는 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방법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방법들을 걸러내고 나니 눈에 보이는 방법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NIW (National Interest Waiver)라는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NIW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객관적인 능력을 보유한 자들에게 미국 정부가 합법적으로 미국에 거주할 수 있도록 영주권을 부여해 주는 제도라고 했다.


흠… 매력적이긴 한데 과연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대상자들은 주로 저명하신 학자 분 들이나  연구성과가 명확한 교수님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 아닌가.

일단 한번 관련 법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와 상담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마치 입사지원을 하듯이 떨리는 마음으로 나에 대한 정보를 제출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해 왔는지 등등.


그 결과 내가 들을 수 있었던 답변은,

UX 디자이너로서 NIW 제도를 통한 영주권을 취득하는 케이스는 흔하진 않지만 내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입증만 가능하다면 영주권 취득을 위한 서류를 제출해 볼만하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현시점에서 내가 해결해야 하는 첫 번째 과제가 명확히 보였다.


그래, 일단 미국 영주권을 받자.


지금 내 상황에서 미국 진출에 대한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채워야 할 첫 번째 단추는 미국 영주권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현지인 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디자이너로서 내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입증을 해 내는 것이었다.


어쩌면 미국 취업보다 이게 더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적어도 나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한 길의 입구를 찾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꿈만 꾸는 몽상가가 아니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을 오르고 싶다면

먼발치서 그 산을 바라만 보고 있기보다는

일단 먼저 그 방향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뎌야 한다.


그날 나는


아직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그 길의 입구에서


앞으로 경험하게 될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안고서


그 안으로 한걸음 성큼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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