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 이겠지만 한인 마트야 말로 이민생활의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맛있는 게 넘쳐나는 미국 이라지만 작은 과자 한 봉지라도 한인마트에서 파는 새우깡, 바나나킥, 오징어 땅콩 등등의 그 익숙한 맛을 대체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어디 그게 과자뿐이랴. 라면, 김, 만두, 떡볶이, 밑반찬 등등… 종류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집 근처에 있는 ‘남대문 식품’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인 마트에 자주 간다.
물론 H마트와 같이 훨씬 규모가 큰 한인마트에 갈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위치가 더 가까워서인지 간단한 장을 볼 때는 그 남대문 식품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그 마트는 다른 한인 마트 와는 다른, 그 공간만이 주는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정말 ‘한국’스럽다고 해야 하나.
마치 한국의 동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슈퍼 같은 느낌.
인테리어도 그렇고 물건을 진열해 놓은 방식 또한 그렇다.
그래서 세련됨 과는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투박함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그 공간 안에 들어가 있으면 잠시라도 한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좀 과장하자면 예전에 도깨비라는 드라마에서 문을 열면 캐나다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즉 나에겐 그곳이 잠시라도 나를 한국으로 순간이동 시켜주는 그런 공간이다.
이번 주말 아침에도 여느 때와 같이 그 마트에 갔다.
아내와 아이들이 사 오라는 과자 몇 개와 냉동만두, 그리고 라면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가 깜짝 놀랐다.
거기엔 익숙한 주인아주머니가 아닌 처음 보는 알바생이 있었는데, 그 알바생이 노란 머리의 미국인이었던 것이다.
여기는 미국이니까 당연히 미국인이 한인 마트에서 알바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상황.
게다가 이 장소는 내게 한국을 간접 경험하게 해 주는 특별한 장소인데 그 백인 알바생을 본 순간 어딘가 이 세계의 균열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나는 계산대 위로 물건들을 올려놓으며 생각했다.
‘영어를 써야 하나 한국어를 써야 하나.’
하지만 그녀는 생긋 웃으며 유창한 한국어로 내게 물었다.
‘플라스틱 백에 넣어드릴까요?’
아! 그렇구나.
그녀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구나.
계산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대체 그녀는 한국어를 어디서 배운 걸까?
혹시 잠시 한국에서 살다 온 걸까?
아니면 요즘엔 K pop, K food 등 한국 문화가 대세인데 그녀도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다 보니 한국어를 배우고 결국 한인마트까지 와서 알바를 하게 된 걸까?
나는 하마터면 그녀에게
‘어쩜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세요?’
라고 물어볼 뻔했다.
하지만 계산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걸 물어보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뭐 미국인이라도 한국말을 잘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여기가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미국인이 한국말 잘하고 한인마트에서 일하는 게 뭐 어때서?
어쩌면 나는 지독한 편견에 사로 잡혀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은연중에라도 하고 있는 내가 어딘지 모르게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지구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옳고 그름이라는 것도 결국엔 상대적인 것이고 사회와 규범이 만들어낸 어떤 인공적인 가치 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쯤 더 넓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냥 마트에서 장 한번 보고 나오면서 너무 거창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