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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n 25. 2023

그런 스타일은 이제 유행이 지났다구요

미국에 와서 살게 되면서 달라진 것 들 중 하나는 바로 옷차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이지 이젠 편한 옷 만 입고 다니게 되었고 새로 옷을 사는 일도 줄어들었다.


젊었을 때를 되돌아보면 나는 남자임에도 외모를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진 않았었던 것 같다. (디자이너라는 직업 때문이기도 하다)

유행하는 모든 걸 그대로 따라 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항상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가끔 주말이면 백화점에 가서 옷 구경 하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가격이 좀 나가는 비싼 브랜드의 옷을 큰 맘먹고 할부로 지를 때도 있었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옷 쇼핑을 많이 했나라고 생각해 보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중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물론 멋지고 예쁜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솔직히 그건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을 통해 비치는 나 자신의 모습이 뭔가 남 들 눈에 더 세련되고 우월해 보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 옷들과 은근히 보이는 브랜드의 로고를 통해 (은근히 보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 내 안목과 센스가 드러나길 원했고 그로 인해 내가 남들에게 더 멋진 사람으로 보이길 바랐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 살게 되면서부터 내 옷차림에 변화가 생겼는데 이제는 무조건 편한 것만 골라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요즘 나의 옷차림은 거의 대부분 다음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것 같다.


1. 주중 옷차림 (회사 출근 시) - 후드티 혹은 얇은 바람막이 (실내의 에어컨 바람을 막기 위한), 그 안에는 반팔 면티, 청바지, 운동화

2. 주말 옷차림 - 반팔 면티, 반바지, 운동화 혹은 슬리퍼


미국에 와서는 한 번도 구두를 신는다거나 양복 비슷한 그 어떤 것도 입어 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셔츠 같은 것을 입어 본 것도 거의 손에 꼽을 수 있을 지경이다.


물론 여기도 직업에 따라 뭔가 잘 차려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특히 뉴욕과 같은 곳은 더 그렇다고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시애틀에서, 그리고 내가 일 하고 있는 분야에서 그렇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아무튼, 한마디로 요즘 나의 옷차림은 무척 ‘촌스러워졌다.’


예전엔 그 촌스럽게 보인다는 말을 무척 싫어했는데 지금의 나는 그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린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니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멋지고 세련된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고 갈 때가 없다.


어디 딱히 특별하게 외출을 하거나 놀러 나갈 일도 없고 내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옷을 갖춰 입을 필요를 못 느낀다. 일할 때도 물론이고 특히 아이들과 놀아줄 때에는 무조건 편한 옷이 최고다.


둘째, 아무도 타인의 복장에 대한 관심이 없다.


이곳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입었는지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곳에 과연 유행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적어도 내가 몇 년간 보아온 이곳 사람들의 옷차림과 스타일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의 옷차림이 대체로 비슷하다. (한국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다 비슷하게 촌스럽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 역시 누가 나를 어떻게 볼지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졌고 그 때문인지 무조건 나에게 편한 옷 만 찾게 된다.


생각해 보면 이 두 번째 이유가 내겐 큰 변화와 깨달음을 준 것 같다.

알고 보니 내 속에 있었던 나는 알게 모르게 항상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환경이 바뀌고 나니 그런 것들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냥 나는 나고 나에겐 내 몸에 입기 편하고 좋은 게 좋은 거였다.


몇 년 전 한국에 있을 때 미국에서 출장 온 어떤 직원이 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회사에 비싼 명품 가방을 메고 일하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는 말.


그땐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었는데 지금 이곳에 와서 살아보니 그 들의 입장에서는 좀 신기해 보일 만도 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럼에도 인스타나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접하게 되는 한국 사람들의 요즘 스타일은 어쩜 그렇게 다들 세련되고 멋있는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 거의 대부분의 세련된 사람들이 입은 바지통이 예전과는 달리 무척 넓어졌다는 거다.


작년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 후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배, 아직도 그 청바지 입고 다녀요? 그런 바지 스타일은 이제 유행이 지났다고요. 이제 선배도 아저씨 다 됐네.”


그 당시엔 별 느낌 없었는데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을 보니 그런 말을 들을 만하기도 했겠다.


역시 한국은 뭔가 다르긴 다르다.

정말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느낌이다.


이 참에 나도 몇 년 만에 청바지나 한 벌 장만해 봐?

그리고 그런 넉넉한 핏을 입으면 혈액 순환엔 더 좋을지도.


에이 귀찮다.

뭘 그렇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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