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난감을 좋아한다.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 이냐고 물어본다면 빈티지 장난감을 검색하고 수집하는 거라고 대답하겠다.
그 나이에 웬 장난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 어떤 것보다 행복감을 주는 취미활동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장난감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80년대의 장난감들을 수집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그때는 국민학생이라고 불렀다) 그 시절에 장난감들은 내 인생의 전부였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내 모든 성격과 감성을 형성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도 이 장난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집 앞 문방구에는 늘 신기하고 멋진 장난감들과 조립식 (요새 말로 프라모델)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설레고 두근거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느낌은 아직까지도 내 안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당시 동네엔 한 부잣집 친구가 살았는데 그 친구네 집에는 늘 장난감들이 넘쳐났다.
특이한 점은 그것들이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건너온 장난감 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장난감들은 당시의 어린 내가 봐도 실로 대단한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손으로 만졌을 때의 매끈한 감촉, 완벽한 도색 처리가 된 형형 색색의 로봇들은 저마다 기가 막힌 방식으로 변신되거나 합체되었다.
나는 그런 장난감들을 가진 그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얼마나 부러웠던지 어떤 날은 심지어 그 집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들었던 생각.
아! 저 너머엔 새로운 세상이 있구나.
우리 동네 문방구에만 가도 이렇게 멋진 장난감들이 가득한데 도대체 저 바다 건너 미지의 나라에는 얼마나 멋진 장난감들이 존재할까.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나중에 해외에 나가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게.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모님도 해외에 다녀오실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나를 위해 가방 한가득 장난감을 사 오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정말이지 너무 행복했다.
늘 그 장난감들과 함께 하며 머릿속으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주 공간을 누비거나 지하탐사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수중세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밤이 되면 늘 그 장난감들을 머리맡에 고이 두고 잠들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인가 점점 그런 장난감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시시해졌고 결국엔 나도 자연스럽게 팝송이나 가요를 듣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중학생이 되어버렸다.
그럼 그 장난감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도 일부는 버려졌거나 대부분 친척동생들에게 물려주었던 것 같다. (장난감들의 숙명이란 참.)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자 나는 다시 내 어린 시절의 장난감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세상에 치이고 힘이 들 때면 그 시절을 떠올리고 위안을 얻고자 그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구글이나 유튜브를 통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너무나 좋아져서 이제는 조금만 노력을 하면 인터넷을 통해 그 시절의 장난감들에 대한 사진과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심지어 이베이 등의 중고 플랫폼을 통해 구입도 할 수 있다.
그 시절 80년대의 미국 장난감들은 미국의 중년 아재들에게도 추억의 물건 들인가 보다.
유튜브에는 실로 방대한 리뷰들이 올려져 있고 전 세계의 소위 장난감 덕후들이 그 시절 장난감들에 대해 매우 진지하고 전문적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접하게 되는 여러 가지 정보들.
그 장난감 관련 만화들의 오리지널 스토리가 내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특히 내가 정의의 사도로 여기며 가지고 놀던 로봇이 알고 보니 악당 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그렇게 세련되고 멋있어 보이던 장난감들이 지금 보면 왜 이리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고 엉성해 보이는지.
하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그 시절의 장난감들이 너무 좋다.
최첨단의 기술이 접목된 요즘의 장난감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구수함과 푸근함이 느껴진달까.
무엇보다 그 속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행복했던 추억들이 담겨 있기 때문일 거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좋은 것 중의 하나는 곳곳에 빈티지 장난감만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들이 쏠쏠하게 있다는 거다.
그래서 새로운 도시로 여행을 가게 되면 늘 습관처럼 구글 맵에서 근처의 빈티지 장난감 가게들을 검색해 보곤 한다.
막상 방문했을 땐 원하는 것이 없거나 있어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구입할 엄두가 안 날 때도 있지만 그 추억의 친구들을 직접 내 두 눈으로 보고 만난다는 건 화면이나 영상을 통해 보는 것보다 더 한 감동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해외의 도시에 나가면 중고 레코드가게에 가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게 취미라고 하던데. 그 마음이 어떨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빈티지 장난감을 수집한다는 것은 새로 나온 신상 제품을 구매하는 것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아마도 새로운 장난감은 계속해서 출시되겠지만 빈티지 장난감은 오래전에 이미 출시가 완료된 것 들이기 때문에 이미 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개수가 정해져 있다.
게다가 80년대의 장난감들이라면 출시된 지 대략 40년 전의 제품들인데 온전한 상태의 제품을 구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쌓여 어딘가 닳고 도색이 벗겨진 그 시절의 장난감 친구들을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는 날에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너도 어딘가에서 이 세월을 혼자 견뎌가고 있었구나.’
뭔가 동지애가 느껴진달까.
그 오래된 장난감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 선반에 진열하게 될 때의 그 뿌듯함이란.
나는 오늘도 이베이를 뒤지며 어린 시절 추억의 세상을 만난다.
알고 보니 나, 덕후였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