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앨범 보는 일을 좋아한다. 가족과 친구들, 내가 살던 동네의 풍경 따위를 찬찬히 보다 보면 고통스럽고 무의미했던 시절도 아련하고 아름답게 윤색되는 효과가 있더라. 아쉽게도 그 앨범은 스무 살 무렵을 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진첩은 작은방 서랍장을 떠나 랜선 세상의 온갖 플랫폼으로 옮겨간 지 오래이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 어떤 SNS도 하지 않는 골방지기형 인간이다. 주인을 잘 못 만난 내 사진들은 갈 곳 잃은 가련한 신세로 수년 째 컴퓨터 하드디스크 안에 시체처럼 잠들어 왔다. 남해군 사진들 또한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나 몇 장 쓰이고 말 운명에 놓여 있었다. 얼마 전 브런치라는 소소한 공간이 생겨 몇 편의 여행기 틈바구니에 사진 몇 장을 끼워 넣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참에 사진을 뭉텅이로 올리려던 차, 글을 쓰는 곳에 사진만 빼쭉 올리는 것이 민망해져 나는 이렇게 쓸데없는 머리말을 적고 있다. 언제 뻑날지 모를 하드디스크에 애써 찍은 사진을 묻어 두는 일보단 이 편이 낫지 않을까.
작년 11월, 사흘간 남해군을 누비며 게으른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취미도 특기도 마땅치 않은 내가 그래도 취미에 가깝다고 우길 수 있는 게 하나 있다면 사진이다. 혼자 하는 여행에 재미를 붙인 계기도 사진이고, 여행을 떠나는 큰 이유이자 목적도 사진이니 영 못 볼 정도로 엉망은 아닐 것이다. 사진 몇 장을 추려내 간단한 색보정을 거쳐 발길이 닿은 순서대로 올려본다.
평온한 남해군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꼴은 원치 않지만, 여수에도 통영에도 없는 안온함으로 가득한 이곳이 외면받는다면 섭섭할 것이다. 가능하면 비수기 평일을 택해 가보시라 권하고 싶다. 남해를 노닐며 '2022년은 남해군 방문의 해'라고 적힌 현수막을 여럿 보았다. 대수롭지 않은 나의 여행일기와 사진이 임인년 새로운 여행을 꿈꾸는 누군가에게 작은 참고라도 된다면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