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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형 May 13. 2020

이혼 앞 아빠들

<슬기로운 의사생활> 익준과 <부부의 세계> 태오 사이 즈음

그동안 드라마에서 ‘불륜’은 비난을 유발하는 자극적 요소로 작용했다. ‘이혼’ 역시 등장인물이 처한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한 특별한 상황으로 보여질 때가 많았다. 요즘 드라마는 다르다. 다양한 시각에서 불륜과 이혼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tvN과 KBS는 주말드라마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주인공이 이혼한 다음의 삶을 그리고 있으며,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와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는 드라마 초반에 주인공이 이혼을 겪게 된다. 각 13.6%, 24.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부부의 세계>의 이혼한 아빠 이익준(조정석 역)과 이태오(박해준 역)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의 이혼은 어떤 생김을 하고 있었으며, 어떤 아빠로 남게될까? 


이혼의 얼굴


익준은 해외에서 1년 반 만에 귀국한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 받는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부부는 아니잖아. 예전처럼 친구하자.” 익준은 당황스러워하며 말한다. “너가 원해서 이렇게 사는 거잖아. 너 발령 나고 내가 휴직 내고 너 따라 독일 간다고 했는데.” 그리고 일하는 당신을 지지하고 있으며 아이도 지금처럼 돌볼 수 있다고 덧붙인다. 돌아오는 건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는 싸늘한 답 뿐이었다. 

극 중에서 이혼 과정이 거의 생략된 익준에 반해 <부부의 세계>는 본격적으로 이혼의 얼굴을 샅샅이 들여다본다. 첫 회부터 태오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자 배신감에 휩싸인 아내 선우(김희애 역)는 이혼을 준비한다. 태오는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며 자신은 아내와 애인을 똑같이 사랑하며 아들 준영(전진서 역) 역시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내 몰래 아들 교육 보험과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애인에게 명품 가방을 사준 일이 속속 드러나며 드라마는 저 세상 텐션으로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한다. 한 가정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사랑과 신뢰를 지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불륜이 만든 파국에서부터 거꾸로 그려낸다.  



이혼  다음


이혼으로 가정이 깨졌다고 하지만 부부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이혼으로 상처를 받은 익준은 괴로워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환자의 죽음을 극복하듯 아내와의 이혼도 일사천리로 진행된 듯 보인다. 별일 아닌 듯 친구들에게 이혼을 고백하고, 이혼 경력이 있는 다른 친구와 능청스럽게 농담까지 주고받는다. 익준이 이혼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내려놓은 이야기는 한참 뒤인 7화에 나온다. 자신에게 간 이식을 해준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되자‘남편 간으로는 하루도 더 살기 싫다’며 약을 먹지 않고 식사도 거부하는 환자. 익준은 자기 이야기를 건넨다. "병원 일하고 혼자 애도 보고 열심히 살았는데, 와이프가 친구 남편이랑 바람이 났어요.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내 인생 왜 이렇게 꼬이나 싶어 죽겠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너무아까웠어요. 걔 때문에 내 인생 이렇게 보내는 게. 어떻게 되찾은 건강인데 남편이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약 드시고 악착같이 건강 회복하세요." 

<부부의 세계>에서는 태오가 양육권을 다투고,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면서 동네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비춘다. ‘아내가 이렇게까지 날망가뜨리지 않았더라면 적당한 선에서 멈췄을 거다. 모든 건 아내가 자초한 일이다.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며 2차전, 3차전이 숨가쁘게 진행된다. 아내와 애인, 아들과 사회적 명예까지 모든 걸 가지고 싶어하던 그와 그 못지 않은 주변 인물들은 서로에 대한 원망, 분노, 혐오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상처를 준다. 내가 아닌 남을 미워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의 파괴적인 감정선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혼은 했지만 여전히 아빠

자주 싸우는 불행한 부모와 함께 자란 아이보다 평온한 이혼 가정이 자녀에게 나을 수 있다고 하지만, 상처를 받게 될 아이를 위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익준은 일곱 살 아들 우주(김준 역)가 받을 상처를 걱정한다. 해외에 있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 온 터라 아빠와 더 돈독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조심스럽고 미안하긴 마찬가지. 익준은 우주에게 언제든 엄마가 보고 싶으면 데려다 줄 수 있다고 얘기를 건넨다. 이에 아이는 “엄마가 우주 안 보고 싶으면 우주도 엄마 안보고 싶어. 우주는 아빠만 있으면 돼. 우주에서 아빠가 제일 좋아.” 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답한다. 샌드위치 하나 더 사달라며 존댓말로 애교를 부리기까지 한다. 드라마 내내 우는 소리는 커녕 떼 한 번 부리지 않는 우주답다.

아버지가 자기를 버리고 재혼한 트라우마를 가진 태오는 이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아이가 부모의 이혼에서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다. 히스테리에 찬 엄마는 아들 준영에게 “아빠가 우리를 버렸다”며 자신의 감정을 아이도 똑같이 느낄 것을 강요한다. (여기서 준영이 “아빠가 버린 건 엄마지, 내가 아니야”란 대답은 부모가 아이에게 해줘야 했을 이야기다.) 준영은 아빠가 엄마를 폭행하는 장면을 강제로 목격하게 되고, 2년에 걸친 아빠의 접근 금지 명령 동안 아빠로부터 연락 한 통 받지 못한다. 이후에도 완벽한 가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어른들 욕심에 준영은 계속 이용당하고 상처받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인물을 모아둔 판타지물에 가깝다. 주인공 넷을 두고 “걔네 쿨하고 완벽한 애들이야”라고 대놓고 말한 동료 의사가 없었다면 친근한 대사에 속아 현실에 있을법한 휴먼 드라마라고 믿을 뻔했다. 그런가 하면 <부부의 세계>는 복수에 눈이 먼 주인공들이 만드는 스릴러물이라 할 수 있겠다. 드라마 마니아인 유튜버 막례할머니가 부부 대신 ‘도라이 세계’라 부르자고 주장했을 정도로 이 드라마는 뜨겁고 자극적이다. 익준의 말처럼 남을 미워하며 살기에 내 인생이 아깝다는 걸 알지만 태오처럼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면 스스로가 주체가 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혼 상담을 위해 변호사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의 사랑을 맹세했더라도 서로의 중요한 가치에 손상을 입거나 받은 상처가 치유될 가망이 없을 때 이혼은 오히려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일 수 있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익준과 <부부의 세계> 태오 사이 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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