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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형 Apr 08. 2022

2022년 봄, 꿀벌 실종 사건

월동을 마친 벌이 활기를 띄고 꽃가루와 꿀을 모아야 할 4월, 벌이 몽땅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본 사람도, 쫓아갈 흔적도 없다.


“때는 2022년 1월 3일. 해남의 한 양봉꾼이 벌통 앞에 서 있어. 꿀벌의 겨울잠을 깨울 생각이었지. 이상 기온으로 날씨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일정을 조금 앞당긴 상태였어. 드르륵, 쾅! 문을 연 양봉꾼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어. 벌통 가득 웅웅거려야 할 벌이 하나도 없었거든. 대체 무슨 일일까? 말벌이 습격했다거나 전염병이 돌았다면 죽은 벌이 바닥에 남아 있어야 하는데, 왠걸, 흔적조차 없어. 벌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거야. 이어 전남에서만 10만 개가 넘는 벌통의 꿀벌이 사라졌어. 경남에서도 피해가 계속해서 보고되었고. 그러나 수사는 쉽게 진행되지 못했어. 이 사건에는 목격자도, 원인 파악을 위한 사체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가? 호기심 유발을 위해 꼬꼬무 톤을 이용해보았는데, 효과가 있었으면 한다. 이 칼럼은 읽혀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이 꿀벌의 행방을 걱정할 수 있어야 하니까. 꿀벌 실종 사건이 굳이 왜 <GQ>에 쓰여야 했을까? 양봉업의 고충을 알리기 위해서? 아니면 이 일로 꿀 값이 오를 테니까? 천만에. 세상엔 여러 고충이 넘쳐나고, 요즘엔 시럽이나 스프레드 같은 대체제도 충분하다. 벌꿀 같은 거 안 먹어도 그만이다.

‘당신이 무얼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라는 19세기 프랑스 미식가의 말에 따르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1/3은 꿀벌이다. 무엇을 먹는다고 대답하건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세 입 중 한 입은 벌에 의존하고 있다. 책 <벌의 사생활>을 쓴 소어 핸슨은 꿀벌이 없다면 빅맥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다. “참깨 빵 위에 순쇠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그는 빅맥 송을 흥얼거리며 맥도날드 홈페이지에서 성분 및 영양 정보를 확인한다. 그 다음에 핀셋과 확대경을 활용해 벌의 도움을 받은 재료를 하나씩 빼낸다. 일단 건초와 사료를 먹고 자란 고기 패티는 남긴다. 고기 간을 맞추기 위한 소금과 후추도 남는다. 덩굴식물인 후추나무는 벌 없이 자가 수정이 가능하다. 특별 소스는 빠진다.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 안에는 가루 형태의 오이와 양파, 파프리카, 터메릭이 들어 있는데, 이들의 재배는 벌이 주로 돕는다. 소스에는 옥수수 시럽, 달걀 노른자, 방부제, 알긴산프로필렌글리콜만 남는다. 아삭아삭한 양상추도 빠진다. 맥도날드 햄버거에는 펜실베이니아의 씨앗 상인 워싱턴 애틀리 버피가 개발한 아이스버그 양상추가 쓰인다. 이 양상추의 꽃가루는 꼬마꽃벌이 옮긴다. 치즈 슬라이스도 남을 수 없다. 풀과 곡물을 먹는 육우와 달리 젖소는 매일 약 7.3kg의 알팔파를 먹는다. 알팔파는 가위벌에 의존해 살아남는 식물이다. 밀가루로 만든 빵은 남지만 그 위에 올라간 참깨는 벌이 꽃가루받이를 한다. 그러므로 남을 수 없다. 사이드 메뉴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맥도날드에서 사용하는 감자는 러셋 버뱅크 종으로 자유 꽃가루받이 방식으로 자란다. 겨자나 토마토도 벌에 의존해 열매를 맺기 때문에 머스터드나 케첩도 테이블에 오를 수 없다. 벌이 없는 세상의 빅맥에는 다채로운 맛과 향, 식감 대신 퍽퍽하고 따분해 보이는 고기 두어 장과 빵만 남는다. 그 날이 오면 복제 곡물, 화학 재료, 약물 먹고 자란 고기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전부가 될 것이다. 벌의 실종은 곧 온갖 식물과 동물의 멸종을 불러올 테니까.


그렇다면 벌의 자리를 새나 나비가 대신할 수는 없을까? 같은 일을 할 인간을 고용하거나 드론을 개발한다면? 사과를 키우는 사람이 벌 없이 꽃가루받이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사과나무는 꽃송이 마다 일일이 가루를 묻혀줘야 하는 식물이다. 닭 털이나 담배 필터를 매단 긴 막대기로 작업을 하면 손이 아주 빠른 일꾼의 경우라도 하루 작업량이 열 그루에 그친다. 제때 일을 마치려면 일손이 많이 필요할 테니 경제적으로 지속할 수 없어 보인다. 벌을 닮은 드론은 이미 개발되어 있다. 전하를 띈 젤과 솔로 꽃가루를 모으는데, 수동 조작에 수시로 충전이 필요해 온실 재배 작물에만 사용이 가능하다. 이 마저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벌만큼 일을 잘하려면 기기가 더 발전해야 한다. 보고 있자니, 벌에게 진 빚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국제 환경 보호단체 그린피스의 2015년 자료에 따르면, 꿀벌은 7년 전, 이미 연간 380조원 어치 일을 하고 있었다.

인간은 산업 혁명 이후 빠른 속도로 환경을 바꿔왔다. 놀라운 적응력을 가진 곤충조차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면 바닥까지 남김없이 긁어 썼고, 방해가 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제거했다. 빠른 손절 판단이 제법 영리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자연의 메커니즘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똑똑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 1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호흡을 맞춰 온 곤충과 식물은 더욱 그렇다. 그들은 가까이서 상호작용을 하며 세부 사항을 조정해온 사이다. 우리는 그 백 분의 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벌이 사라진 지역에는 야생동물이 차에 치이는 ‘로드 킬’ 사건이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수분 매개체가 사라지면 주변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열매를 먹지 못해 굶주린 동물이 먹을 걸 찾아 도로로 내려오는 것이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과나무의 번식을 드론으로 무사히 마쳤다 하더라도 이런 인과관계까지는 놓치기 마련이다. 쓸모 없다고 여긴 것은 사실 꼭 필요한 것이었으며, 애초에 우리는 뭔가를 판단하기에 아는 게 너무 없다. 자연이 무상으로 제공한 해결책 쪽이 더 쉽고, 간편하며, 저렴하며, 유일한 방법임을 이제서야 서서히 깨닫고 있는 듯 하다.


구독자 45만 명의 양봉 유튜버 ‘프응 TV’는 올 2월 초, 벌이 왜 사라지는지 알아내기 위한 영상을 하나 업로드했다. 그는 먼저 국내 벌 실종 사건이 처음 일어난 해남의 병성감정 결과 통지서를 받아 본다. 해당 양봉장에서는 애벌레가 말라 죽는 ‘낭충봉아 바이러스’를 비롯한 6개의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고 쓰여 있다. 어느 벌집에서나 검출되기 쉬운 질병이라 원인으로는 석연치 않다고 판단한 프응은 전남농업기술원 곤충잠업연구소에 전화를 건다. 담당자와 통화도 한다. 돌아온 답변은 ‘역학조사를 하고 있으나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으며, 장기 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이를 그저 별난 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그동안 벌은 개체 수 감소 추세에 있어 왔다. 많은 종의 벌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2006년 미국에서 비슷한 벌 실종 사건이 보고된 적이 있다.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캘리포니아 등 27개 주에서 연속으로 꿀벌이 사라졌다. 1년 만에 미국 전역의 벌집 30% 이상이 비었고, 이는 캐나다, 브라질, 호주,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각 나라에서는 무엇을 원인으로 꼽아 어떤 대처를 했을까?

태양광 패널과 송전탑이 많아지면서 벌에게 가장 중요한 소통이 무너졌다는 가설이 나왔다. 꿀을 가지러 나간 일벌의 감각과 인지에 문제가 생겨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자, 집에서 기다리던 벌이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꿀이 없어 벌의 면역력이 떨어졌을 거라는 예상도 나왔다. 주변의 땅이 모두 효율적이고 집약적인 농업에 이용되면서 꿀벌이 자연의 꽃가루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자 영양이 부족해진 것이다. 실제로 꿀 생산이 부족한 농가가 그렇지 못한 농가보다 벌 실종 피해가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 변화 얘기도 있었다. 벌은 추운 날씨에 약해 겨울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상기후로 낮 기온이 따뜻해지자 봄이 온 줄로 착각한 벌이 일을 하러 갔다. 꿀벌은 영상 10도에서 움직임이 둔해지고, 4도에서 죽음에 이른다. 오후 2시쯤 나간 벌이 4시 쯤 귀가를 하려는데, 기온이 뚝 떨어진 바람에 그대로 객사했을 것이란 예상이다. 사회적 곤충인 꿀벌은 일벌의 10%만 사라져도 군집의 80%가 무너진다.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군집이 붕괴했을 거란 예측이다. 이 외에도 살충제, 진드기, 바이러스, 곰팡이, 전자파 등을 용의선상에 올려 두고 조사를 계속했지만, 이렇다 할 원인은 찾아내지 못했다. 꿀벌을 쏜 하나의 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꿀벌을 지구에서 내쫓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해서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벌의 균형이 일시적으로 흔들린거라면, 새로 벌을 사다가 다시 칠 수 있지만 이번에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앞으로 벌은 없다. 생태계는 최후의 개체가 죽기 한참 전부터 이미 기능이 멈춰버린다. 꿀벌이 멸종 앞까지 간다면, 그때는 손 쓸 도리도 없이 우리도 같은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비극이 계속되는 건 그 비극이 나에겐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일어난 일은 결국 우리에게도 일어나며, 꿀벌의 위험이 곧 인간의 위험이란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꿀벌 실종 뉴스를 들은 과학자, 기업가, 환경운동가, 농부, 학생, 직장인이 많아져 마음을 모아야 한다. 문제 파악이 미처 되지 못했다면 벌의 스트레스 요인을 하나씩 줄여가며 역으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살충제 사용을 줄이고, 자연의 꽃과 천연 서식지를 늘리고,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생활 양식을 바꾸고 실천한다면 지금 방향을 틀 수 있다. 왜 우리가 꿀벌을 걱정해야 하고, 꿀벌 실종에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채는 것이 그 시작이다.

벌은 크기가 작고 번식이 빠르다. 변화에 대한 반응 역시 빠르다. 집을 지을 안전한 터와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몇 주의 시간만 있다면, 개체 수를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 봄꽃이 피면 어린 벌이 첫 비행에 나선다. 3월에 5,000마리로 시작한 벌의 무리는 5월이 되면 7배 이상 늘어난다. 일벌은 꿀과 꽃가루를 모으고, 아기를 닦이고 먹이며, 집을 넓히는 등 부지런히 움직인다. 봄은 다시 시작하고 살려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GQ> 매거진 2022년 4월호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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