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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형 Jan 04. 2023

돌고래가 너랑 친구 한대?

이래도 되는 사이인지 물어는 봤나?

우리의 친구 돌고래를 보러 배를 타고 바다로 간다. 친구니까 가까이서 사진도 찍는다. 근데 우리 진짜 친구 맞아? 이래도 되는 사이인지 물어는 봤나? 



     돌고래를 떠올려보자. 촉촉한 코, 작고 상냥한 눈동자, 올라간 입꼬리, 물에 빠진 인간을 등에 태워 뭍으로 데려다주는 선한 품성, 어려운 동작도 금세 배우는 명석한 두뇌, 다친 동료를 챙기는 의리... 아마도 돌고래가 싫다는 사람은 없을 거다. 이렇게 똑똑하고 귀여운 친구니까. 그런데 우리가 친구였던가? 친구도 아닌데 아무 데서나 큰 소리로 부르고, 아무 때나 집에 놀러 오고, 카메라를 들이밀어 사진을 찍는다고? 요즘 세상에 그런 짓을 하는 무례한 사람이 어디 있어?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 가면 있다. 열댓 명이 탄 배가 하루에도 20여 차례 돌고래 무리에 접근한다. 매일 최소 200명의 사람이 그렇게 한다. 그런 사람의 수는 작년에 비해 올해 3배나 늘었다. 이제 관광선박뿐 아니라 낚시 체험 배, 소형선박, 제트스키까지 돌고래를 쫓는다. 우리의 친구 돌고래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다. 돌고래 의견은 물어봤는가? 돌고래는 우리랑 친구가 되고 싶을까?
     관광객을 태우고 바다를 떠다니던 배가 갑자기 속도를 낸다. 방향을 틀어가며 뭔가를 집요하게 쫓는다. 휴식을 취하던 제주 남방큰돌고래 무리다. 선박 엔진의 으르렁대는 소음에 놀란 돌고래가 물 위로 뛰어오른다. 이제 배와 돌고래는 고작 1미터 간격이다. 관광객은 그저 눈앞의 돌고래에 신이 난다. 당황한 돌고래의 몸짓마다 인간의 환호성이 터진다. 흩어지려는 돌고래 무리를 서너 척의 배가 가로막는다. 돌고래 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가 공개한 영상 속 장면이다. 돌고래는 급하게 헤엄치다가 배에 부딪히며 스크류에 등지느러미가 걸려 찢어지기도 한다.
     비록 우리가 친구 사이가 아니더라도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가 보고 싶을 수 있다. 제주 바다에는 쇼를 하던 돌고래가 자연으로 돌아와 살고 있고, 올해는 드라마에 돌고래를 사랑하는 주인공이 제주 남방큰돌고래 삼팔이, 춘삼이, 복순이를 언급했으니까. 고래구경의 시작은 1960년대 미국 태평양 해안이었다. 사람들은 몸길이 16m, 무게 35톤의 귀신고래의 회유를 보러 몰려들었다. 미디어는 이 장면을 부지런히 날랐다. 이내 세계 전역에 고래 구경이란 게 알려졌다. 배를 가진 사업가는 구경꾼들을 부지런히 배에 태웠다. 일본,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같은 포경 국가에서 고래 구경은 주요 산업이 됐다. 더 많은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래를 구경했다. 지금 제주도에는 남방큰돌고래 관광 패키지를 가진 선박관광업체가 여섯 곳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는 “모르는 게 약이다”란 말이 있고 서양의 사상가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다.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최재천 교수는 “아는 것은 사랑”이라 했다. 그는 제주 퍼시픽랜드에 갇혀 돌고래 쇼를 하던 제주 남방돌고래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에 앞장선 인물이다. 생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고 이해하다 보면 그들을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 시작되면 상대를 해치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친구가 되어 고래를 사랑하려면 그들을 알아야 한다. 고래는 바다의 커다란 포유동물이다. 마디가 있는 등뼈가 있고,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운다. 인간처럼 평균 36.8도의 따뜻한 피가 흐른다. 숨을 쉬러 물 위로 올라와야 해서 잠은 자지 않는다. 좌뇌와 우뇌가 번갈아 휴식 하는 걸로 잠을 대신한다. 고래와 돌고래 모두가 고래목에 속한다. 4미터를 기준으로 작은 걸 돌고래, 큰 걸 고래라고 부른다. 돌고래는 이빨이 있고 고래는 이빨 대신 유연한 수염이 있다. 고래는 가족과 친구를 만든다. 친구의 도전을 응원하고 바른 결정을 위해 고민하는 등 다양한 감정을 지닌다. 인간으로 치면 만 4세 수준의 지능을 가진 셈이다.

    1954년 미국 플로리다주 바다에서는 고래가 다친 동료를 구조하는 장면이 발견되었다. 이날 인간은 수족관에 전시할 큰돌고래를 잡으려고 폭탄을 터뜨렸다. 돌고래 한 마리가 그 파편을 맞고 기절했다. 그가 몸이 기울어진 채 수면 위로 떠 오르자 근처에 있던 돌고래 두 마리가 다가왔다. 즉시 기절한 동료의 가슴지느러미 아래에 자기 머리를 대고 받쳐 올렸다. 동료가 수면 위에 떠서 숨을 쉴 수 있게 돕기 위해서다. 수면 아래의 두 돌고래는 숨을 참고 무리가 있는 곳까지 헤엄쳤다. 안전한 곳에서 기절한 돌고래의 회복을 모두가 함께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무사히 회복하자 함께 그곳을 떠났다.
     남방큰돌고래의 평균 수명은 마흔 살이다. 다 자라면 2.6미터가 되고 몸무게는 2백20킬로그램 정도다. 등은 회색이고 배는 흰색에 가깝다. 1년을 꼬박 임신해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80분씩 잠수하는 향고래와 달리 남방큰돌고래는 1분 간격으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숨을 쉰다. 아무리 참아도 5분을 넘지 못한다. 자주 숨을 쉬어야 해서 깊은 바다가 아닌 연안에 산다. 우리나라 해역에는 30여 종 고래가 사는데 이중 남방큰돌고래의 개체수가 가장 적다. 제주 연안의 110여 마리가 전부다. 남방큰돌고래는 세계적으로도 2,000마리 정도밖에 없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 해양생물이며 우리나라 해양수산부는 2012년에 보호 생물로 지정했다. 제주도 전역에 살던 남방큰돌고래는 개발 사업과 함께 지금은 대정읍, 성산읍, 구좌읍 일대로 서식지가 줄었다.

    1986년 제주도 중문에 돌고래 수족관 ‘퍼시픽랜드’가 열렸다. 2009년 남방큰돌고래 두 마리가 제주 신풍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렸다. 퍼시픽랜드는 이들을 사서 복순이와 제돌이라 이름 붙였다. 같은 불법포 획의 방식으로 한 달 뒤 춘삼이, 태산이가, 이듬해 삼팔이가 들어와 돌고래쇼에 동원된다. 돌고래는 수조에 가두면 안 된다. 초음파를 쏘아 지형지물을 인식하는 동물이라 귀가 곧 눈이다. 좁은 수조 속에서는 콘크리트 벽에 초음파가 튕겨 나온다. 화장실 만한 작고 깜깜한 방에 갇힌 채 시리얼만 먹는 4세 아이를 떠올리면 돌고래의 기분을 상상할 수 있다. 갇힌 돌고래는 푸석하고 향도 없는 냉동 생선을 먹고 지낸다. 이마저도 쇼 때만 먹을 수 있다. 그러던 2012년, 서울시가 서울대공원 돌고래쇼 중단을 발표한다. 서울대공원으로 팔려 와 있던 제돌이가 제주 바다로 돌아간다. 퍼시픽랜드에 있던 삼팔이와 춘삼이도 바다로 돌아갔다. 그렇게 총 일곱 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야생 방사됐다. 



10년 전 인간은 수족관의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며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그리고 오늘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는 아예 바다를 배경 삼아 돌고래 쇼를 관람하고 나섰다. 동물과 친구가 되어 가까운 관계를 맺고 싶다면 같은 생명체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지금의 돌고래 관광 선박은 남의 서식지에 침범해 삶을 흔들어 놓는다. 그들을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하게 한다. 야생 동물을 애완용 또는 구경거리로 생각한다. 이대로 지낸다면 남방큰돌고래의 개체수 감소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제주 대정읍 앞바다에 남방큰돌고래 관광 선박이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해양수산부는 즉시 ‘남방큰돌고래 관찰 가이드’를 발표했다. 이 가이드는 2021년에 ‘돌고래 반경 50 미터 이내에는 접근하지 않고 3백 미터 이내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세 대 이상의 배가 접근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포함해 개정되었다. 그러나 올여름에 찍힌 영상 속에서는 4대의 배가 돌고래 무리를 포위한 채 그들을 바짝 쫓고 있었다. 이처럼 가이드가 어쩌다 한 번 지켜지고 대체로 무시되는 데는 처벌 규정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 작년 9월 24일 개정안을 발의했다. 올해 4월 19일부터는 과태료 200만 원을 부과하는 개정법이 시행된다. 선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200만 원을 그저 운이 나쁘면 걸려서 내는 벌금쯤으로 여긴다면 더 강력한 보호조치가 필요해진다. 반복적으로 규정을 위반한 업체는 영업을 정지한다거나 관광 선박이 접근할 수 없는 해양생물보호구역을 지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이 남방큰돌고래를 직접 볼 방법은 없어지는 걸까? 무지개 모양으로 부드럽게 뛰놀며 다정하게 서로에게 물을 튀기는 돌고래와 친구가 되는 일은 상상에서나 가능할까? 아니다. 생동감 있는 야생 돌고래의 모습을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육지에서 관찰하는 것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바다에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보인다. 그들은 얕은 바다에서만 살기 때문에 생각보다 가까이서도 실컷 볼 수 있다. 

       오늘의 인간은 과거의 인간보다 더 나은 존재다. 돌고래와의 관계에서도 인간은 발전해야 한다. 돌고래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무례하고 경우 없는 예전 인간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 나아진 인간의 평화적인 방법으로 다가가자. 


<GQ> 매거진 2023년 1월호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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