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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석류 Jul 22. 2024

문화도시, 정책의 시간에서 정치의 시간으로

[장석류의 예술로(路)] 2024.07.17

정책의 시간, 정치의 시간

정책의 영역에서 중요한 포럼을 개최할 때는 ‘정치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정치는 정책을 시작하게도 하고, 멈추게도 한다. 정책은 정치의 시간을 만나면 흐름이 변하게 된다. 우리가 축구나 야구 같은 경기를 관람하면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조마조마한 순간은 흐름이 변할 때이다. 흐름이 변할 때는 마시던 맥주도 잠시 내려놓고 경기에 집중한다. 좋은 흐름으로 바뀌면 지던 경기도 뒤집을 수 있지만, 흐름이 나빠지면 다 잡은 시합을 내줄 수도 있다. 7월 초 부산 영도에서 <2024 문화도시 영도 출구전략 오픈 포럼>이 있었다. 문화예술 행정학자로서 이 포럼을 관심을 두고 지켜보았다. 관심을 가진 이유는 지난 5년 동안 지역문화정책 영역에서 가장 치열한 각개전투가 이루어졌던 법정문화도시가 ‘지역 정치의 시간’을 지나며 향후 어떤 흐름으로 변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각각의 도시가 보유한 지역의 정치적 역량이 지난 5년의 문화도시 사업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궁금했다. 멈추게 할 것인지, 지속하게 할 것인지,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 부산 영도는 법정문화도시 사업의 향후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주요한 가늠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계절이 변하듯 정책도 변한다. 우리의 삶처럼 정책도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한다. 새로운 정책이 태어난다는 것은 ‘시대의 요구’가 착상된 것이고, 정책이 죽는다는 건 나름의 역할을 다했거나 새로운 정치를 만나 새로운 정책으로 그 역할을 넘겨주는 것이다.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고, 5년 뒤 2019년 부산 영도를 비롯한 청주, 포항, 서귀포, 천안, 부천, 원주가 1차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되어 5년의 사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다시 5년이 흘러 2024년 이 도시들이 ‘변화의 분기’를 앞두고 있다. 지난 5년의 사업은 사계절을 가진다. 정책이 봄의 시간을 지날 때는 긴장과 설렘을 가지고 다양한 사업의 씨앗을 뿌린다. 영도의 경우 ‘연결과 성장’이라는 방식으로 문화돌봄, 문화교육, 문화창업, 문화유산보존, 도시브랜딩 등의 씨앗을 뿌렸고, 여름의 시간을 지날 때, 각각의 사업, 참여한 사람 그리고 지역이 왕성한 문화적 성장을 경험하였다. 이제 5년 단위 한 시즌의 사업이 가을의 추수를 마치고, 겨울 동지(冬至)로 들어가고 있다. 정치는 감사의 권한 등을 통해 정책의 계절이 변할 때도 관여하지만, 크게 사계절을 돌고 온 정책의 변곡점에서 그 존재감은 더 커진다. 정치와 리더십은 변화를 만들어줘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다. 사계절을 돌고 온 정책을 일몰시킬 것인지, 아니면 다음 단계의 사계절을 열어줄 것인지를 말이다. 좋지 않은 결과를 낸 정책을 일몰시키는 것은 순리(順理)의 길을 가는 것이라 지난 시간을 복기하면서 잘 마무리하면 된다. 그런데 좋은 결과를 내었던 정책에 다음 미션을 주면서 ‘어떻게 다시 새로운 봄을 시작할 수 있게 변화를 만들어주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정치적 역량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지역정치의 역량과 포스트 문화도시

법정문화도시 24곳, 대한민국 문화도시 13곳의 이면에는 지역별로 서로 다른 환경과 정치적 역량이 있다. 2024년 1월 기준, 광역지자체 17개에는 각각의 광역문화재단이 있고, 기초자치단체 226개 중 116개소 기초문화재단도 있다. 문화가 정치를 만났을 때, 지역의 정치가 밝을 때도 있고, 어두울 때도 있다. 정치가 지역 문화예술을 만났을 때,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질문이지만, 밝은 정치로 필요한 지역문화 정책을 낳고, 길러낼 수 있는 제도적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특히, 지역의 중요한 문화정책이 변화의 구간에 들어갔을 때, 필요한 의사결정을 적절한 시기에 적중시킬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중요하다. 정치가 머뭇거리면 시기를 놓치게 되고, 제도라는 그릇 위에 애써 축적해온 지역문화의 자산을 죽게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을 대하는 정치가 어둡고 머뭇거릴 때는 각자의 사심으로 앞뒤를 재고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이거나 극렬한 이분법으로 상대 당을 견제하는 이전투구의 과정이 벌어질 때이다. 이럴 때, 어떤 문화정책이 인심을 얻으면, 반대편에서는 다음 선거에 불필요한 위협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업이 시행착오를 겪고 있으면 다음 정치 행보를 위해 끌어내리기 바쁘다. 지역 정치가 어두울 때, 지역 문화예술 분야의 귀한 인재들은 빛을 감추고, 후퇴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실력을 쌓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도 많다. 정치는 민심을 향하는 큰 밝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예술 분야의 귀한 인재들도 모일 수 있다. 


부산 영도 문화도시 사례에 흥미를 느낀 또 다른 이유는 지역주민들이 문화도시센터 조직을 자발적으로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과 행동을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2024 최우수 문화도시 선정 기념 영도마을 축제를 열고, 영도문화도시센터 크루들을 역으로 안아주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았다. 문화예술 행정학자로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시민들이 공공조직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 조직을 지키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사례가 얼마나 될까? 문화정책이 지역에서 사는 개개인의 삶에 변화를 주면서 민심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시민들이 영도문화도시 사업을 지켜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예감은 기각될 수 있지만, 이 때문에 좀 더 관심 있게 ‘영도의 변곡점’을 지켜보게 된다. 


하나의 문이 닫히고, 새로운 문을 열 수 있을까

지금은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시대에서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시대, 국가의 시대에서 도시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 개인은 국가보다 내가 사는 도시, 좋아하는 도시에 더 감정이입을 한다. 문화도시는 끝나지 않는 미제(未濟)이다. 법정문화도시 5년의 사업은 하나의 정책이 사계절을 겪은 것이다. 졸업하고, 퇴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삶이 끝난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의 정책이 끝났다고 문화도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 미션은 정치와 정책의 변화 속에서도 도시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변주되며 시도될 것이다. 지역이 살기 위해, 도시에 사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문화도시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하기 때문이다.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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