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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강을 건너는 예술가들
-지원사업이 던지는 징검돌

[장석류의 예술로(路)] 2025.07.30

by 장석류

창작의 강을 건너는 일

창작의 길을 걷는 예술가는 늘 강 앞에 선다. 그 강은 예측할 수 없는 물살을 품고 있다. 작가들은 각자의 강을 건너기 위해 스스로 배를 만들고, 때로는 동료의 손을 잡고 강을 건너간다. 아직 저 너머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강을 건널 때, 물 위에 징검돌 몇 개가 어렴풋이 보인다. 그 돌이 단단한지, 발을 딛을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문화재단의 지원은 그 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징검돌 한 개로 강을 끝까지 건너기 쉽지 않다. 최근 몇 개월 경기문화재단과 <경기도 예술지원 전략 연구>에서 다양한 지원사업 경험이 있는 예술인을 인터뷰하며 정책 수요 분석을 했다. 한 예술인은 이렇게 말했다. “기획서를 쓰는 순간, 만들어야 할 게 정해지니까 오히려 실험하기 어려워요.” 창작이란 계획과 지원서에 맞춰 예측한 결과물만 낳을 수 없다. 강을 건널 때 다양한 사건과 변수를 만나게 되고, 때로는 실패가 가장 큰 성장의 자산이 된다.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창작은 낯선 강을 건너는 일이다. 예술인이 이 강을 건널 때, 정책과 행정이 돕는 원칙과 태도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다중 역할의 짐, 단일하지 않은 예술인의 정체성

이번 연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발견 중 하나는 예술가들이 자신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떤 공연 예술가는 연출가이자 행정 담당자였고, 시각 작가는 설치 작가이자 홍보 담당자였으며, 문학인은 돌봄 실천가로서 글을 썼다. 일부 작가는 자신을 예술가라 부르기보다 ‘질문자’, ‘기록자’로 명명했다. “저는 그냥 저한테 필요한 자연, 조건, 주제가 있으면 어디든지 가요. 그게 경기도든 어디든 상관없고요.” 예술가의 경계 확장은 그들의 창작을 풍부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모든 역할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립으로 이어진다. 전시 기획부터 홍보, 정산까지 스스로 떠안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예술가들은 창작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했다. 한 시각 예술인은 이렇게 토로했다. “전시 비용은 지원되지만, 전시 과정 전체를 감당하는 건 여전히 혼자라서 단절감이 있어요”. 공연 예술가는 “6개월 안에 모든 것을 완성하라는 요구는 현실의 창작 리듬과 맞지 않아요”라며 현 제도의 압박감을 토로했다. 문학 분야 역시 “책을 낸 후 북토크나 유통으로 이어질 플랫폼이 부족해요.”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예술가들은 ‘연속성’과 ‘과정’의 지원을 요구했다. 창작은 단 한 번의 성취가 아니라, 실패와 실험을 거듭하며 성숙해지는 유기적 과정이다. 요즘 인기가 많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7년 동안 실험을 거듭하며 창작의 강을 건넜다. 그러나 현재의 지원 제도는 여전히 ‘결과물’ 중심, ‘성과’ 중심의 사고에 갇힌 행정의 경향성이 강하다.


창작의 강을 함께 건너는 정책

이번 연구에서 예술인의 7대 수요 중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시작할 기회를 달라”와 “계속 작업할 수 있게 해달라”였다. 작업이 작업을 부르는데, 첫 작업을 완성하기 위한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는 점, 그리고 그 이후의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가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한 시각 예술가는 이렇게 말했다. “기획자가 있으면 덜 외로워요. 혼자 전시 준비를 다 꾸려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지치게 만들거든요.” 창작의 강을 건너는 동안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방향을 함께 찾아주는 기획자, 혹은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비평가의 존재는 예술가에게 힘이 된다. 좋은 지원은 전문 조력자를 부르고, 좋은 조력자는 필요한 징검돌이 된다. 공연 예술인들은 “한 번 공연하고 끝나는 구조가 아쉽다”며, 재공연·순회공연·발전형 워크숍을 제안했다. 문학인들은 낭독극, 공연 협업, 시 뮤직비디오 등 다원 예술과의 교류를 꿈꿨다. 이는 결국 장르 간, 지역 간 ‘협력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모인다. 지역이 예술가에게 실험과 교류의 허브가 된다면, 예술가는 지역을 넘어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


예술은 삶을 품는다. 창작의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공공 조직이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예술가가 창작의 강을 건널 때, 어떤 징검돌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지원금, 공간과 시간, 네트워크, 그리고 실패를 허용하는 행정의 태도까지 포함한다. 공정한 심의를 통한 지원금 분배와 투명한 정산이 ‘창작의 강’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로 그 책임성을 다할 수 있을까? 하나의 조직이 모든 징검돌을 놓을 수는 없다. 조직 차원에서 ‘우리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징검돌을 어떤 원칙과 방식으로 놓을까?’로 질문을 바꿔볼 수도 있다. 예술인은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조직에서 내놓은 다양한 징검돌을 단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도시는 예술가를 품어주는 도시이다. 예술가가 창작의 강을 건너 새로운 세계에 도착할 수 있을 때, 우리나라와 우리 지역에도 더 넓고 깊은 문화의 강이 흐를 것이다.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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