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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Like Song Jan 08. 2023

교토행 열차에서

여행을 관장하는 신 중 으뜸신인 날씨의 신의 간택을 받았나 보다. 잔잔히 들어오는 햇볕과 규칙적으로 덜컹 거리는 철도 소리에 가족들 모두 잠이 들었다. 심카드 사용부터 QR코드를 활용한 검역 통과까지, 새벽부터 지나치게 많은 신기술을 접해서 그럴 게다. 나 역시 눈을 조금 붙이고 싶지만,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박식한' 가이드가 되기 위해 컨닝 페이퍼 자료 공부에 이 시간을 쓰기로 한다.


이 좁은 좌석에 앉아서 그렇게 돌아다닌 거냐, 가장 멀리 간 곳은 어디냐. 30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에 나온 아버지는 비행기가 영 불편한 모양이다. 2007년에야 마지막으로 해외에 다녀온 어머니는 이것저것 걱정이 많고, 이제야 두 번째 출국인 동생은 심카드 교체 임무조차 쩔쩔 매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 초보자 모임의 조장을 맡고 있는 것이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 - 서정주 시인의 표현처럼, 나의 20대는 제트기류를 타고 흘러다녔다. 자유롭고 꿈에 부푼 나날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 혼자서 돌아다니며 느끼는 외로움과 미안함이 마일리지와 함께 차곡차곡 쌓여왔다. 그러매 내 마일리지가 어느덧 지구 반대편을 갈 수 있을만큼 쌓일 무렵, 온가족이 드디어 기회를 잡아 이렇게 일본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서진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 했지만, 막상 나오니 이거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입국심사, 환전, 하다못해 점심을 사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물흐르듯 지나간 일들이 하나하나 면밀한 결재를 요구하는 보고로 올라온다. 아, 이서진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날씨의 신의 가호가 숙소의 신, 식당의 신과 함께 다음 일주일간 나를 지켜주기를. 이제 잠에서 깬 조원들의 질문에 답해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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