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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다고 계속 말해야 어떻게든 길이 생긴다

by 단단
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7월 30일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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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를 보았다



지난 주말에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어요. 밑미에서 함께 활동하는 시선님이 제가 번역 공부하는 것을 아시고 홍한별 번역가의 에세이를 보내주셨어요.


홍한별 번역가님은 저의 번역 롤모델이시거든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셨을까요. 여쭤보니 제 롤모델인 줄은 몰랐지만 번역가님의 책을 보고 제가 떠올랐다고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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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열어 날개에 실린 작가 소개를 보는 순간,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섬광처럼 제 미래가 떠올랐어요.


제갈명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산다. 지은 책으로는 <내 일을 위한 기록>, <매일매일 채소롭게> 등 10권이 있으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 루이스 캐럴 등의 고전 작가부터 현대 작가까지 50여 권의 책을 옮겼다. 제3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영한 번역뿐 아니라 일한 번역과 불한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에이, 그냥 롤모델 자기소개 따라 한 거 아니냐고요? 맞아요. 그러나 이 상상 속 자기소개가 정말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제 것인 듯 생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미래를 기억하는 감각이 이런 걸까요.




읽고 쓰고 옮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회사 밖에서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냐고요? 글을 매만지는 일이라면 뭐든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해보니 어떤 글은 돈을 준대도 쓰기 싫고, 어떤 글은 돈을 받지 않고도 쓰고 싶더라고요. 저는 결국 책이 되는 글을 쓰고 싶은 거였어요. 거실 공용 컴퓨터로 소설을 쓰던 10살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꿈이죠.


두 번째 책을 쓰고 내면서 세 번째 책을 구상하면서 번역을 배우고 훈련하면서, 이 꿈이 제 안에서 더욱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것을 느꼈어요.


저는 책이 될 글을, 글이 될 문장을, 문장이 될 단어와 단어 사이를 오가며 퍼즐을 맞추듯 글을 매만지는 바로 그 과정이 너무 좋거든요.


예민함 덕분에 얻은 섬세한 언어 감각으로,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저는 글 속에서 점점 더 자유로워졌어요. 번역을 배우고 나니까 한 꺼풀 장막이 걷힌 듯 더 선명하고 드넓은 자유가 펼쳐지더라고요. 이전에는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기술이 부족해서 답답했거든요. 우리말 어법과 문장 구조를 배우고 나니까, 이럴 때는 문장 구조를 어떻게 배열해야 하는지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글은 어떻게 쓰는 건지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52584_2921382_1753774746629159969.jpeg 어린 시절 썼던 판타지 소설과 감상문들





돌고 돌아

결국 내 자리로



기억을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 가장 재미있게 듣고 성적도 좋았던 과목은 '언어학'이었습니다. 언어의 구조, 글쓰기 모델링, 기표와 기의 관계 분석, 이런 내용들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기도 했지만 저는 돈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었거든요. 일단 빨리 돈을 벌고 싶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결국 사람은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더라고요. 돌고 돌아 저는 혼자만의 세계를 항해하며 글을 쓰던 10살짜리 아이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그때와 달라진 것도 많죠. 이제 글로 돈을 벌 방법을 찾아냈고, 대단한 작가가 되지 않아도 글을 계속 쓸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방에 혼자 틀어박혀 글 쓰는 나를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생겼거든요.


52584_2921382_1753775148042603526.jpeg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대학 글쓰기 수업





하고 싶다고 계속 말해야

어떻게든 길이 생긴다



계속하다 보면 어떻게든 길이 생긴다고 하잖아요.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요. 하고 싶다고 계속 말해야 어떻게든 길이 생긴다고요.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글을 쓰던 시기에는 길이 보이기는커녕 지금 내가 빠져있는 이 땅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부끄럽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번역을 하고 싶다고 책을 내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계속 말하다 보니 그제야 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런 글쓰기 초보에게 누가 관심을 가져주긴 할까 걱정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일이 있고 초보에게 주어지는 기회도 있더라고요. 잘 찾아보니 베테랑 작가들이 안 하려고 해서 남는 일들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우리에게는 절실한 사람에게 한 번 정도 기회를 주고 싶은 측은지심이라는 게 있잖아요. 아마 제가 누렸던 과분한 기회들은 그 측은지심 덕분이었을 겁니다. 아직 고작 번역가 지망생이면서 번역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번역이 너무 좋다고 번역을 하고 싶다고 나중에 유영번역상도 받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부끄러움은 잠깐이죠. 가만히 있는다고 기회가 제 발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요. 이렇게 계속 말하고 다니면 지금 당장 기회가 오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번역이 하고 싶은 제갈명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지 않을까요? 그 흐릿한 기억이 기회로 연결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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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를 쓰기 직전. 저는 세 번째 책의 출간 기획안을 보냈습니다. 아직 엉성하고 빈틈이 많은 기획안이지만 계속 보여주면서 이런 책을 쓰고 싶다고 말을 해야 또 새로운 길이 보일테니까요.


이제 어쩔 수 없이 밝혀야겠네요.

여러분은 제 꿈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무를 수가... 없어요.


16년 후 52살의 제가 정말 유영번역상을 받게 될 지, 10권의 저서를 내고 50권의 번역서를 옮기고 일한 번역과 불한 번역까지 하게 될 지, 그 과정을 꼭 함께해주세요.


이제 여러분님의 차례입니다. 제가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책날개 속 작가 소개를 읽으며 머릿속에 저의 미래를 떠올린 것처럼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의 머릿속에 반짝이는 미래가 보일 겁니다. 어떤 장면인가요. 여러분이 본 미래를 메일 하단 댓글 게시판에 남겨주세요. 하나하나 소중하게 읽고 끝까지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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