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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실패할 것, 그레이 존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by 단단


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8월 27일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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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늘 최선이 아닌

차선만 선택할까



지난주 책방무사 서점에서 열린 <번역가의 밤: 한일 - 일한 번역자 대담> 행사에 다녀왔어요. 인스타그램에서 홍보 게시물을 보자마자 바로 신청했어요. 영한 출판 번역을 공부하면서 번역계 전반에 관심이 생겼고, 또 매일 30분씩 8개월 넘게 일본어 공부를 하다 보니 일본어 번역도 궁금해졌거든요.


행사 당일 저녁, 설레는 마음으로 책방 문을 열었습니다. 아담하지만 단정하고 깊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책방 안에는 번역가님들이 일찌감치 오셔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와... 외국어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너무 멋지지 않나요?


그 순간, 익숙한 불편한 감정이 제 어깨 위에 슬며시 내려앉았어요.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에 끼어서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던 기억,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외국어 문학 전공이었던 제 주변에는 외국어 능력자 친구들이 많았어요. 외교관인 아빠를 따라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내고 외국어 특기생으로 입학한 친구, 명문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해 탄탄한 선후배 인맥이 있었던 친구,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비상한 머리로 이 쟁쟁한 아이들 틈에 자신 있게 서 있는 친구, 그 친구들 사이에서 제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 보이더라고요.


꿈에 그리던 연대생이 되었지만, 학원과 과외로 '만들어진' 명문대생이던 저는 타고난 머리, 환경, 인맥을 영영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는 패배감에 휩싸였고 대학 공부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자꾸만 옆길로 새려고 하는 성향은 그때부터였을까요.


연세대에 들어갔지만 점수에 맞춰 불어불문학과를 선택했고,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스펙에 자신이 없어 영업직군에 지원했어요. 매 순간 나는 왜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는 사람인 건지,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마음먹고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해도 안 되는 싸움일 거라고 지레 겁을 먹었죠. 그래서 결국 제대로 해보지 않았습니다. 노력했는데 못하는 걸 들킬 바에야 안 한 거라고 말하는 게 나으니까요.


전업 작가를 못한 게 아니라 돈이 안 되니까 안 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두려웠던 거죠. 제대로 해봤는데도 별 볼 일 없는 글만 쓸까 봐서요. 그래 놓고 부모님 탓을 했어요. 우리집은 내가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어야 하는 형편이니까, 부모님 생활비를 드려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꿈보다 현실을 택한 거라고요.


이건 다 변명이었어요. 아빠는 올해 65세로 은퇴를 하시기 전까지 4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셨거든요. 부자는 아니었지만 돈 때문에 서러울만큼 가난한 적도 없었어요. 그래놓고 부모님 탓을 한 거죠. 사실 그냥 나 하나 책임질 자신이 없었던 건데.


결국 청춘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건, 부양해야 할 가족도, 경제 공동체인 남편도, 돈도 아닌 제 자신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게 돌아왔기에 결국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더라고요. 쉽게 주눅들고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제 성격으로 대학 졸업하자마자 전업 작가에 도전했다면, 통번역 대학원이나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저는 내내 풀이 죽은 채로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마음을 다쳐 꿈을 영영 접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게 정말 내 꿈이었다는 건, 이 길이 내게 최선이라는 건, 차선의 삶을 힘 닿는 데까지 살아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습니다.


52584_2962894_1756208699620087122.jpeg 책방무사 <번역가의 밤> 행사 포스터




그레이 존을

사랑하는 마음


다시 <번역가의 밤> 행사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웹툰을 번역하는 이진현 번역가님이 소설을 번역하는 오영아 번역가님께 이렇게 물었어요.


"소설은 원문 자체가 어려워서 이해 안 될 때가 많잖아요. 매번 저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내 해석이 틀릴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으실 텐데, 어떻게 극복하세요?"


"두렵죠. 늘 틀릴까 봐 두려워요. 그런데 왜 꼭 정답을 찾아야 할까요? 독자가 원하는 게 정답일까요? 작가가 의도한 게 정답일까요? 작가에게 답이 없었을 수도 있고, 독자가 답을 굳이 안 보고 싶을 수도 있어요. 답이 없는 상태, 이해 안 되는 상태를 우리는 너무 못 견디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상태를 견디지 못하면 번역을 할 수 없죠. 번역가는 그레이 존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얼마 전, 성해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입으로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하면서 정작 제게는 소설을 쓸 마음이 없었다고요. 소설은 문제와 함께 있어주는 글인데, 저는 문제를 1초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어설프게라도 당장 문제를 해결해 버려야만 하는 저는 에세이는 써도, 자기계발서는 써도, 소설은 못 썼던 거예요.


하지만 이제 그레이 존을 사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정해진 경로를 이탈한 제게 허락된 길은 그레이 존 뿐이니까요.


생각해보면 답이 정해져 있는 입시 공부도 그레이 존을 통과해야 하잖아요. 모든 걸 하나하나 이해하려고 들면 절대 진도를 나갈 수 없으니까요. 어느 정도는 이해 못한 상태로 일단 외우다보면 그렇게 외운 지식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시간이 지나 저절로 이해되기도 하잖아요. 어쩌면 모든 성장에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것 아닐까요.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끌어안고 일단 계속 가봐야 다음 문이 열리는 거죠.


좋아하는 것만 해서는, 이해되는 것만 해서는, 잘하는 것만 해서는 절대 열 수 없는 문. 저는 지금 그 문앞에 서 있어요. 매끈한 답만 손에 쥐고 살았던 삶에서 흐릿한 실마리를 붙들고 가는 삶으로 넘어가보려고 합니다.


꿈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12년이나 걸렸.. 아니네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흘려보냈던 대학시절까지 포함하면 16년이군요. 16년이나 돌아와야 했던 제가 꿈에게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직업 윤리가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주어진 시간과 기회 안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실패하고,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 그레이존을 사랑하는 태도입니다.


52584_2962894_1756208808543561444.jpeg <번역가의 밤> 오영아 번역가님이 옮긴 책들





준비를 위한 준비는

이제 그만



어쩌면 저는 실전에 나가기가 너무 두려워서 준비만 준비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작가가 되려면 일단 계속 글을 쓰고 투고를 하며 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저는 작가가 될 자격을 갖추기 위해 대학원에 가야 하나, 대기업 임원 정도의 커리어를 갖춰야 하나, 이런 고민만 했어요. 작가가 될 만큼 글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보지도 않았으면서 괜히 상황 탓, 남 탓, 재능 탓을 한 거죠.


앞으로 준비는 그만하려고 합니다. 매끈한 정답 같은 건 어차피 없으니까요. 내가 갈 길인데 스스로 만들어봐야죠. 소설가가 되고 싶으면 소설을 쓰면 되고, 전업 작가가 되고 싶으면 매일 글을 쓰면서 이 시간을 버티면 되고, 번역가가 되고 싶으면 원서를 꺼내 번역을 시작하면 됩니다.


저와 함께 이제 그냥 시작해보실 독자님 계신가요?

여러분은 어떤 준비를 내려놓고 어떤 시작을 해보고 싶으신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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