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38기 사관후보생 1일 차의 기록
사관과 신사: 젊은 청춘의 기록
1. 들어가며:
옛 앨범을 꺼내보다가 우연히 장교 입문 교육 시절 썼던 수양록을 발견했다. 수양록은 군인들이 쓰는 일종의 일기이다. 수양록의 첫 시작일은 2001년 7월 10일이고 마지막 날은 2001년 8월 26일이다. 기초교육 시작일부터 임관 직전까지 내 젊은 날의 기록인 것이다.
내게 너무 의미 있는 기록이라 원본의 글과 더불어 나의 감상을 담아 틈날 때마다 날짜 순서대로 브런치에 남겨 놓으려 한다. 잃어버렸던 20대를 다시 찾은 기분이다. 따뜻한 봄날에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의미 있는 글쓰기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2. 수양록 원본 내용
사관후보생 신분으로 맞이하는 첫날이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막연하고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언젠가 꼭 맞이하고야 말 그날을 위해 나를 연단하고 또 연단하리라. 고통과 고뇌의 시간이 많겠지만 언젠가 다시 이 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나 자신과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그날을 준비해 나갈 것이다.
There’s two diverged road near the yellow wood I’ve never been taken…..
2001년 7월 10일 화요일
3. 다시 쓰는 수양록
01년 7월 9일 월요일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당시 학사장교는 영천에 있는 3 사관학교에서 장교 입문 훈련을 위탁 교육했다. 영천은 나의 고향이다. 15년 넘게 떠났던 고향을 장정이 되어서 다시 찾은 기분은 참 묘했다. 초등학교 때 3 사관학교로 봄소풍을 지주 갔었다. 당시 충성연병장 한 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을 바라보면 반대편이 지평선에 가려서 보리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었다. 내게는 그 모든 풍경이 다소 익숙했지만 그래도 그날 충성대 정문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정말 무겁고 생경했었다. 입구에서 상인들이 무릎보호대, 손목 보호대, 붙이는 파스, 아대, 전자시계 등을 매대에 깔아 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다른 동기들은 부모님, 친구, 애인이 마중 나왔다. 그러나 나는 홀홀 단신 외로이 충성대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각각 신분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 이동했다. 마중 나온 가족들을 향해 큰 소리로 경례했다. 마중 나온 인파들과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충성대 안으로 대오를 맞춰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를 인솔했던 훈육장교님은 바르고 권위 있는 말투로 3 사관학교의 주요 건물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장교 우의를 입고 당당하게 걷는 그가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신감 있는 태도, 차분하지만 무게감 있는 발성, 바른걸음 정말 흐트러짐 없는 장교의 정석을 보여주셨다. 나도 그분 같이 멋진 장교가 될 수 있을까라 생각했다. 쉽지 않겠지만 그날 꼭 그렇게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얼마 전 나는 그분은 사단장으로 보임되어 명예로운 군생활을 이어나가고 계시다는 기사를 접했다.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젊은 시절 나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첫째 날부터 한 달 동안은 ‘군인화 단계’로 진행된다. 말과 행동뿐 아니라 모든 생활의 절차를 군인처럼 개조시키는 것이 첫째 달의 교육 목표였다. 각 중대 생활관에 도착했을 하자마자 우리는 직각으로 걸어 다니도록 교육받았다. 걸음걸이도 두 팔과 다리를 직각으로 뻗어 걷는 큰 걸음으로 걸었다. 식사도 직각식사이다. 지각식사가 흐트러지면 어김없이 훈육 장교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누가 허리를 굽히나? 장교는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알겠나’
우리는 첫날 하루 종일 허둥지둥 대며 쫓겨 다녔다. 우리가 느리기도 했거니와 의도적으로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았다. 그곳의 계획은 분초를 다투는 전쟁처럼 통제되었다. 전후방 각지에서 2차 중대장까지 마치고 보임된 노련한 훈육 장교들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우리를 손바닥에 올려놓은 듯 노련하게 지휘했다.
위 일기는 둘째 날 밤 저녁 점호를 앞두고 3분 이내에 급하게 쓴 일기이다. 3개월 뒤 멋진 정복을 입고 국가와 가족들 앞에 설 것을 기대하면서 의지를 다졌었다. 그러면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이 기억났었나 보다. 그때는 군사학 과목 교재 이외에는 아무런 책도 반입할 수 없었다. 암기하지도 참고하지도 못했으므로 문장은 원래의 시와 전혀 다르다. 그러나 두려움과 기대가 섞인 그 마음은 너무 잘 전달된다. 가지 않은 길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1916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삶에서 나는 여러 선택들을 하며 살아왔다. 나는 삶의 여정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해왔다. 그리고 항상 그 선택은 성공과 실패를 수반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실패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일에는 다 실패해도 괜찮다.
그때마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사랑을 찾는 일에는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의 은사님이 내게 가르쳐 주신 소중한 문장이다. 그분은 이것이 바로 신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이고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라 가르쳐 주셨다. 나는 앞으로도 '다른 일에는 다 실패하더라도 '참된 사랑을 찾는 일에는 실패하면 안 된다'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갈 것이다. 때때로 나의 어리석은 선택 때문에 한 없는 고통 속에 헤맨다고 할지라도 나는 참된 사랑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랑의 떨림이 없다면 더 이상 살아서 무엇할 것인가?
ps. 훈육장교님! 학사 38기 3중대 유재영입니다. 사단장 보임을 축하드립니다. 제 기억에 훈육장교님은 진짜 군인이였어요. 좋은 사람은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사단장으로 보직을 잘 감당하시라 믿습니다. 장군님 앞날에 더 큰 영광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