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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May 17. 2024

들장미, 독일어 공부의 시작

처음 해보는 독일어 공부

들장미,  독일어 공부의 시작

<시정 앞에 핀 작약>

이름 모를 꽃들이 코를 찌르는 향기를 품어내는 계절이다. 바람이 불면 정원의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처럼 온갖 소동을 일으킨다. 서원의 뒤뜰이 보이는 창 밖으로 찬연한 숲의 춤사위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속세를 떠나 무릉도원 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이다. 맑은 흰빛으로 정문을 밝히는 불두화, 수묵화의 연연한 빛깔로 이제 자기 몫을 마무리하는 모란꽃잎, 저 위 시정에 핀 붉디붉은 작약도 찬란한 자신의 한때를 곱게 장식하는 듯하다. 신록의 가지들은 가까운 하늘의 여백을 메우려는 듯 창공을 향해 그 잎사귀를 뻗어 낸다.


<좌:모란꽃, 우:서원뒷뜰>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독학이다. 멀리 뻗어 내 인생의 여백을 채우려 나는 이토록 무모하게 나의 손을 하늘로 뻗어본다. 훌륭한 독일어문학자이신 선생님께 독일어 공부의 방법을 여쭤봤다. 그러나 어학 공부에 딱히 지름길이란 있을 수 없고 마음에 드는 시나 산문을 외워보는 게 어떠냐 하신다. 그렇다. 공부에 지름길이나 정도가 있다고 생각한 나는 정말 어리석었다. 진짜 공부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나이에 다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학위를 위함도 어떤 이득을 얻고 싶어서도 아니다. 이유라면 그저 원서로 내가 흠모하는 작가들의 책들을 살뜰하게 읽고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궁금함의 도가 극한에 달해 도저희 참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천지의 사물들을 궁금해하며 ‘이건 뭐야? 저건 뭐야?’하며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처럼, 처음 글을 익힌 아이가 온 세상의 글자란 글자를 모두 읽어 대는 것처럼 내게도 그런 호기심이 생겼다.


최근에 독일어 사전 하나 들고 니체의 [짜라투스 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문을 읽어 나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 철학자의 책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배운 게 전부인 나의 독일어 실력으로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일 리 없지만, 좋아한다는 것 하나 믿고 끈기 있게 공부해 볼 생각이다.


그러던 중 오늘 괴테의 <들장미>라는 시를 한 손에 들게 되었다. 오늘은 독일어 사전 하나 들고 이 시를 한번 번역해 보려 한다. 누군가 왜 그러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웃을 수밖에.


1. 장미: 아끼고 싶고 가냘픈 아름다운 여인

1연 단어장

Heidenröslein(Goethe)


1.


Sah ein Knab' ein Röslein stehn,

Röslein auf der Heiden,

War so jung und morgenschön,

Lief er schnell es nah zu sehn,

Sah's mit vielen Freuden.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Röslein auf der Heiden.

 

들장미(괴테)


보았네 한 소년이 서 있는 장미

들에 핀 장미를

너무나 젊고 그리고 아침처럼 아름다운

빨리 달려 가까이서 보았네,

보았네 큰 기쁨으로

장미, 장미, 장미, 붉은

들에 핀 장미.


괴테의 이 시는 매우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소년이 들장미를 보고 기뻐서 뛰어간다’는 것뿐이다. 여기서 본다 것의 의미가 새롭다. 꽃 그것도 들에 핀 장미를 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소년이 들장미를 보았던 것이다. 순순하고 맑은 아직도 태고의 호기심을 가진 소년이기에 그 장미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세파에 시달리고 온갖 의무와 당위에 복종하느라 인생을 소진한 나 같은 어른에게 그 장미가 아름답게 보였을 리가 없다. 퇴근길 아내에게 그 흔한 장미 한 송이 건네지 못하는 나, 그리고 들에 핀 장미의 아름다움을 상상하지 못하는 나는 또 얼마나 가여운 인생인가?


문득 학장시절에 배운 노류장화(路柳牆花)라는 단어가 기억난다. 노류(路柳)는 길에 있는(路) 버드나무(柳)를 뜻하고, 장화(牆花)는 담벼락(牆)에 핀 꽃(花)을 말한다. 길가의 버드나무나 담에 핀 꽃은 누구나 쉽게 꺾어 갈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기생을 노루장화(路柳牆花)라고 불렀단다. 내 성씨로 쓰이는 버드나무(柳)가 그런 뜻으로 격하된다 하니 너무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장미(薔微)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장미의 장(薔)은 풀 초(草)와 아낄 색(嗇)이라는 글자가 합쳐져 장미 장자라는 글자가 되었다. 장미 미(微) 자는 풀 초(草)와 작을 미(微) 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이렇게 의미를 해석해 보면 장미는 아끼고 싶고 가냘픈 아름다운 여인을 상징하는 아주 아름다운 단어인 것이다. 소년은 이 아끼고 싶고 가냘픈 여인을 보며 크게 기뻐한다.


그 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Morgenschön은 괴테 이전에는 세상에 없던 단어이다. 작가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Morgen(아침)+schön(아름다움)이라는 두 단어를 합성하기까지 했다. 너무나 젊고 아름답다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싱그러운 아침 같은 그러면서도 순수한 들에 핀 아름다운 장미를 설명할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 낸 것은 너무나 놀랍다.  


2. 널 가질 거야! 날 영원히 기억해

2연 단어장


2


Knabe sprach: "Ich breche dich,

Röslein auf der Heiden."

Röslein sprach: "Ich steche dich,

Daß du ewig denkst an mich,

Und ich will's nicht leiden."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Röslein auf der Heiden.

 


소년이 말했네: "난 널 꺾을 거야,

들에 핀 장미."

장미가 말했네: "난 널 찌를 거야,

영원히 나를 생각하도록,

그리고 참고만 있지 않을 거야."

장미, 장미, 장미, 붉은

들에 핀 장미.


앞서 노류장화(路柳牆花)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면서 쉽게 ‘꺾을 수 있는’ 풀과 꽃에 대해 말했다. 소년은 장미에게 꺾을 거라 말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꽃을 꺾는다’라는 말은 남녀 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말로 쓰이는 것 같다. 소년은 보기에 아름다운 장미를 소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다소 거칠게 사랑을 강요한다. 그러나 젊은 남녀의 사랑은 매혹적인 만큼 상처도 크다. 아무런 편견 없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내어 준 만큼 숨겨둔 마음과 속살은 아파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숙명처럼 첫사랑의 아픈 기억은 영원히 반복된다. 삶의 매 순간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화양연화의 순간으로 혹 영원한 형벌받은 시지포스의 형상으로.


3. 거칠고 아픈 첫사랑의 추억

3연 단어장

3


Und der wilde Knabe brach's

‘s Röslein auf der Heiden;

Röslein wehrte sich und stach,

Half ihm doch kein Weh und Ach,

Mußt' es eben leiden.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Röslein auf der Heiden.

 

그리고 그 거친(wild) 소년은 꺾었네,

들에 핀 (그) 장미.

장미는 스스로 거부하며 찔렀고,

모든 불평도 소용없이.

결국 아픔을 겪어야 했네.

장미, 장미, 장미, 붉은

들에 핀 장미


3연의 둘째 행에 보면 ‘s Röslein( 장미)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Das Röslein 줄임말이다. 다른 행과 차이를 두면서도 낭독할 때의 운율을 위해 ‘s 표기한 것이다. 1행에서 소년은 꽃을 꺾였다. 그리고 이제 들장미는 소년에게 없어서는   의미 있는 아니 사랑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하지만 소년의 사랑의 거칠었다. 거친 사랑은 자연스레 아픈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짝사랑, 첫사랑의 추억은 언제나 아련하고 아프다. 사랑한다 말 한마디 못해본 짝사랑은 그렇다 치고, 불꽃처럼 사랑했던 첫사랑의 추억은 어찌나 아려오는지. 그 사랑이 지금도 아픈 이유는 때로 거칠기도 했지만 순수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그 가시에 찔린 것은 장미가 품고 있었던 치명적인 가시조차 받아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를 거부하며 밀쳐내고 찔러대던 그녀에게 아무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던 내 뒷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시리다.


생각해 보니. 아직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들장미도 아름다운 여인도 아닌 듯하다. 그것은 그 모진 아픔과 슬픔을 견뎌내어 소년에서 어른이 된 바로 나 자신 일 것이다. 나의 내적 특성이나 이 세계가 운행되는 원리를 보아도 영원한 사랑 같은 것이란 있을 리 없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고 웃고 울며 지금 그리고 여기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이 세계에 그런 영원불멸의 것이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혹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면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오늘 이 순간도 무의미한 세상에 던져진 고아나 다름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운명에 맞서 내가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결국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모든 아픔을 겪어내야 한다. 결국 지금 여기서 내가 찾아낸 장미는 가시 많은 자 자신이었던 것이다.  




Heidenröslein 

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


https://youtu.be/s_-hrFfW3NE?si=b1KpOsTI2UthS0m-

들장미 합창

1.

Sah ein Knab' ein Röslein stehn,

Röslein auf der Heiden,

War so jung und morgenschön,

Lief er schnell es nah zu sehn,

Sah's mit vielen Freuden.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Röslein auf der Heiden.

 

보았네 한 소년이 서 있는 장미

들에 핀 장미를

너무나 젊고 그리고 아침처럼 아름다운

빨리 달려 가까이서 보았네,

보았네 큰 기쁨으로

장미, 장미, 장미, 붉은

들에 핀 장미.

 

2.

Knabe sprach: "Ich breche dich,

Röslein auf der Heiden."

Röslein sprach: "Ich steche dich,

Daß du ewig denkst an mich,

Und ich will's nicht leiden."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Röslein auf der Heiden.

 

소년이 말했네: "난 널 꺾을 거야,

들에 핀 장미."

장미가 말했네: "난 널 찌를 거야,

영원히 나를 생각하도록,

그리고 참고만 있지 않을 거야."

장미, 장미, 장미, 붉은

들에 핀 장미.

 

3.

Und der wilde Knabe brach's

‘s Röslein auf der Heiden;

Röslein wehrte sich und stach,

Half ihm doch kein Weh und Ach,

Mußt' es eben leiden.

Röslein, Röslein, Röslein rot,

Röslein auf der Heiden.

 

그리고 그 거친(wild) 소년은 꺾었네,

들에 핀 (그) 장미.

장미는 스스로 거부하며 찔렀고,

모든 불평도 소용없이.

결국 아픔을 겪어야 했네.

장미, 장미, 장미, 붉은

들에 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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