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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Jul 08. 2024

괴테x까뮈: 시지프의 신화 다시 읽기

괴테 x 시지프의 신화 읽기

젊은 괴테의 집의 노을지는 풍경, 여주시 괴테마을
혼란, 불안, 근심이 지나가고 나면
이전의 안전과 무사태평이 찾아온다.
특히 젊은이란
그저 어느 정도 되어가기만 하면,
이런 무사태평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간다.

 <괴테의 시와 진실 1부 3장 내용 중>

우정과 사랑 모든 것을 잃고 괴로워하던 청년이 있었다. 그는 그 괴로운 시간을 견뎌내며서 마침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해 낸다. 그리고 그 작품 속에서 그는 젊은 주인공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 이 책을 읽고 유럽의 많은 청년들이 모방해서 자살하는 일도 일어날 정도로 이 작품은 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비록 베르테르는 죽었지만 젊은 괴테는 그 고통의 시간을 예술로 승화하며 죽음의 충동을 극복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 죽음을 영원히 기억될 작품으로 만들어낸 괴테의 노력과 의지가 새삼 경의롭다.


누구에게나 뼈아픈 고통이들이 있다. 불가에서는 삶은 고해(苦海)라 했다. 의미 그대로 현세(現世)의 괴로움이 깊고 끝 없음은 드 넓고 깊은 바다와 다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축복도 허락했다. 어떠한 고통스러운 시간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아픔까지도 외면하지 않고 감당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끝없이 바위를 높은 산까지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포스에게는 단단한 근육이라는 명예의 상이 주어진다. 꼭대기에 다다르면 이 바위는 다시 바닥을 향해 추락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것들을 올려내야 한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지만 피할 수도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징벌이다. 하지만 내 몸의 살과 뼈들은 저 높은 하늘과 깊은 낭떠러지를  원망하기보다 나를 신뢰하며 이 일을 이어나가고자 결심했다. 그후 나의 몸은 더 단단해졌고, 마음은 한결 부드럽고 가벼워진다. 세월의 흐름 속에 나도 한 뼘 자라났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삶은 한편으로는 비극이다. 인간은 저주받도록 태어난 존재이다. 종교적으로는 원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처해졌다고들 한다. 그래도 오늘  순간을 죽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비극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기 때문이 아닐까? 저주 속에 던져진  몸뚱이를 이제는 통제할 수도 있으며, 저마다의 구원을 바라볼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


죽을 것 같았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 스스로 죽기를 선택하지 못한 것은 아직 살만하다는 방증(傍證)일지도 모른다. 어느 덧 정상에 닿은 시지포스는 떨어지는 바위를 보라보며 땀을 훔쳐낸다. 그리로 아래로 하산을 준비한다.


무한한 신의 저주 속에서도 내려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멀리서 간간히 불어오는 마른 바람도 이제는 청량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사실 올라올 때도 그전보다 덜 힘들기는 했었다. 근심, 혼란, 불안이 지나가면 그리고 그저 되어가기만 한다면 무심히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운명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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