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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Apr 19. 2024

(퇴직일기) 봄을 행복으로 채우는 방법

몇 번의 봄을 더 맞이할 수 있을까 

[봄을 행복으로 채우는 방법]



양자역학에 따르면 공간에 따라서 시간도 다르게 흘러간다. 즉 시간은 공간이 없으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란 상대적인 비교 개념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실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똑같은 시계를 두 개 준비하여 하나는 높은 산악지대에 두고 하나는 낮은 평지에 두고 일정 시간이 지나 둘을 비교하면 높은 지대에 둔 시계가 더 빨리 움직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아주 미세하여 일반 사람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정밀하게는 다르게 흘러간다고 한다. 그래서 산에서 사는 사람과 평지에 사는 사람을 비교하면 산에서 사는 사람의 피부가 빨리 노화되어 더 많이 늙은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생체신호가 공간에 의한 시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주의 영역은 너무 넓고 방대하여 내 존재가 모래알 속에 파묻힌 작은 알갱이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지구별에서 나는 내 소임을 다하기 위해 태어났고 이렇게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다음 세대에게 이 지구에서의 삶을 물려주고 있다.



건강하게 살면서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이 지구별을 떠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작년 건강검진에서 공복혈당수치는 100인데 당화혈색소 수치가 6.5가 나왔다. 당화혈색소 수치가 6.5이면 당뇨병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해야 하는데, 의사선생님이 공복혈당수치가 100이라 정상 범위에 있으니 3개월 가량 식단 조절을 해보고 다시 검사하자고 했다.



외가쪽 친척들은 거의 다 당뇨를 앓았고 당뇨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당뇨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고 있다. 당뇨 합병증의 무시무시함은 여기서 말로 표현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당뇨 쪽 수치는 늘 정상이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6.5라는 생각하지도 못한 수치 앞에서 망연자실했었다.



이후 현미밥을 먹기 위해 쌀과 현미를 5대 5로 섞어 밥을 만들었고, 모듬쌈채소 1kg을 주문해 매 끼니마다 쌈채소로 밥을 먹었다. 쌈은 보통 여덟에서 아홉 가지 정도의 다양한 채소로 구성된다. 부드러운 일반 상추는 물론이고 케일, 로메인, 겨자 등 무척 다양하다. 씁쓰레한 채소도 있고 연하고 부드러운 채소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채소를 골라가며 먹기 때문에 쌈밥으로만 식사를 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지난 주 3개월이 되어 혈액검사를 했고, 어제 병원에 가서 결과를 들었다. 당화혈색소 수치가 6.3으로 내려가 있었다. 정상수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당뇨병 전 단계 수준으로 떨어졌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의사선생님도 수치가 떨어졌다며 당뇨 진단을 내리지 않았다. 무력감을 유발했던 갑상선저하증 수치도 내려가서 그 약도 처방을 내리지 않았다. 3개월만에 무척 건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쌈채소와 현미밥 식단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건강으로 인해 자녀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없어야하기에 건강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다.



아침이면 걷기운동을 하러 나간다. 8시 30분쯤 나가서 9시 30분 가량 들어온다. 4000보 가량 걷는데 시간이 한 시간이나 걸리는 까닭은 중간에 아름다운 꽃이며 이름모를 풀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 걸음을 멈추기 때문이다. 



봄이란 시간은 봄이란 공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우주 속 이 시공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작은 단위의 그것으로 어떻게 떨림과 울림으로 움직이고 빛을 반사하여 우리에게 아름다운 색을 선사하는지 그 과학적인 원리를 모르지만, 봄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인간은 단 세 가지 색으로 지금 우리 눈으로 보는 모든 색을 구별하지만, 다른 동물은 여섯 가지 색으로 색을 구분할 수 있어 인간보다 훨씬 찬란한 색깔의 항연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세 가지 색의 조합으로 볼 수 있는 이 지구의 봄이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내가 이 봄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겠는가. 이 봄이 매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봄이 나를 향해 걸어올 때 활짝 마음문 열고 버선발로 나가 맞이하면 봄과 나는 하나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길을 걷다 모르는 풀을 만났을 때. 모르는 꽃을 만났을 때 사진을 찍으면 봄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갈퀴덩굴이 연한 이파리를 세상밖으로 내놓는 것을 보았다. 곧 있으면 작고 앙증맞은 분홍빛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그 꽃을 기대하는 시간 동안 나는 행복할 수 있다.


봄은 꽃이 피어나는 것들을 기다리는 설레임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어제의 들판이 다르고 오늘의 들판이 다르다. 풀은 무성해지고 색은 진해진다. 토끼풀도 저렇게 높이 나무처럼 크게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늘 땅 아래에서만 자그맣게 잎을 내놓는 줄 알았는데 마치 야생의 거친 전투에서 막 승리하고 돌아온 전사 같이 늠름하게 성장해 있었다. 민들레는 벌써 씨앗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있다. 진한 향기의 수수꽃다리도 이제는 지고 있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하얀제비꽃이 오늘은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이 어제와 같아 보이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성장하지 않은 것 역시 하나도 없으며, 쇠락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도 없다. 어제나 오늘 모두 세포들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는다. 그러면서 주름이 지고, 꽃잎 떨구고 이파리들을 애벌레에게 내어준다. 그렇게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겨울 속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니 어찌 오늘 내게 주어진 이 하루가 소중하지 않겠는가. 얼마나 많은 변화가 내 몸속에서, 저 창밖 풀들과 꽃과 바람 속에서 파동을 치며 날아가고 부딪치고 깨어지고 합쳐지고 새롭게 창조되고 있겠는가. 오늘을 잊어버리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오늘은 이미 내 행복의 최대값을 채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전되겠지만 내일 또 아침에 채울 수 있으니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급하게 처리할 일도 많고 일터 밖으로, 육아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 힘든 환경에 처해 있을 수도 있겠지만 5분만 시간을 내어보자. 굳이 산으로 들로 나가지 않아도 봄은 우리 근처에, 코 앞에 도착해 있다. 전신주 아래, 길가 가로수 아래에서 작은 봄들은 온몸을 다해 일어서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며 내년의 봄을 위해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오늘 생명의 신비로움 그 행복에게 5분의 시간을 내주지 않겠는가. 코 앞에서 파동으로 지나가는 그 봄의 입자를 벌름거리며 내 코안으로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봄을 몽땅 잃고 말 것이다. 봄에는 유난히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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