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냉장고를 가져본 적이 있다.
작은 냉장고였는데
그 안에 항상 넣어두던 것과
그 옆에 항상 구비해두던 것들이 있다.
넣어두던 것 : 우유, 달걀, 토마토, 요거트
구비해두던 것 : 바나나, 콘플레이크
콘플레이크를 제외하고는 계속 쟁여둬야 하는 것들의 유통기한이 짧은 편인지라
일주일에 한두 번 장을 봐야 했다.
지난주에 지인이 묻기를,
'일주일 동안 이것만 먹어야 한다 ! 하면 뭐야?'
라고 묻길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만의 냉장고가 있던 그때가 떠오르길래,
앞서 그 얘기를 했다.
무튼, 내가 뱉은 대답은 '달걀'.
바나나는 간단한 한 끼로 너무 먹어대서였는지 서울에 와선 스스로 바나나를 찾아 먹은 적은 없었다. 다만 달걀은, 삶아도 먹고, 라면에도 넣고, 프라이를 만들어 볶음밥에 올려 먹으며 꾸준히 소비하고 있었으니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완숙보단 반숙이 좋고, 프라이를 해서 먹어야 하면 늘 두 개를 만든다.)
그랬는데 지난주엔 갑자기 토마토가 떠올랐다.
코로나로 마트에 가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온라인으로 장을 보는데, 토마토가 느닷없이 그 리스트에 속해진 건 그 때문이었다.
손이 큰 엄마는 한 박스의 토마토를 들여놓으셨고..
막상 한 박스나 생기게 되니 손이 잘 안 갔다.
심지어 대저 토마토라서 박스 안에 담긴 것들은 죄다 검붉은 낯선 색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며칠을 그냥 박스에 두었던 것 같다.
엄마는 토마토가 후숙이 빨리 되고 있으니 빨리 먹으라 한 소리를 하셨고..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끼니마다 토마토를 챙겨보기로 했다.
(앞으로 내가 먹고 싶은 건 내가 시키기로 했다. 소량 주문을 할 거다..)
어느 날은 토마토를 발사믹 식초에 버무려 먹었다.
또 어느 날은 설탕을.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시던 설탕 뿌린 토마토는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사실 그 어렸을 때의 기억을 여태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아빠가 담아두신 캠코더 파일에 나는 항상 토마토 설탕 조림을 들고 있었고, 덕분에 입 주변엔 토마토 색 얼룩이 잔뜩이었던 거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이 생기고 나서도 그 간식은 종종 먹었던 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동생이 먹는 속도가 느리니 그 몫을 내가 탐내 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나무라던 모습이 담겨있기도 했고.
오늘은 토마토 쥬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다만 기억에 집에서 먹는 토마토 쥬스는 늘 껍질이 거슬렸기에 찾아보니, 살짝 데친 뒤에 껍질을 벗겨내는 방법이 있었다.
토마토 뒷부분을 십자로 잘라 끓는 물에 일분 정도.
껍질을 벗겨내기가 쉬워질 뿐만 아니라, 열을 받은 토마토에서 영양분이 더 생긴다고 했다.
영양분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물을 올리고는 토마토를 씻어 칼집을 냈다.
그리고 퐁당.
일분을 대충 잰 뒤 꺼내어 껍질을 깠다.
한층 물렁해진 토마토 덕에 손에는 껍질뿐만 아니라 토마토 즙이 가득 묻었는데,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좀 성가실 뿐. 엄마께서 왜 한 번도 껍질을 까서 갈아준 적이 없는지 알겠더라.
엄마들이 자주 하는 말 : '껍질에 영양소가 많아'
토마토 껍질도 그 범주에 들어갈진 모르겠다만..
찾아본 레시피에는 소금과 꿀을 넣어 갈으라 적혀있었는데, 대저 토마토인걸 감안해서 꿀만 넣어 갈았다.
조금 따뜻한 걸 빼고는 껍질이 없으니 목 넘김이 확실히 좋더라.
얼음을 두세 알 꺼내어 넣고는 도마와 칼, 믹서기를 씻어두었다. 그리곤 얼음을 저으며 한 컵의 토마토 쥬스를 다 마셨다.
토마토는 네 알을 썼는데, 네 알을 가장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자 어떻게 보면 제일 귀찮게 먹어낸 방법이었다.
소비적인 하루들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먹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뭔가 생산적인 느낌을 준다. 아이러니하단 표현을 쓴 건 결국 그 재료들이 다 소비로 준비된 거라서 그렇다.
아직 박스엔 토마토가 다서여섯알 정도가 남았다. 내일은 꿀과 얼음을 같이 갈아야지. 토마토를 다 먹으면 오렌지 쥬스에 도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