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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llow Mar 13. 2018

영화 리틀 포레스트

제약의 아름다움

최근 알쓸신잡 시즌2에 출연하며 유명해진 홍익대학교 유현준 교수는 그의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방향으로 당겨지는 중력이 있었기에 무중력 상태보다는 조절 가능한 삶이 시작된다. 중력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한 방향으로 흐른다.
제약은 언제나 더 큰 감동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묶고 있는 제약이 사라지면 인생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약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노력들은 대부분 다른 제약이 되어 돌아온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주연도 그렇다. 주연은 사라진 어머니라는 존재를 잊기 위해 투쟁한다. 엄마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울에서 고생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결국 조용히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녀는 '자존심'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고향을 떠난 이유, 다시 돌아온 이유 모두 그놈의 자존심 때문이다. 그녀에게 자존심, 특히 어머니에 대한 자존심은 중력과 같은 제약이다.


이러한 주연을 성장하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와의 추억이다. 어머니가 알려준 음식을 통해 우정을 다지고, 갈등을 해소하며 의미를 깨닫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방황하던 주연의 눈빛은 서서히 정면을 향해 자리 잡는다. 그렇게 보낸 고향에서의 4계절. 그녀는 어느새 자존심이라는 수직적 제약과 시간이라는 수평적 제약 속에  동화되고 어우러진다.



이 영화는 연출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계속해서 덜어낸 작품이다. 최근 돌풍을 일으킨 「신과 함께」와 완전한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덜어냄은 단순한 것에 더욱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보글보글 끓는 배춧국, 부풀어 오르는 감자 빵, 땅을 뚫고 나오는 양파 싹. 그리고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진기주의 미소.


생각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할 때 영화가 주는 모든 의미를 치워버리고 농촌의 소소한 삶을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다. 오랜만에 원작을 궁금하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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