촨메이쯔와 허난설헌
어떤 곳에서 살고 싶나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들과 풍경이 있는, 연인들이 속삭이고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공원들이 있는, 전망이 좋은 그런 곳으로 자식을 보내시길 - p.121 피아노 이야기
우선은 도시. 하지만 대도시는 아니고 좀 작은 곳. 그렇다고 지방 소도시까지도 아니고, 큰 도시에서 기차(또는 지하철)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중간 규모의 도시가 좋다. 공항에서 너무 멀지 않은. 그리고 치안이 좋은 곳.
문화적 다양성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곳. 다르게 표현하자면 새로운 것, 다른 것에 대해 열려 있는 곳, 이라고 할 수 있을까. 큰 대학을 끼면 좋다. 큰 서점과 작은 서점이 적당히 공존하고 커피가 맛있는 카페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외국인 여성이 그럭저럭 한 정도의 경계심만 가지고도 걸어 다닐 수 있는 곳. 물이 있으면 더 좋다. 강이나 바다, 호수. 크고 작은 공원. 한 마디로 표현해서 산책하기 좋은 동네. 긴 역사를 걸치고 있으면 더 좋겠지만 지나치게 바라는 것일까.
오래된 마을로 그다지 크지 않고 산보할 수 있는 자연이 있는 곳 이래.
- 뭐가?
독창적인 학문이 생겨나는 마을의 조건이.- p.93 밤의 피크닉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걷는 것은 숨 쉬는 것 외에 내가 적극적으로 하는 유일한 운동이다. 생각할 것이 있거나, 일이 막히거나, 아니면 별 다른 이유 없이 그냥, 주변을 걷는다. 다행히 지금까지 살았던 동네들은 산책하기에 괜찮았다. 조용하고 나무가 가득한 공원도 나쁘지는 않지만 (치안이 어떤가에 따라 다르기는 하다) 작은 가게가 있는 골목이나 작은 공원이 사이사이에 이어지는 길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강이나 호수, 바다 주변도 좋다. 사람이 너무 많거나 도로가 번잡해서 자주 멈춰야 하는 곳은 정신이 지나치게 분산되기에 알맞지 않다. 그러니까, 생각을 이어나가다가 적당히 끊을 수 있고, 다시 이어나가는 것이 가능한 환경을 원하는 것. 가끔 눈을 돌려 멍-할 수 있는 어떤 것 - 작은 가게, 강, 바다, 나무... - 이 있는.
청두, 한 번 발을 들이면 다시는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
- 청두, 혼자에게 다정한 봄빛의 도시에서
예쁜 녹빛 나무 사진에 깔끔한 서체의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혼자에게 다정한 봄빛의 도시. 중국은 베이징만 가 봤고 (홍콩도 갔었지만 같은 나라라는 생각이 안 든다), 감상은, 역시 나는 땅이 너무 큰 나라는 별로, 정도였다. 아 칭다오도 가 봤구나. 그 동네는 좋았지... 청두는 처음 들었는데 혼자에게 다정하다는 말에 끌려서 일하는 틈틈이 읽다가 홀랑 다 읽어버리고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런 곳이 있다고, 진짜?
청두. 중국 남서부 쓰촨성의 성도. ‘오래된 대도시 이기는 하나 역사의 전면에 나선 적은 없는 곳 (청두, 혼자에게 다정한 봄빛의 도시에서)’. 먹을 줄 아는 사람들,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도시. 이백과 두보가 시를 읊었던 곳. 중국에서 한 사람당 평균 독서량이 가장 많다는 곳.
청두의 맛은 마라, 청두의 향은 말리화 향기, 그리고 청두의 소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다
- 청두, 혼자에게 다정한 봄빛의 도시에서
이 책의 저자 이소정 님은 이런 도시에서 한 달을 살며 가끔 여기서 계속 살 궁리를 한다. 두보초당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두보의 시를 읽고, 근교의 차밭에 친하게 지내게 된 언니들과 같이 가서 차를 만드는 장면쯤에서, 나 역시 진지하게 (covid-19이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청두로 가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곧 더 심각한 난관에 부딪혔지만. 나 중국어 못하지... 이상향이라도 자국어를 못하는 외국인에게 베푸는 관대함은 다를 것이다. 아마 내가 청두에 간다고 해도 나의 청두는 이소정 님의 청두와 많이 다르겠지. 그렇다고 해도, 너무너무너무 끌렸다. 지상에서 구현한 이상향 같은 거잖아 여기...
그래서 신포도 이론을 새삼 꺼냈다. 다른 분이 묘사하는 청두를 읽자. 물론 좋아하니까 글을 쓸 테고 그러니 좋기야 하겠지만 이 정도는 아닐 거야. 사랑의 필터와 적당한 애정의 필터는 다르다, 라며. 그래서 <좋은 시절을 만나러 청두에 갑니다>를 읽었고
나는 패배했다.
그래서 강릉에 갔다.
나의 강릉이 그대의 마음도 어루만져 주기를 - 꽁꽁 숨고 싶을 때, 강릉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없고), 여자 작가들의 책, 특히 에세이에는, 공통적으로 흐르는 어떤 정서나 유대감이 있다. 쓸쓸함(외로움과 다르다), 체념, 하지만 그래도 곧게 빛나는 것. 머릿속에서 달칵하며 예전에 읽은 이 책이 떠오른 것은 그래서 일거다. 강릉에 마지막으로 간 것도 아마 15년쯤 전이다. 동해의 새파란 바다가, 안개로 희미한 경포호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강릉에는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이 있다. 청두의 촨메이쯔(쓰촨 출신의 멋진 여성들. <청두, 혼자에게 다정한 봄빛의 도시에서> 5장 참고)에서 나는 아마도 허난설헌을 떠올린 것 같다.
과거의 여성들은 얼마나 글을 쓰고 싶었을까. 글로 남겨지지 못한 옛 여성들의 언어는 어떻게 사라졌을까.... (중략)... 여성들은 자신의 언어를 남기고 싶은 욕망 앞에서 어떻게 몸부림쳤을까.
- 청두, 혼자에게 다정한 봄빛의 도시에서
허난설헌과 그녀의 삶에 대해, 어렸던 때에는 그저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이따금 그녀에 대해 곱씹다가, 이제 나는 허난설헌의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에게 깊은 빡침을 느끼고 있다.
왜 그랬냐.
허초희는 15살 때 까지는, 다른 형제들과 같이 글을 배우고 학문을 익히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았다. 어쩌면 어깨너머로 정치와 세상에 대한 토론을 듣거나 슬몃 참여했을지도 모르지. 그런 세상에서 살던 여자아이를, 일반적인 그 시대 가치관을 가진 집안에, 심지어 뛰어나지도 않은 남자와 결혼을 시켜서 보냈다. 무슨 짓이야. 그렇게 보내면 초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정말 몰랐을까. 몰랐을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겪지 않았거나 절대로 겪지 않을 일에 대해 놀랄 만큼 무지하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허난설헌의 재능은 정말 빛나는 것이었을 텐데. 계속 글을 쓰며 자기 재능을 떨치지는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재능을 그냥 가지고 키워나갈 수 있는 곳으로 보내줄 수는 없었던 걸까. 허균이 허난설헌이 죽은 후 남은 시를 그러모은 것을 보면 그들은 그녀의 재능을, 시를, 정말 사랑했을 텐데.
허난설헌의 여자 식구들은 아마 경고와 충고를 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15살이었는데. 지금의 15세와는 다르다고 해도. 그 나이에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있다고 생각했던 내 자리가 사라지는 기분을... 21세기를 사는 나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느끼는.
... (중략)... 그보다 더 절박한 안위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술을 했어야 하는데 하지 못한 사람이,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천천히 스스로를 헤치는 것을 제가 얼마나 자주 봤는지 아십니까....(중략)... 무언가 안에서 그네들을 갉아먹습니다. - 시선으로부터,
죽어가며 자기가 썼던 글을 다 태웠던 그 마음은 헤아릴 수가 없다. 허난설헌 시에 대한 그 시대 조선 문인들의 찌질한 평가(랄까, 비난)와 결국 명나라와 일본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은 이야기에서 에밀리 브론테가 받은 비난이 생각난다.
오래간만에 간 강릉은 좋았다. 기대만큼 안목해변은 예뻤고 (바람이 미친것처럼 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초당 순두부는 못 먹었지만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즈므(해가 저무는 곳이라는 뜻) 블랑을 발견해서 기뻤다. 이 맥주, 향이 놀랍도록 내 취향이야... 궤짝으로 사 올 것을.
<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김용주 옮김) 은행나무 (2020)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권남희 옮김) 북폴리오
<청두, 혼자에게 다정한 봄빛의 도시에서> 이소정 위즈덤하우스 (ebook, 2019)
<좋은 시절을 만나러 청두에 갑니다> 김송은 컴인 (2019)
<꽁꽁 숨고 싶을 때, 강릉> 박시연 하모니북 (2020)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문학동네 (ebook,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