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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 Jan 26. 2024

남의 집

끈적임 없이 간단하게! 강력 접착테이프 흔적 없이 지우는 8가지 방법


      바셀린, 아세톤, 핸드크림, 레몬 중에 뭐가 좋을까. 이번에도 남의 집으로 이사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남의 집에서 남의 집으로 거처를 일시적으로 옮겼다. 태어난 이후로 '내 집'에서 살아본 적은 없다. 내 집보다는 우리 집이라는 표현으로 불리는 문화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나의 남의 집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사주에 나무, 금, 불 이런 거 말고 이사가 껴있는 게 분명한 내 팔자에는 유난히 이동이 잦았다. 남의 집에 산다는 건 이전에 살던 사람의 흔적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아마도 내 인생에 서른마흔다섯 번째 남의 집인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화장실 문 바로 옆. 못생기고 큼지막한 접착식 걸이. 분명 그에게도 남의 집이었을 이 공간에 싸질러 놓고 간 영역 표시. 괜히 지린내까지 나는 것 같아 아주 괘씸하다.


      벽지 색깔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아주 짙은 갈색의 싼 티 나는 이 흉물은 무려 신용카드 한 개 반 정도의 길이인데다 걸이 부분은 무시무시하게 튀어나와있어 어느 별장에 박제된 동물의 뿔을 떠올렸다. 1.5룸이라는 애매모호한 집의 무려 0.5를 차지하는, 부엌도 아니고 거실도 아닌 공간에서 가장 확실한 존재감을 뽐냈다. 게다가 하필이면 접.착.식. 흔적 없이 뗐다 붙였다 하는 제품을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세상에 접착식이라니. 목욕탕에서 쩍벌자세로 탕 한쪽을 제 집처럼 차지하고 있는 인상이 불쾌한 사람 하나가 불현듯 떠오른다.


      이삿짐 정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무리 남의 집이지만 이 집을 거처로 정하고 들어온 이상, 이 걸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뿔을 잡고 살짝 당겨봤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집이 드세 보이는 강력 접착테이프가 이미 오래전 벽과 하나가 되어있다. 칼을 들고 뒷면을 살살 떼어내보았지만 타협의 의지가 없었다. 한동안 이리저리 긁어보다가 포기하고 확 뜯어냈다. 일단 걸이 제거는 성공. 걸이와 함께 애꿎은 벽지가 뜯겨졌고 접착면은 애매하게 떨어져 나와 남은 부분이  너덜너덜하게 달려있다. 얄미운 모양새가 쉽게 떨어질 각이 아니다. 이미 들인 수고보다 더한 수고를 들으지 않으면 더 지독하게 시선을 빼앗아 갈게 분명하다. 갑자기 부아가 치민다. 얼굴도 모르는 이전 세입자의 불쾌한 흔적이 별안간 어느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미군에서 복무할 때 새겨진 장면 중에 하나다. 4년 내내 지극히 일상적이고 정기적으로 반복된 루틴임에도 이날이 유독 기억나는 건 그때 나의 상태가 지극히 비일상적이고 위태로웠기 때문일 거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제대 절차가 진행되는 상황이었고 독일에서 복무를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되던 시기였다. 그날도 군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근무시간이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쉬어야했다. 처방전 덕분에 근무 중 열외되어 다행이었지만 사실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리더 계급의 부사관이었던 나는 그날이 생활관 검사를 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괜한 부채감과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어 군화만 침대 옆에 벗어두고 군복을 입은 채 몸을 뉘었다. 누워있는 침대 맡 현관 너머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보다 몇배는 크게 들리는 듯 해 미간이 찌푸려졌다. 애써 무시하고 눈을 질끈 감았고 어느 순간 고단함이 불안을 이겼는지 살짝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쿵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대답할 새도 없이 방문은 열렸고 간부들이 들어왔다.


      *Attention!


정신없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기계적으로 외쳤다. 당시 중령이었던 대대장과 일등상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생활관 검사는 모든 군인의 동의하에 (입대 전 계약서에서부터 모든 합법적인 명령에 복종하고 부여된 모든 의무를 수행해야하는 것에 서명한 후에) 허용된 것이고, 군대라는 조직에서는 필요 이상의 당위성을 가지고 있기에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훈련소부터 독일 부대까지 4년 내내 수도 없이 했는데 그날따라 표현하기 힘든 불편함이 속에서 오심처럼 일었다. 중령과 일등상사는 크지도 않은 공간을 구석구석 눈으로 훑으며 질문 몇 가지를 던졌다. 형식적으로 둘러보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그 눈빛 하나하나가 자극으로 다가왔다.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던 나는 맨발로 무기력하게 서서 자극뿐인 그날의 감각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닌 본격적인 침범을 알리는 노크 소리, 맨발로 서있는 내 옆으로 간부들의 군화가 바닥과 부딪혀 내는 소리,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꾸며놓은 공간 구석구석에 닿는 검열의 시선들. 길어야 3분 정도 되었을 짧은 순간이 그렇게 허락도 없이 기억에 흔적을 남겼다.


      끈적임 없이 간단하게! 강력 접착테이프 흔적 없이 지우는 8가지 방법


      이삿짐 정리를 미루고 한참을 검색하니 접착테이프 지우는 방법이 못해도 수십 가지가 나온다. 자의든 타의든 지우고 싶어도 지우기 힘든 흔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다들 이렇게나 적극적이다. 바셀린, 아세톤, 핸드크림에 레몬까지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기억에 남은 흔적은 어떤 걸 써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도 가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온 감각이 사납게 열리곤 한다.



*미 육군에서는 방으로 들어오는 장교급 인사를 제일 처음 발견한 병사가 방 전체가 들리도록 Attention을 크게 외쳐야 한다. 거의 동물적으로 숙지가 되도록 훈련소에서 반복해서 가르치는 중요한 의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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