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분량에 대한 고민.
책쓰기에 갓 도전했을 때, 가장 고민한 부분은 내용보다는 양식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분량'에 대한 고민이었다. 너무 짧으면 쓰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 쓸 것 같았고, 너무 길면 하나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여놓기만 한 영양가 없는 글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얼마나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단편소설이라면 200자 원고지 80~100매 정도의 글을 쓰면 된다고 하는데, 에세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분량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도 얼마만큼의 분량인지 당시엔 전혀 몰랐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에세이 단행본을 꺼내 한 꼭지를 읽어보고는 '아, 이 정도면 되려나?' 싶었으나, 글을 읽는 것과 글을 직접 쓰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금세 써 내려간 글 한 꼭지는 한글 프로그램 기준 A4 1/2매를 겨우 채웠는데, 그냥 보기에도 턱 없이 적은 양이었다.
처음엔 에세이 몇 권을 참고하여 노트북에 옮겨 적어봤는데 이상하게 그 양이 제각각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에세이에도 나름의 분류가 있었다. 정보 전달을 겸하여 쓰는 에세이의 경우는 양이 비교적 많고, 내 이야기와 생각을 고스란히 적는 에세이의 경우는 그보다는 더 적은 양이었다. 에세이라는 유형 자체가 자유롭게 쓰는 글이다 보니 이 두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다면 에세이, 한 꼭지에 얼마큼 써야 할까? 정답은 '없다'. 허무하긴 하지만 절대적인 정답은 없었다. 내가 글쓰기의 바이블/사전처럼 애용하는 책이 있는데, 바로 정혜윤 님의 『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에세이 작가 지망생들에게 도움되는 내용이 거의 다 들어있으니,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의 내용을 참고하자면, '일반적인 자기 계발 단행본을 기준으로 원고지 매수로는 약 800매 혹은 한글 파일에서 글자 크기 10포인트 기준으로 85매 이상'을 써야 한다. (p.73) 전체 분량은 이러한데 한 꼭지에 분량에 대해서는 틀이 많이 깨져서, 짧고 굵은 이야기를 담으려면 A4 1매나 1.5매 정도의 분량이 더 낫다는 것이 정혜윤 님의 의견. (pp.74-75.) 어쨌든 절대적인 분량보다는 글의 통일성이 중요했다.
분량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할지라도, 나는 통일성 있는 규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단행본 기준으로) 어떤 글은 한 꼭지에 6페이지인데, 어떤 글은 20페이지나 한다? 쓰는 사람도 그렇고 읽는 사람도 그렇고, 예측할 수 없는 분량에 혼란스러울 것이었다. 적당한 분량을 고민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A4 2.5매±0.5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몇 차례 글을 쓰다 보니, 글의 흐름이나 내용 면에서 그렇게 지루하지 않으면 필요한 내용만 담을 수 있는 분량이 이 정도였다. 그리고 전체 원고 분량이 A4 85매 정도여야 하니, 예상 목차에서 짠 여는 글과 닫는 글 그리고 30개의 꼭지를 담으려면 85매÷32꼭지=약 2.65매. 꼭지당 2.65매 정도를 써야 하는 것이었다. 지극히 산술적인 평균 수치였는데 나중에 퇴고하고 보니 거의 들어맞았다.
나의 경우에는 브런치에 먼저 초안을 자유롭게 써보고 초안을 한글파일에 옮겨서 분량을 체크한 다음, 예상한 분량보다 많다면 빼고 적다면 추가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사실 한글파일에 먼저 쓰고 브런치에 옮기는 일이 더 효율적이겠지만, 나는 왠지 그 방법이 끌리지 않았다. 여러 기능들이 있는 한글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글을 쓰려니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탓에 그냥 백지처럼 깔끔해 보이는 브런치에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렇게 옮겨 쓴 글이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어느 정도의 분량 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 읽고 있었던 책 『페스트』(문학동네)를 기준으로 양식을 지정해놓았다. (『페스트』는 소설이지만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에 이 양식을 '출판용' 서식으로 지정해보았다.) 이 경우에는 기본 서식에 글만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종이 단행본으로 인쇄되는, 그러니까 독자들 눈에 보일 그대로를 옮겼다. 여백과 자간, 글꼴을 최대한 맞출 수 있는 만큼 맞추고 글을 쓴 것. 물론 이는 참고용이자 예시일 뿐이다. 설령 원고가 출판사에서 채택되어 출간하게 되더라도, 각 출판사마다 선호하는 편집 스타일이 있고 그에 맞게 인쇄되므로 투고 시에는 위와 같은 기본 서식으로 작성한 파일을 투고했다.
글이 길어졌는데, 책쓰기를 위한 분량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 요지. 다만, 자신의 글 쓰는 스타일이나 전체적인 분량과 목차를 고려하여 통일성 있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A4 2.5매±0.5매라는 기준을 정해놓은 것처럼.
+ 양식.
나중에 '원고 투고 방법'에 대한 글을 발행하겠지만,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출판사마다 고정적으로 사용하거나 선호하는 인쇄/편집 스타일이 있다. 그렇기에 투고할 원고는 기본 양식으로 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어차피 출판사 측에서 편집하면서 다 맞춰지니까. 추후 투고용으로 저장한 원고 양식은 이러했다. 어떠한 설정(종이 크기나 여백, 자간, 장평 등)도 손대지 않고, 글꼴 '함초롬바탕'체에, 글자 크기는 10포인트로 맞추었다. 글꼴과 글자 크기도 크게 상관이 없다고 하는데, 가급적이면 기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