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30일을 남겨두고 쓰는 글
출산을 30일 정도 앞두고 있다. 그동안은 내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아가를 만난다는 설렘이 있었다면 30일 정도 남은 시점에서는 설렘보다는 약간의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다. 과연 이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을까. 손가락, 발가락은 모두 있는 것이 맞을까라는 아기에 대한 걱정부터 '내가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와 같은 '나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귀결된다.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으니 아이 낳은 뒤 어떤 삶이 그려질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 혼자 살았을 때 느꼈던 자유, 여유, 재미를 못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압박이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하긴 아주 가끔은 자유와 여유가 너무 비대해 적막감과 외로움을 느낄 때도 분명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여유와 외로움은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아이가 없을 때도 난 충분히 재미있게 살았는데 아이가 생긴 뒤 어떻게 될지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걱정이 생긴다. 무경험은 막연한 공포로 다가온다. 무경험이라서 두려운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출산'이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 출산을 표현할 때 콧구멍에서 수박을 낳는 기분이라고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다. 나는 선택적 제왕절개로 출산을 할 예정이지만 출산 후가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누군가 자연분만은 일시불이고 제왕절개는 할부라고 하였다. 할부로 결제해도 돈을 안내는 것은 아니듯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연분만이건 제왕절개건 내 몸에 큰 무리가 오는 것은 사실이다. 출산을 두고 시어머니는 자연 분만을 하라고 추천하시고 나의 친정 가족들은 제왕절개를 추천하셨다. 나는 내 자식에게 어떤 출산 과정을 추천할까? 본인의 선택에 맡기겠지만 나 역시 제왕절개를 추천할 것 같다. 내 자식이 아픈 과정을 보는 게 싫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을 따라가면서 결국 최종 선택은 제왕절개로 하게 되었다. 내 생살을 가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등골이 오싹하다. 두려움이 커서 가끔은 누군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이른다.
"괜찮은 엄마란 무엇일까"
출산도 두렵고, 아이에 대한 걱정이 커질 때면 다시 마음이 약해진다. '아, 역시 나는 무리인가 봐.'라는 생각과 함께 '괜찮은 엄마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챗바퀴 돌듯 계속 생각의 꼬리를 문다. 막연히 나를 걱정하게 만드는 '괜찮은 엄마'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나에게 괜찮은 엄마는 그저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다. 표현의 방식이 서투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랑이 있다면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한다. 시간적으로 바빠도, 아이가 '그래도 엄마는 나를 사랑해.'라고 믿는다면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한다. 너무 사랑해서 아이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킬 수 있지만, 그 과정까지도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는 엄마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기본적으로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일 테니까.
스스로 괜찮은 엄마의 정의를 '그저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정도로 만드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사랑'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 나도 엄마를 처음 해봐 표현에도 서투르고, 때론 아이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다르니 짜증도 나겠지만 늘 사랑하는 마음은 지닐 테다. 비장하지 않고 가볍게, 하지만 오랫동안 지속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주는 존재가 되고 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겉으로 보면 무관심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띄엄띄엄 관심을 갖고 싶지 않다."
-사회학자 노명우-
나도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답은 이미 정리가 된 것 같다.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다면 충분히 준비가 된 셈이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멈출 때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잠식당할 필요는 없다. 그저 고요히 마주하며 직접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이런 유약한 사람이 너의 엄마이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한단다.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