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저 알지 않아요?
오늘따라 한적한 이스탄불 중심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알게 된 한국인 배낭족들과 반나절 시내 구경을 함께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대학생인 K군, L양과 셋이서 그 유명한 고등어 케밥을 먹어 보기로 결의하고 부둣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지 10여 분쯤 지났을까. 척 봐도 얼굴에 ‘나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써 있는 듯한 아저씨 한 분이 맞은편에서 말을 걸어 왔다.
“어이, 한국 학생들인 것 같은데 어디들 가?”
인상이 딱히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아저씨. 스타일로 미루어 보아 풍류를 즐기는 자유 여행자도, 그렇다고 패키지로 온 럭셔리 관광객도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개인 사업차 왔다가 시간이 남아 시내 한 번 대충 둘러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 네…, 맛있는 것 사 먹으러 돌아다니고 있어요.” 언제 어디서 왔느냐부터 시작해 이 동네는 이러쿵저러쿵 시시콜콜…, 길가에 서서 말을 참 많이도 했다. 그러고도 아저씨는 우리를 따라오며 또 이런저런 말을 걸어 왔다. 빨리 케밥 먹으러 가야하는데 도대체 끝날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 대화의 와중에 내 눈은 이 아저씨가 L양을 몇 번이나 흘깃흘깃 심상치 않게 쳐다보는 것을 감지했다. 설마 딸뻘되는 어린 여학생에게 관심을 갖는 건가, 왜 자꾸…? 의문이 모락모락 피어 오를 즈음 마침 L양도 이런 분위기를 슬슬 눈치챈 듯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아저씨가 L양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그런데... 혹시, 저 알지 않아요?” 잠시 알 수 없는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곧이어 L양이 내뱉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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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작은 아버지?
우와, 어쩐지 어디서 본 사람 같다 했어요!”
Istanbul, Turkey
개인적으로 이제까지의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처음에는 어이없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의미심장한 에피소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면 우리의 모든 행동 양식은 ‘당연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사라지면 너무나 뻔한 상황조차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뻔히 아는 얼굴임에도 작은 아버지가 여기 있을리가 없다는 생각에 긴가민가 했다는 그녀의 말처럼 말이다.
여행이 아닌 인생에서도 이 ‘당연함의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에게 한 번쯤 물어볼 일이다.
* 여행 에피소드 시리즈는 여행매거진 '트래비'와 일본 소학관의 웹진 '@DIME'에서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