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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eeker Sep 10. 2016

아이 둘 데리고 유럽으로-12

Seoul, Autumn, 2007

Seoul, Autumn, 2007


미처 내가 몰랐던 나



"아니, 발이 성한 데가 없군. 그러고 온 데를 헤매고 다녔어?"

집에 돌아온 날 나의 맨발을 보고 남편이 한 말이다. 발가락과 발등 이곳저곳에 부풀었다 터져버린 물집의 흔적들과 속살이 훤히 비칠 만큼 누더기가 된 뒤꿈치들. 하얀 운동화 뒷부분이 적갈색으로 물들도록 참 많이도 걸었다. 하지만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아마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낯선 곳에서 나와 아이들이 서 있던 그 장소, 그 순간에 모든 감각들을 집중시키느라 어떤 잡념도 끼어들 틈이 없었나 보다.


여권에 첫 스탬프를 찍은 캐나다는 여행사를 통한 단체 관광이라 준비할 것은 짐가방 밖에 없었지만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나는 유럽여행은 새벽 1-2시까지 수험생처럼 두뇌를 풀가동해야 했다.

'이 정도 열성이면 수능시험도 보겠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내가 나를 보는 관점의 turning point였고 모든 여정을 별일 없이 마치고 돌아왔다는 안도감은 어느새 무한대의 자신감으로 바뀌어 새로운 꿈이 파릇하게 돋아났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어!'


런던에서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방향을 물어보던 나의 대담함과 버스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수다를 떠는 나의 명랑함에 순간순간 놀랐더랬다.

'내 안에 이런 면이 있었나?'

multi-ego - 유럽이라는 전혀 다른 프레임은 한국이라는 사회적 틀이 요구해왔던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던 방식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럽여행으로 커지는
아이들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


슬프게도 교과서에서 배우는 철학, 문학, 수학, 과학, 사회, 음악, 미술 지식의 대부분은 고대 그리스를 시작으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까지 유럽에서 활동하던 지식인과 예술가들에 의해 확립되었다. 프랑크푸르트 괴테의 서재에서 그가 책을 집필했던 책상을 둘러본 아이는 서점에서 발견한 <파우스트(Faust)> 를 펼쳐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려 할지 모른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거대한 공룡 화석들과 뮌헨 국립박물관(Deutsche Museum)의 다양한 증기 기관들이 움직이는 광경을 관찰한 아이는 진화와 일률이란 개념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이 내뿜는 권위와 중압감을 느껴본 아이라면 루이 14세가 귀족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했다는 세계사 교재의 한 문장을 달달 외우지 않아도 된다. 유럽이라는 살아있는 통합교과서를 직접 체험한 아이는 지식을 시험 성적을 위해 머리에 집어넣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문명을 건설한 설계도로 인식하게 된다.



공부도 예습이 필요하듯이 방문할 장소에 대해 알고 떠날 때 음미할 수 있는 여행의 범위가 넓어진다. 직접 자료를 모으고 일정을 짰던 첫 유럽여행과 비교했을 때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준비했던 2015년 독일 여행에서 내가 느낀 감흥의 깊이는 확실히 얕았다.


2007년 봄 여행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여행안내서가 아들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걸 보고 책이 왜 거기 있냐고 물었더니

"그냥 어디 가는지 궁금해서 보려구요."

대충 사진만 봤겠지 생각했는데 루브르의 비너스 앞에 서서 동생에게 비너스상이 어디서 누구에 의해 발견되었는지 동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설명을 하더니 오르세 미술관에선

"이 그림은 마네가 그린 <피리 부는 사나이>야."

"저기 카드 치는 사람들은 세잔느가 그린 건데 그림값이 엄청 비싸."

미술관 큐레이터처럼 그림들을 동생에게 설명해주는 아들 덕분에 나는 한가롭게 그림들 사이를 거닐었다. 그림들 제목과 작가들을 어떻게 알게 됐냐고 물었더니 박물관과 미술관에 간다길래 집에 있는 화가 위인전과 명화 다큐멘터리 CD를 봤다고 했다. 둘째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해서 조각상의 외모와 상징적인 장식들를 보고 아르테미스인지 아폴론인지 알아맞혔고 우피치 미술관에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올려다보며 신화의 내용을 오빠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아는 만큼 보았고 유럽에서 경험한 만큼 학교에서 배웠다.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환경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잘 적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도 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화장실 세면대는 벽면에 박힌 동전만 한 검은색 원형 센서가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야 수돗물이 나온다. 유로스타와 같은 기차는 바닥에 있는 볼록한 고무 버튼을 힘껏 눌러야 세면대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흐른다. 파리의 화장실 변기는 물 내리는 버튼이 물 저장 탱크 윗면에 퍼즐처럼 숨어있는 것이 많다. 제네바와 이탈리아에선 화장실 벽타일에 설치된 커다란 직사각형 버튼을 꾸욱 밀어야 한다. 큰애는 자신이 알고 있던 작동법을 벗어난 이 물건들과 마주할 때마다 당황해서 도와달라고 했지만 작은 애는 게임을 하듯 금방 버튼들을 찾아냈다. 아이들에게 학교 지식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의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사고력과 새로운 환경에 긍정적으로 적응하는 융통성도 키워주어야 한다는 걸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그들에게 없고
우리에겐 있는 것

떠나 있어 봐야 비로소 소중함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에도 적용된다. 외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 한국의 사회 기반시설의 효율성과 공공 서비스의 수준이 서양에 비해 훨씬 낫다는 것을 알게 된다. 런던의 상징인 빨간 이층 버스(double deck bus)는 비효율적인 교통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낡은 주택들의 재건축이 지연되다 보니 2차선 도로들을 확장할 수도 없고, 1863년에 개통된 시내 중심을 통과하는 지하철 역사들은 통로가 아주 좁아서 출퇴근 시간이면 객차에서 한꺼번에 내린 사람들이 한데 엉겨 붙은 딸기잼처럼 이동하다 보니 승강장을 빠져나오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유럽의 지하철역들은 엘리베이터와 에어컨이 없는 곳이 많아서 여름에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계단 앞에 서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동차를 편애하는 미국의 뉴욕과 보스턴의 지하철 역사에도 에어컨이 없어서 지상보다 더 후끈한 공기 속에서 열차를 기다려야 했다. 나의 외국인 친구들은 서울을 방문했을 때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들 나라에선 지하철역 승강장에서도 전화통화와 문자까지 '서비스 외 지역'으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런던 사우스켄싱턴 거리의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영국 통신회사 EE의 2015년 광고



'The faintest ink is better
than the strongest memory.'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한다'는 뉴튼의 관성의 법칙은 사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나는 꿈속에서 땀에 젖은 배낭을 메고 파리와 피렌체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입고 다녔던 옷들을 짐가방에서 꺼내다가 접혀있는 두 장의 손수건이 보였다. 이른 봄처럼 쌀쌀했던 7월의 런던에서 긴팔 위에 반팔까지 겹쳐 입고 바람막이 점퍼로도 안심이 되질 않아 아이들 목에 손수건을 둘러주었던 때가 생각났다. 그렇게 불현듯 유럽의 장소들과 사람들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일상을 비집고 들어와 나의 집중력은 풍선처럼 둥둥 떠다녔다. 글자들을 핀 삼아 유럽의 기억들을 종이 위에 고정시켜 놓아야겠다 싶어 주말마다 서툰 기행문을 쓰며 가을을 보냈더랬다.


이번 여름, 책장 안에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다시 펼쳐 본 추억들 중에서 그토록 아름다웠던 베네치아의 종소리와 종탑 위의 전화기가 기억에서 사라졌다는 걸 발견하고 아주 많이 놀랐다. 다시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여행의 한 부분을 지켜준 건 종탑을 찍은 멋진 사진이 아니라 검은 잉크로 수놓아진 문장들이었다. 10년 전 여행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면서 영원히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때 그 사람들은 왜 자청해서 우리를 도와 주웠을까?'

어쩌면 그곳을 보러 간 우리가 현지인들에겐 되려 구경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커다란 모자를 눌러쓴 동양 여자와 그 뒤를 총총히 따라가는 꼬마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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