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미티와 귀도 오라 피체의 모험
어느 해인가 나는 어느 때보다도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행복한가에 대해, 우리는 행복한가에 대해. 행복하면 좋겠다. 나와 당신이, 그렇게 우리 모두가. 이뤄지기 어려운 소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겠다. 우리가 행복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행복한가에 대한 대답은 무엇이 행복인지를 먼저 정의하고서야 내놓을 수 있는 걸까. 행복은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규정한 뒤에야 나나 당신이 행복한지를 평가할 수 있을까. 행복이 그렇게 논리적이거나 기술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행복은 마음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해 초 회사 선배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나는 “다 같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새해인사와 함께 선배들은 그동안 행복하다고 느낀 적 있는지 물었다. 20, 30년 경력의 그들은 직장생활은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기에 본래 즐거울 수 없고 퇴근 후나 주말에 자기 생활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에 비하면 우리 회사가 낫다는 말도 했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그래도 우리가 낫다’고 자위하는(자기 최면을 거는) 건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 그러면 행복해지는가. 인생 선배들은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답하고 있었다. 훈계나 다름없는 인생론은 시시하게 흘러가다가 이구동성 실망스럽게 끝을 맺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거야. 그게 싫으면 회사를 그만두는 수밖에 없지.” 이런 일반화라니. 그리고 기껏 내놓은 해법이 ‘퇴사’라니.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참고할 만한 예는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두 사람, 월터 미티와 귀도 오라피체의 경우를 보자. 월터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2013)의 주인공, 귀도는 <인생의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1997)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어느 날 각각 구조조정과 강제수용이라는 가혹한 현실에 포위당하는데, 삶이 무너져 내려야 할 그 순간 오히려 혹은 더욱 주도적으로 자신의 세상을 구축해나간다. 두 영화가 개별적인 삶의 문제들에 관해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인생을 대하는 법, 그러니까 현실을 살아가는 태도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점은 무기력한 인생론들보다 낫다.
월터(벤 스틸러)는 전통 있는 시사 사진잡지 라이프(LIFE)의 필름현상부서 책임자다(라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이 한 명뿐이다). 그는 마흔두 살 생일에 자신이 16년간 일한 라이프의 폐간 소식을 듣게 된다. 라이프를 인수한 쪽에서 잡지 발간을 중단하고 온라인 매거진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월터에게는 마지막 호 표지 사진 현상 업무가 맡겨지는데, 유명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이 보냈다는 사진이 행방불명되면서 정리해고 위기에 놓이고 만다.
‘월터는 소심하고 판에 박힌 삶을 사는 인물이다.’ 영화 도입부가 그렇게 설명한다. 넥타이를 단단히 졸라맨 반팔 와이셔츠 차림에 안경을 쓰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가계부를 쓰는 모습, 좋아하면서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 없는 직장동료 셰릴 멜호프(크리스틴 위그)의 온라인 매칭 사이트 프로필을 읽는 모습. 셰릴이 좋아하는 남자상은 ‘모험적이고 용감하며 창의적인 사람’이다. 그 바로 뒤에 괄호를 치고 ‘아니면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고 덧붙여져 있다. 우리가 이상을 앞세우면서도 현실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듯이. 월터는 심각하게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셰릴의 프로필에 일종의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데, 웬걸, 보내지지 않는다. 업체에 문의하니 ‘특별한 경험’란을 입력하지 않아서라고.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느냐는 월터에게 전화상담원은 아픈 곳을 찌르듯 “적을 만한 경험이 없느냐”고 묻는다.
월터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갑자기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상상에 빠지는 것. 그 상상의 세계에서 월터는 폭발 직전의 건물에 뛰어들어 개를 구할 만큼 용감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직장상사를 꼼짝 못하게 만들 만큼 유머러스하며, 몇 마디 말과 눈빛으로 셰릴의 마음을 얻을 만큼 로맨틱하다. 월터의 상상과 현실은 대부분 행동으로 옮기느냐 마느냐로 갈릴 뿐이지만 그 사이에는 도저히 뚫을 수 없을 만큼 두꺼운 방탄벽이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월터도 어릴 적에는 과감하게 모히칸 헤어스타일을 하고 스케이트보드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고 멀리 유럽으로 배낭여행도 다녀왔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상상 속에서만 주인공으로 살아온 그는 즉흥적으로 숀의 사진을 찾아 나서면서 진짜 모험을 하게 된다.
모험을 떠나기 전의 월터가 현실과 상상(희망사항)의 간극이 뚜렷한 인물이라면 2차 세계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문 인물이다. 낙천적이고 입담 좋은 그는 기발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으로 사람들을 끌고 들어가 주인공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최면이라도 걸듯이. 그는 스스로도 주인공으로서 살아간다. 월터였다면 상상의 나래만 펼치고 말았을 행동을 귀도는 망설이지 않는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수백, 수천 번이나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고백하고, 교사인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장학사를 사칭하고, 그의 약혼자 앞에서 말을 태워 도망치기도 한다. 영화는 귀도로 인해 내내 유쾌하지만 유태인이었던 그를 둘러싼 현실은 참혹한 것이었다.
아들 조수아가 다섯 살 생일을 맞은 날 귀도는 아들과 함께 유태인 수용소로 끌려간다.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귀도는 수용소 생활을 ‘게임’이라고 속인다. 아들이 믿게 하려고 독일군 통역을 자원해 엉터리 통역까지 한다. “이제부터 게임 시작이다.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우승자고, 상품은 탱크다. 매일 그날의 일등을 스피커로 방송할 것이다. 우리는 소리치는 나쁜 사람 역할을 맡았다. 겁을 내는 사람은 점수를 깎겠다.” 귀도가 있는 곳은 어디든 상상의 공간으로 변한다. 절망이나 공포감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삶이 행복한 것인지, 아니면 그래서 더 슬픈 것인지 한 가지로 판단할 수 없지만 귀도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의 최면(유쾌한 이야기)에 빠져 따분하거나 무섭거나 슬픈 현실에서 구조된다.
두 영화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배우가 감독과 주연을 함께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와 마찬가지로 <월터의 상상은 …>의 원제(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도 ‘인생’(Life)이 강조돼 있다. 아마 ‘Secret’은 중의적 표현으로 쓰였을 것이다. 월터는 남몰래 ‘은밀한’ 인생을 상상하기만 하는 ‘루저’로 보이지만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신비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고, 한편으로 이미 그전부터 자신의 삶에 애정을 가지고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한 ‘소중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 종반부에 가서야 생각이 미쳤다. 월터가 일하는 회사 이름이 ‘인생’(LIFE)이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나, 다른 이들을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소시오패스에 경악하지만 이런 태도는 가까운 곳에 널렸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우리는 동료의 아픔, 슬픔, 기쁨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다. 누가 마음이 아프면 “뭐 그런 일로 끙끙대느냐”고, 몸이 아파 쉬게 되면 “일손이 줄게 됐다”고 투덜댄다. 환한 웃음을 반갑게 맞아주지 못하고, 제때 퇴근하거나 휴가를 가며 조금이라도 여유를 누리는 것에는 냉소를 보이거나 비아냥거린다. 사무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나면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시시덕거리느냐”라고 속으로, 혼잣말로, 혹은 서로 쑥덕댄다. 이런 공동체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언제까지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같은 질문만 던질 것인가. 나는 월터처럼 모험도 하고 귀도 같은 친구도 만나 당장 행복에 빠져들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월터나 귀도 같은 친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