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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ol Park Aug 18. 2016

시간의 탄생.


1.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는 소년 모모가 마을 사람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과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그리고 있다. 고아였던 모모가 정착한 마을은 뛰어나지는 않지만 열심히 제 몫을 다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평화로운 공동체였으나, 회색신사의 출현으로 위기를 맞는다. 회색신사는 마을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저축하는 – 즉, 미래의 노동시간을 지금 당겨쓰는 – 조건으로 물질적 부를 약속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복잡한 숫자와 화려한 청사진에 매료된 마을사람들은 앞 다투어 시간을 저축하게 되나, 곧 불행과 정체성의 상실을 겪게 되고 마을은 더 이상 활기차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곳이 된다. 이에 모모는 회색신사들의 본부에 잠입하여 그들에게 저당 잡힌 마을사람들의 시간을 되찾는데 성공하고, 마을은 다시 생기와 상상력 넘치는 공간으로 돌아온다.
발간 된지 50년도 훌쩍 넘은 이 소설은 현대 산업사회가 지역 공동체를 파괴 해 온 과정을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시간을 경험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2.
‘시간은 금이다. Time is money’
Benjamin Franklin의 말이다.
이 기막힌 비유는 시간이라는 ‘관념’과 금이라는 ‘물질’간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수세기동안 별 의심 없이 받아 들여져왔다.

실제로 시간은 현대사회의 ‘황금률’이다.
급여는 노동시간을 기초로 주어진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의지대로 역동적이고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고 시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의 삶은 아름답게 디자인 된다. 그렇기에 ‘시간을 헛되이 쓰는’ 사람들은 보통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게으르고 무능한데 이는 명백히 한심한 일로서 쉽게 악덕으로 간주된다. 그러니 아까운 시간에 집에서 빈둥거리지만 말고 밖에 나가 무엇이든 하시라!

또한 시간은 그 자체로 ‘금’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년동안 Time-saving gadgets의 눈부신 발전이 인류의 유래 없는 번영에 기여해 왔음이 산업화의 지지자들에 의해 열렬히 찬양되었는데, Levine, R. V. (2006)의 연구 ‘Geography of Time’은 이 주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국가의 양적 진보와 삶의 속도와의 경험적 연관성을 증명하기 위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주요 31개국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서, 북아메리카, 북유럽 그리고 일부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하는 ‘부자 나라’에서는 ‘걷는 속도 Walking Speed’, ‘우편이 배달되는 시간 Postal Time’, ‘주요지역에서의 시간의 정확도 Clock Accuracy’의 모든 항목에서 ‘가난한 나라’에 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렇게 시간은 현대 사회의 교리이자 번영의 원천인 것이다. 시간의 복음 속에서 인류는 영원히 행복을 누릴지니 절대로 의심하지 말지어다. 태초에 ‘시간’이 있었다!


3.
하지만 이른바 ‘시간의 발명’은 가장 중요한 근대기획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교통 및 통신기술의 발전은 놀라운 진보를 거쳤다. 영국이 1863 처음 지하철을 개장한 이래로 1879년 독일에서는 첫 전기 트람이 운행되기 시작하였고, 1900년에는 Otis에 의해 전기 에스컬레이터가 세계 최초로 고안되었다. 이어, 1913년 미국에서는 헨리 포드에 의해 세계 최초의 자동차 조립 라인이 도입되었는데 이들의 발명으로 산업화 된 세계에서는 대량의 물류와 인원을 가장 빨리 수송/생산 할 수 있게 되었다. 통신기술의 발전도 놀라울 정도였는데, telegraph (전신) 가 1837년 처음 발명되어 인류는 거의 동 시간에 부호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으며, 마침내 1866년에는 처음으로 대륙 간 전선이 설치되어 유럽-미국간 전신을 주고받는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1876년에는 벨에 의해서 전화기가, 1906년 레지널드 페센든에 의해 무선라디오가 잇따라 발명됨으로써 인류는 지구상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다른 대륙으로 곧바로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되었다. (Honore, C. 2004)

하지만 산업화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은 다름 아닌 ‘시계’였다. 사실상 대량의 물류와 정보를 빠르게 수송하기 위해 고안된 (위와 같은) 빛나는 발명들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시간 체계와 시간에 대한 준수 없이는 이들이 올바르게 작동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찍 산업화에 성공한 서구 국가들은 더욱 효율적인 기차의 운영을 위해 시간 체계를 통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특히 1855년, 당시 가장 산업화된 나라였던 영국은 그린위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도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어 1854년 서구 27개국은 그린위치 표준시를 국제표준으로 삼기에 이르렀으며 1911년에 들어서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동일한 시간 체계를 사용하게 되었다. (Honore, C. 2004) 이 시간체계는 산업화된 국가들을 중심으로 성공적으로 관철되고 훈련되었는데, 여기서 교육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Thompson (1967)에 따르면, 1800년대의 미국 자본가들은 실제로 앞 다투어 초등학교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미래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요컨대 근대적 공교육의 일차적 목표는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산업 노동자로서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몸과 마음의 형성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Honore (2004)는 ‘시계는 근대 자본주의의 작동 시스템이자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물건 – The clock is the operating system of modern capitalism, the thing that makes everything else possible’ - 이라고 묘사 하였으며, Lewis Mumford (1934)는 ‘시간은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 – key machine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이라고 표현하였다. 실제로 이 ‘근대적 이성의 힘’을 통해 인류는 비약적인 양적 진보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이 양상은 Angus Maddison (2001)의 통계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1)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염두 해야 할 것은 시간은 절대적인 법칙이 아닌 사회적 합의이고 약속된 관념이자 지배적인 신념체계이며, 우리의 삶은 이 단단한 ‘합의’ 위에서 지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합의는 우리에게 내면적 행복감과 ‘좋은 삶’을 가져다주었나?


4.
제레미 리프킨 (1989)은 시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고안된 기구들 속에 가두고 있다. 절대로 실행될 수 없는 계획에 압도당하기 위해,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을 위해, 그리고 지켜질 수 없는 마감일을 위해!
We have surrounded ourselves with time-saving gadgetry, only to be overwhelmed by plans that cannot be carried out, appointments that cannot be honoured, schedules that cannot be fulfilled, and deadlines that cannot be met.”

또한 근대적 시간개념은 인간에게 권장되는 노동방식을 바꾸기도 하였다.

“컴퓨터로 장시간 일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컴퓨터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컴퓨터의 멀티태스킹처럼 정보가 교환 될 때 그 작동을 그대로 남겨둔 채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이동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정보가 준비될 때까지 그 사이트로 돌아오지 않는다.
People who work with computers a great deal are actually beginning to act like computers. Just as a computer multi-tasks – going from one activity to another, leaving off one function when a bit of information has been communicated and not returning to that site until a new bit is ready.”

이를 통해 현대 인류는 삶에서 어느 순간 콘텍스트와 순서가 사라져버렸다. 순서는 업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자 통제권이다. 이 자리를 주입된 목적이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우리는 강박이라고 부른다. 강박은 현대사회의 병리적 증상이며 징후이다.
물론 이 강박의 정도는 각 사회의 콘텍스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시민들의 강박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회도 있고, 극심한 강박이 사회현상으로 대두된 국가도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처럼 강박이 극심한 사회일수록 시간이라는 자원의 배분을 둘러싸고 벌어진 투쟁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다수'가 패배했음을 의미한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잃은 삶, 아무리 살아도 ‘좋아지지’ 않는 삶 그래서 살아지는 삶.

자기 통제권을 잃은 사람들의 우울한 초상을 한병철은 이렇게 그리고 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한병철, 2012 : 23-27)

쿠오바디스 도미네 Quo Vadis Domine.
급류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주여, 우리는 어디로 가리이까!


5.
이외수는 시간을 ‘탄생과 소멸의 강’2)이라고 썼다. 하지만 문득 저마다의 삶이 축적되어 마침내 널찍한 평야가 되고 이내 메마른 사막이 되도록, 우리의 시간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를 반추하다 문득 한국사회의 비극은 어쩌면 시간, 나아가 삶에 대한 건강한 인식론Ontology의 부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합의를 쌓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느긋한 마음으로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해서 살 것을 결정할 수도 있다. 단순히 느려지기로는 부족하다. 생각과 토론, 그리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살아나감으로써 우리는 ‘건강한 인간다움’을 바로 우리의 사회에서 실현해 나갈 수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
다시 모모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삶 자체에서 구해야 한다. 몰아치지 말고, 마음을 괴롭히지 말고, 까딱까딱 자신 있게. 그래서인지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와 노자는 동서양의 깊은 시공간을 넘어 꼭 같은 말을 아직도 들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명한 자는 서두르지 않는다. The wise man is never in a hurry” (Aristoteles, 384-322 BCE).
“자연은 서두르는 법이 없으나 그래도 삼라만상은 제 할 몫을 해낸다. Nature does not hurry yet everything is accomplished”. (老子 604 - ? BCE)

이른바 ‘시계 시간’에만 맞추어 살아가는 삶에서, 우리는 시계시간과는 매우 다른 리듬과 방향을 가지고 움직이는 ‘영혼의 시간’에 접속하기를 거부하고 있다.3)

영혼의 시간은 고독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돌아와야 세상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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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ddison (2001)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서기 1년부터 1000년까지 연평균 0.02%로 증가하여 대략 2억3천만에서 2억 7천만이 되었으며, 서기 1000년에서 1820년까지 세계 인구는 10억 4천만으로 증가하였다. 정리하자면, 세계인구가 수천만 명 이상 수준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계기는 신석기 혁명이었으며, 10억 명 수준으로 증대될 수 있었던 계기는 역시 산업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1820년 이후 인구가 20억이 되기에는 123년이 소요 (1927년)
30억이 되기에는 33년이 소요(1960년)
50억이 되기에는 13년이 소요(1987년) 되었다고 추정 되며,
60억이 되기에는 고작 12년 (1999년)이 걸렸을 뿐이다.
이와 같은 인구의 폭발적이고도 지속적인 증가는 경제의 부양능력 / 생산력의 비약적 성장을 의미한다.

2) “시간 - 탄생과 소멸의 강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 강에서 태어나고 그 강에서 죽는다. 그러나 흐르지는 않는다. 흐르는 것은 시간의 강이 아니라 그 강에 빠져 있는 물질들이다.” (이외수 2001)

3) Living only by clock time, we deny ourselves access to other modes of time, which we could call 'soul time', modes that move in very different directions and in very different rhythms from clock time. (Eberle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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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이외수, 2001, 감성사전, 동숭동.

한병철, 2012, 피로사회, 문학과지성사.

Eberle, G., 2003, Sacred Time and the Search for Meaning, Boston: Shambhala.

Honore, C., 2004, In Praise of Slow, London: Orion Books.

Levine, Robert, 2006, A Georgaphy of Time, London: Oneworld Publications.

Maddison, A., &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Development Centre., 2001, The world economy: A millennial perspective. Paris: Development Centre of the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Mumford, Lewis, 1934, Techinics and Civilization, New York: Harcourt, Brace.

Rifkin, Jeremy, 1989, Time Wars, New York: Simon and Schuster.

Thompson, E. P., 1967, Time, Work-Discipline, and Industrial Capitalism.  Past and Present, No. 38. (Dec., 1967), pp. 56-97,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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