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배다리에 사시죠? 올해 초 어느 늦은 저녁 급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용건은 인천 동구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조건이 지역작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급한 제안도 그렇고 고작 책 한두 권 쓴 걸로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지도 않기에 사양했었다.
한참이 지난 엊그제 그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인천 동구에서 진행하는 배다리 공공예술 프로젝트. ‘주민과의 소통을 통하여 지역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예술작품을 조성하거나 주민참여의 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운영함으로써 주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증진하고 공간의 문화적 재창조를 통해 외부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로 육성’하는 취지의 사업이다.
그 사업을 알게 된 것은 뜻밖에도 엉뚱한 현수막이었다. ‘골목길 수리 작업 도와드려요’ 자칭 골목출동수리팀이 공공예술 프로젝트 사업으로 골목 정비작업, 빗물 저금통, 텃밭 상자, 평상 제작 등을 신청하면 도와준다는 거였다. 이거였구나. 그런데 이런 것도 공공예술인 건가?
원도심 골목길을 잃어버린 풍경이라거나 보존해야 할 유산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 골목에 살다 보니 그런 낭만적인 생각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걸 매일 깨닫는다. 골목은 그곳에 사는 노인들처럼 하루하루 병들어 낡고 무너지고 있다. 돌보고 고치지 않으면 곧 폐허가 될 수밖에 공간이다.
골목길을 밀어버리는 재개발 사업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보다 그것을 돌보고 아끼는 행위가 더 울림이 있는 이유다. 낡아 빠진 원도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골목과 그 공간은 추억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들이 살아내야 할 공간에 벽화 따위 칠하고 이해할 수 없는 작품 하나 덜렁 설치하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사진 속 빗물저금통이 공공예술이냐고 묻는다면 난감하다. 무엇이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공공 영역인지 명확히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다. 공공 예술은 아니 예술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 적어도 골목에 살고 있는 공동을 위해 물과 그 쓸모를 담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골목 공동을 위한 무엇일 것이다.
2024 배다리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스페이스빔의 ‘골목출동수리팀 Up Road’, 패치워크의 ‘배다리 인디펜던트’, 프라미스의 ‘역사창작뮤지컬 아! 배다리’, 플레인앙상블의 ‘배다리 음악길 산책’, I-신포니에타의 ‘배다리 예술 살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