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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내음 Nov 07. 2023

등심도 못먹은 등신

빨리 상처를 낫게하라고 채근하지 마시오

민재는 귀를 의심했다.



"예약 좀 해주고 인원은 넷이야. 박팀장, 나, 본부장님, 강부장"



이 전무는 마치 본인이 한 일을 과시하려는 듯이 큰 소리로 민재에게 오늘 본부장과 석식을 잡았다고 말헀다. 민재는 전혀 달갑지 않았다. 1년전 본부장이 민재를 한직으로 좌천시키고 나서는 석식은 커녕 점심도 커피 한잔도 같이 한적이 없었다. 여러 번 부당한 좌천에 대해 최대한 해결하려고 했지만 본부장은 자기한테 편한쪽으로 결론을 내고 필요할 때만 가끔 민재를 불러 일을 시켰다. 



"으음, 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요새 MZ 세대들이야 이런 갑작스런 석식이 있어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면 끝이지만 민재가 같이 연차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신들까지 MZ 처럼 할거냐라고 비난을 하기 때문에 거부하기 쉽지 않았다. 퇴근 이후 개인 시간을 갑작스레 반납하게 된 석식은 민재 같은 중년층에게 어쩔수없이 그렇다 쳐도 이렇게 자신을 좌천시킨 본부장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까지 해야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이제 떄가 되었지 ㅎㅎ. 본부장님하고 식사 오랜만이지?"



이 전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민재에게 말을했다. 사실 본부장이 맡긴 프로젝트를 하다가 이 전무가 잘못 결정한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고 민재가 좌천을 당했기 때문에 민재는 이 전무에 대한 마음도 미움으로 바뀐지 오래였다. 일이 있었는데 아무일 없었던 것 처럼 하는 것도 폭력이고 아무일 없었던 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폭력이었다. 왜 



1시간 후 한정식 집에 네 남자가 마주 앉았다. 



"박 팀장 다시 해외 나가야 하지 않나?"



본부장은 민재에게 생글 거리며 질문을 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아니면 무슨일이 있었어도 난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할 수 있다는 걸 과시라도 하는 것 처럼. 그게 대인배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것 처럼. 



"아니오, 당장 어디를 나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한국 들어온지 3년 되는데 가족들도 한국에 잘 적응하고 있고 애들 교육 문제도 있어서 당분간은 한국에 있을려고 합니다"


"그래?"



본부장은 아무렇치도 않은 목소리로 말하려고 한 것 같지만 민재에게는 미세하게 눈썹을 찌푸리는 본부장의 모습이 보였다. 니가 뭔데 튕기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후로는 덕분입니다, 고생했다 등 건조한 AI식 대화만 드문 드문 오고 갔다. 그러다 취하면 항상 오버하는 이 전무가 건배 건배를 연발하는 타이밍이 빨라지자 본부장은 서둘러 석식 미팅을 끝냈다. 등심으로 유명하다는 식당이었지만 어떻게 먹었는지 민재는 맛이 기억이 도통 나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약이겠지만 어떤 상처는 깊어서 오래간다. 다음에 또 본부장과 식사를 하게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그때는 이 분노가 조금이라도 옅어졌으면 좋게다는 생각을 민재는 했다. 언제 완전히 상처가 아물지는 민재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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