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시
고정희 시인의 시는요 누군갈 부르는 말이 많아요
누구를 부를까요
어떤 사람을 부르는지 보면
홀로 술틀을 밟는 사람이고요
새벽에 깨어있는 사람이고요
빈병, 바보들, 가장 낮은 그사람을 위해
또 무언가를 하는 사람을 불러요.
인쇄공이고요. 장바닥이고요 석탄불이고요
저도 부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어요
서로가 아니면 안되는 것을 알아서
애써 살아내는 사람들이에요
저는 아직 누군갈 부르거나 부름받는 사람도 아닌
애매한 어느 한 켠에 있는데요
열정만으로는 되지 않고 또 목소리로만 되지 않아서
우선은 열심히 고정희 시인의 시를 읽고 쓰고 불러보면서
감히 글을 닮지는 못하겠고 마음은 닮아보려 합니다
새벽에 깨어 있는자, 그 누군가는
듣고 있다 창틀 밑을 지나는 북서풍이나
대중의 혼이 걸린 백화점 유리창
모두들 따뜻한 자정의 적막 속에서
손이라도 비어 있는 잡것들을 위하여
눈물 같은 즙을 내며 술틀을 밟는 소리
들끓는 동해바다 그 너머
분홍살 간지르는 봄바람 속에서
실실한 씨앗들이 말라가고 있을 때
노기 찬 태풍들 몰려와
산준령 뿌리 다 뽑히고 뽑힐 때
시퍼런 눈깔 같은 포도알 이죽이며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 사람아,
속이라도 비어있는 빈병들을 위하여
혼이라도 비어있는 바보들을 위하여
눈 귀 비어있는 저희들을 위하여
빈 바람 웅웅대는 민둥산을 위하여
언 강江 하나 끌고 가는 순례자 위하여
아픈 심지 돋우며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 사람아,
갈 곳이 술집 뿐인 석탄불을 위하여
떠날 이 없는 오두막을 위하여
치졸들 와글대는 사랑채를 위하여
활자만 줍고 있는 인쇄공을 위하여
이리저리 떠밀리는 장바닥을 위하여
가야금 하나가 절정을 타고
한 줄의 시詩가 버림을 당할때
둔갑을 꿈꾸는 안개 속에서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 사람아,
잠든 메시아의 봉창이 닫기고
대지는 흰 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작은 길 하나까지 묻어버릴 때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 사람아,
그의 흰 주의周衣는 분노보다 진한
주홍으로 물들고 춤추는 발바닥 포도향기는
떠서 여기저기 푸른 하늘
갈잎 위에 나부끼는 소리 누군가는
듣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