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 '레인드롭 팝' 개발기
오랜 시간 열심히 준비해온 레인드롭 팝의 완성도가 점점 무르익어감에 따라 본격적인 출시 작업을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챕터에서는 게임 제작 과정 외적으로 출시를 준비하며 있었던 이야기들과 실제 마켓에 게임을 런칭한 시점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이전 게임인 매드니스티어 라이브를 퍼블리싱했던 회사에 너무 큰 실망을 한 경험이 있어서 레인드롭 팝은 별도의 퍼블리싱 계약 없이 우리 스스로 출시를 하기로 결정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2017년 9월, BIC Festaval 행사장에서 이전 직장의 입사 동기로 함께 업계에 입문했었던 형을 만났다. 연락이 끊어진 지 한참 되었다가 게임 행사장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지금은 모바일 게임 퍼블리싱 회사의 멤버로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짧은 만남이 있은 후 그 회사로부터 레인드롭 팝의 퍼블리싱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자체 출시라는 원래 계획이 있었던지라 선뜻 수락을 하지 못하고 엄청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좋은 기회를 꺼리는 이유는 항상 같다. 내부 인력이 아닌 외부와의 협업은 반드시 일정 지연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협업을 위한 환경을 구축하는데 드는 비용, 게임에 대한 조정을 받아야 하는 부분 등 계획에 없던 일정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점점 늘어나는 제작 시간을 감당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고 느꼈다.
어쨌거나 퍼블리싱 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나의 의견이었으며 강재봉은 그래도 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결국 나의 의견을 접고 퍼블리싱 계약을 하기로 한 이유는 전문가 집단의 서비스를 통해 게임의 성공 확률을 높이고 전문 퍼블리셔의 작업을 어깨너머로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계약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 중 계약을 반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에 고집스러운 인간이 된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퍼블리싱 계약을 마무리하고 여러 작업을 추가적으로 진행하며 결국 예상했던 기간보다 6개월이 더 걸리고 말았다. 2018년 1월로 계획하고 있었던 출시일이 2018년 7월이 되었으니 말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퍼블리셔가 요구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작업들이 있다. 주요 판매 마켓(구글, 애플)의 환경을 세팅하기 위한 작업, 그리고 게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벤트 데이터 확인을 위한 도구들을 부착하는 작업 등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 범위였다.
개인적으로 매우 힘들고 오래 걸렸던 부분은 게임 자체를 다듬는 일이었다. 나 그리고 강재봉의 감각과 시선으로 만들어오던 게임에 제삼자의 느낌과 감각이 섞이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최대한 잘 융합해서 변화된 게임의 모습으로 다시 만들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결국 최종 완성된 게임은 BIC Festival에서 시연했던 게임과 비교해보자면 게임 플레이의 느낌부터 외형적인 부분까지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되어버렸다.
퍼블리싱 계약으로 인해 전체 일정이 6개월가량 연장되었다고 한들 내가 좋아하는 게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었기에 여전히 즐겁게 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원 사업 기간을 제외하고 어떠한 수입도 없이 독립한 지 2년이 돼가는 시점임을 생각해보면 내가 얼마나 철없고 무책임한 인간이었는지를 자각한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이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슬픈 기분에 젖는다.
나의 아내는 나를 대신해서 집안의 경제를 책임진 지 2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나에게 단 한 번도 이 상황이 힘들다거나 이제는 돈을 벌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의 기간을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살았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상태가 지속되면 그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DNA에 저장되어있는 듯하다. 어느 순간엔가 이렇게 시간이 가는 것에 대한 위기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2018년 1월의 어느 날 잊지 못할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엄마한테 생활비를 못 드린 기간이 제법 되었었다. 그동안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서 그래도 생활이 되는 줄 알고 잊고 있었는데, 요즘에 생활비가 부족해서 일반 가정집에 일해주러 간지 몇 개월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부인이 처음으로 나에게 이제 본인도 더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다가오고 있으니 4월이 되기 전에 이 모든 활동의 결론을 지으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날 들었던 두 가지의 이야기는 이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적응해버린 나머지 잊을 뻔했던 내 현실을 날카롭게 상기시켜 주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겠다고 도대체 몇 사람의 희생과 미래를 담보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가 한 번에 느껴진 것이다.
충격은 컸고 나 자신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로 이제는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만 했다.
레인드롭 팝을 잘 마무리 짓고 이제는 이 여행의 끝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이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 IP를 이용한 게임을 외주 개발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지만 내심 레인드롭 팝을 출시하면 어느 정도의 성과는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믿음이 있어서였던지 처음에는 이 계약을 반드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확실한 미래를 도모하고자 외주 개발을 제안해준 회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이 요구한 주요한 내용은 4개월의 개발 일정으로 여름 시즌에 반드시 출시해주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인드롭 팝의 출시 작업을 준비하면서 주어진 4개월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그들이 원하는 게임을 완성할 자신이 없어서 불가능에 가까운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정을 망설이게 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완성만 할 수 있다면 둘이서 1년 6개월은 걱정 없이 먹고 살 정도의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거절할 수 없는 너무 좋은 제안이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과 시간을 고려했을 때는 하지 않는 것이 맞겠다고 의견을 전달했다. 내심 레인드롭 팝의 흥행에 대한 약간의 자신이 있었기 때문임도 한 몫했던 것 같다.
최초의 의사 전달을 한 이후 몇 번의 의견 조율이 더 오고 간 끝에 결국에는 외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렇게 조율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계약서에 도장 찍기까지 2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프로젝트의 첫 시작은 2018년 4월에 할 수 있었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줄 재정을 제공받았다는 고마움, 게임 제작하는 것에 있어서는 신뢰를 쌓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법원에서 만나기 싫은 마음을 더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만들었다.
그렇게 주어진 4개월이라는 시간에 레인드롭 팝 출시 작업을 병행하면서도 가진 체력과 컨디션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끝에 결국 게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시간을 보내며 또다시 건강과 체력 모든 것이 바닥까지 소진되어 어떤 작업도 할 수 없고 하기도 싫은 질려버린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결과를 만들었고, 정말 운이 좋게도 앞으로 1년은 수입에 대한 걱정 없이 게임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처음으로 가져보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되어있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2018년 1월은 나에게 깊은 절망감과 실망감을 안겨준 달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나는가 싶었고 그것이 열심은 있으나 능력 없는 자의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극적으로 살 길이 열렸고 다음 기회를 얻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행운이 언제까지 따라줄지는 알 수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없다고 믿는 편이 현실적일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다가올 1년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절박한 기회인지를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4월에는 구글 인디 페스티벌이 있었다. 그리고 이 행사에서 프로모션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게임이 출시된 상태가 유리했다. 그래서 퍼블리싱 계약 이후 차곡차곡 만들어오던 게임을 4월 20일에 국내에 우선 출시하게 되었다.
소프트 런칭이라 함은 정식으로 전 세계에 출시하기 전에 한정된 몇 개의 국가를 선택해서 오픈하고 게임이 재미는 있는지 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지를 점검하는 행위다. 정식 오픈을 위한 가오픈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주요 국가라 생각하는 한국에 오픈이 되어버린 상태였기에 좋은 결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주변을 보면 한국 한정으로 열어두고도 좋은 결과를 내고 그 성공을 바탕으로 전 세계로 도전하는 게임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블리셔가 국내 한정으로는 홍보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마켓에 올라간 상태로 별도의 홍보 활동은 없었고, 큰 인디게임 행사를 거쳤음에도 특별한 반응 없이 조용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쯤 되니 소프트 런칭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지난 퍼블리셔도 소프트 런칭이라는 명목으로 몇 개 국가에 오픈을 해두고 별다른 홍보 활동을 진행하지 않아서 실제 다운로드 수가 매일 0에 수렴했었고, 게임을 점검한다는 행위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유저의 피드백을 받을 수가 없는 소프트 런칭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임의 재미가 적당한지 큰 버그가 없는지 유저의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은 없었고 그 반응을 살펴볼만한 다운로드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우리 스스로 하는 게임 발매도 아니다 보니 내가 나서서 홍보 활동을 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한듯해서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답답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불안한 현재를 치유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 아니겠는가. 지금은 소프트 런칭이라 그런 것이고 정식 출시를 하게 되면 이 모든 걱정이 끝나고 좋은 시간이 올 것이라는 기대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남은 시간 잘 다듬어서 게임의 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정식 출시에는 다를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2018년 7월 10일은 길었던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버텨낸 끝에 완성된 레인드롭 팝이 세상에 나온 날이다.
퍼블리셔는 나름의 홍보 활동을 시작했고,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지켜보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2주가 넘도록 극도로 미미한 반응만 있었을 뿐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때가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주변에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던 이야기가 전작인 매드니스티어 라이브를 만들던 때는 재밌게 열심히만 만들어두면 결과는 어떻게든 잘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출시를 했었다면, 이번에 만든 레인드롭 팝은 어떻게 만들면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처음부터 의도하면서 만들었기에 이전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게임이 퍼지지 않는 현상에 퍼블리셔도 꽤나 당황해하는 눈치였고 방법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한 달 이상이 흘러왔고 특별한 반등의 상황을 만들지는 못했다.
또 한 번의 씁쓸한 실패로 받아들이고 다음 기회를 준비해야 할지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믿고 긴 싸움을 해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8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