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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소년 Aug 30. 2016

God bless you 첫날의 제주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어요

 가을바람은 간지럽다. 귀를 간지럽히고 머리칼을 간지럽히더니 이내 내 마음마저 간지럽힌다. 사랑하는 연인과 침대에 누워 장난스럽게 서로를 간지럽히는 듯하다. 가을 햇살은 따스하다. 내 눈을 따사롭게 하고, 내 몸을 따사롭게 하고, 내 마음을 따사롭게 한다. 마치 푸르고 넓은 초원에 한 송이 꽃이 되어 그 햇살을 받는 듯하다. 바람은 나를 간지럽히고 따뜻한 햇살은 나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어떻게 이곳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처음 느꼈던 제주의 온도는 가을과 함께 내 안에 빠져들었다. 나는 제주의 가을을 격렬하게 환영했고, 내 안에 고이 간직한다.


 제주에 살겠다고 마음먹은 뒤 내가 도착한 곳은 동쪽 끝자락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마을이었다. 웅장한 성산일출봉이 지붕 사이로 보이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도 구름 사이로 그 능선이 펼쳐지는 곳. 그곳은 아침이 되면 수많은 걸음걸이가 흔적을 남기곤 했다. 그 발자국에는 인종도 국적도 없고, 사람과 동물도 없다. 오직 바다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만이 존재한다. 그 아름다운 마음 하나하나 모여 하늘이 바다를 열어주면 그땐 모두가 눈 부신 태양을 맞이한다. 부드러운 빛을 뿌리며 떠오르는 그 태양은 마치 새로운 세상이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다. 나는 매일 아침 새로운 세상, 희망이 열리는 곳에 살았다.

 왜 이곳을 택했느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일주 버스가 두 대 씩이나(?) 다닌다는 것과 편의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집 바로 앞에 마트가 있다는 이야기에 혹했기 때문이다. 제주가 어떤 모습인지, 어떤 곳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성산을 소개하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일주 버스 두 대라던가, 편의점이라던가, 마트가 있다는 것. 육지에선 매우 당연한 듯한 내용을 자랑하듯 이야기하는데, 마치 이것들이 이곳에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집 앞에 마트도 있고요. 일주 버스가 두 대나 다녀요. 뚜벅이 여행자들한텐 최적의 조건이라니까요? 나는 사장님의 호들갑에 자연스레 제주도가 품은 마을들은 내가 예전에 살던 시골 마을, 그러니까 버스는 한두 시간에 겨우 한 대가 오가고 편의점과 마트는 20분을 족히 걸어야 나오는 그런 곳을 상상하게 됐다. 그런 곳을 떠올리니 일주 버스 두 대와 마트. 이건 엄청난 혜택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갖가지 혜택, 그러니까 버스나 편의점, 마트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여행지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하는 것을 귀찮게 여겼던 나는 성산에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내가 살게 될 곳, 여행하게 될 곳이 교통은 어떻고, 맛집은 어떤 곳이 있으며, 주변 관광지는 무엇이 있는지. 버스는 몇 대가 다니고, 편의점은 있는지. 그런 것들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에 가든 내가 가야 하는 곳은 그냥 제주도여야 했던 것이지 어떤 조건에 부합하는 곳을 가고 싶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가게 되는 곳이 편의점 하나 없는 곳이라면 나는 공기를 마실 것이고, 바람을 삼키면 된다. 또 하늘을 마시고, 여행자들의 마음을 삼키면 된다. 하나의 조건을 달아야 한다면 그것은 오직 자유. 편의점이나 마트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이 지역, 저 지역 비교하며 내가 살 곳을 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버스나 마트 같은 내 앞에 놓인 조건은 전부 내던져버렸다. 그러자 제주도 어디든 상관없다는 작은 소망만이 남았다. 작은 소망은 어딘가 비교할 필요 없이 그냥 나를 성산으로 이끌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작가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는 문자였다. 제주 어느 곳에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참에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것만큼 좋은 인연은 또 어디 있으랴. 통화하며 호들갑 떨던 사장님의 말은 다 잊어버리고 내 핸드폰에 떠오른 그 문자만을 바라보았다. 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성산에 나를 내던졌다.


 제주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옥상에 올라가니 부드러운 햇살이 성산일출봉 뒤로 마을을 감싸 안았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여행객들을 위한 조식을 준비했다. 사장님은 여행하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여행길에 오르길 바란다며 아침마다 추억의 도시락을 만든다고 하셨다. 양은으로 된 옛날 도시락통에 밥을 꾸역꾸역 누르고 볶은 김치와 멸치볶음. 분홍 소시지와 밥 위에 달걀프라이 하나 올린 그 조촐한 도시락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 세대 사람이 아니었지만, 2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시락을 만드는 사장님의 눈빛만 봐도 그 추억 속의 맛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새로 밥을 짓고, 늦은 밤 혼자 달아오른 팬을 휘저으며 요리하던 사장님은 마치 엄마의 정성과도 비견될 정도로 여행을 사랑하셨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사장님의 정성에 누를 끼치지 않게 여행을, 당신을 더욱 사랑하기로 했다. 도시락통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밥을 올리고 달걀은 노른자 터지지 않고 구워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면, 그건 조금 우스운 일일까? 사장님과 나의 땀은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애써 만든 추억의 도시락을 들고 거실에 내려가 전기레인지에 올려두었다. 식으면 맛이 없다고, 당신들이 따뜻하게 먹었으면 좋겠다며 수시로 층층이 쌓은 도시락의 순서를 바꿔주는 사장님의 손길, 전기레인지 닿은 도시락이 따뜻하다고 건네는 말 한마디. 내 제주 첫날은 여행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아침부터 기분 좋은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객실을 나온 여행자들도 그 정성을 느꼈는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도시락을 깨끗이 비워주었다. 사실 그렇게 맛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짜고 맵고 조미료 맛밖에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모두 맛있다고 해주었다. 정성으로 만든 도시락은 여행자들의 미각을 지배했다.

 조식이 끝나고 여행객들을 배웅했다. 떠나는 당신들에게 다음 일정을 묻고, 행복한 여행을 기원하는 내 모습에 당신들은 입가에 한가득 깊은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여행하는 사람들의 미소는 일상의 그것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이 미소는 마치 커피처럼 진하고 향기로웠다.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커피 향은 달콤했고 썼으며, 부드러웠고 은은했다. 여행은 각자의 커피 향을 유감없이 남겨주었다.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사람, 아메리카노처럼 은은한 사람, 카라멜 마끼아또처럼 달콤한 사람.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커피를 좋아하게 됐다.

 나와 같은 밤을 보낸 그들을 모두 떠나보내고서는 게스트하우스 아침 청소를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하는 일은 새로운 여행을 마주할 준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에 들어가자 침대에 머물렀던 그들의 향이, 그들의 여행이 아주 살짝 보이는 듯했다. 차분히 개어놓은 이불, 여기저기 쓰레기 봉지가 널브러진 방, 퇴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침대에 누워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깊이 잠든 사람. 누군가의 여행은 이곳에 머물렀으며, 곧 새로운 여행이 또 찾아올 것이다. 나는 새로운 여행을 마주하기 위해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내 앞의 남자를 깨워야만 했다. 비몽사몽 눈을 뜬 그는 핸드폰 시계를 보고 놀라더니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불 사이로 "죄송합니다." 한숨 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난 웃으며 "다른 방 먼저 청소하면 되니까 씻고, 얼른 짐 챙겨서 나와요. 제주가 기다려요."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다른 방을 청소하러 갔다. 방을 나서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술에 취해 늦잠 자는 것 또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 그 모습 또한 자유로워 보였다. 수많은 삶이 있듯, 수많은 여행이 있었다. 다른 방을 청소하는데 허겁지겁 짐을 챙긴 그는 인사도 없이 현관을 나가버렸다. 나는 그가 나간 자리, 허공에다 대고 "즐거운 여행 하세요." 하고 소리쳐 주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여행이 있었다. 예를 들면 술에 취해 세상모르고 자는 여행. 썩 마음에 들었다. 그가 나간 자리의 이불을 개면서 문득 '이 자리에는 어떤 여행이 찾아올까?' 궁금해졌다. 가능하면 이 사람만큼 자유로운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청소를 모두 마친 뒤 게스트하우스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붉게 물들인 머리를 묶고, 카메라를 챙겼다. 드디어 제주를 마주한다고 생각하자 현관문을 여는 손이 살짝 떨려왔다. 이 떨림은 불안함보다는 설렘이었다.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다. 나는 힘껏 문을 열어젖혀 그 햇살을 온몸으로 부딪혔다. 제주, 성산의 첫날은 눈부신 아침으로 내게 다가왔다.

 문을 열고 나가자 바람이 불었다. 또 따스한 햇살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 공기는 한 번도 안겨보지 못한 어머니의 품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의 품은 그만큼 포근했다. 게스트하우스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는 외국인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나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옆을 지나치자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분명 이곳은 우리나라인데 왜 내가 이방인 된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이 상황에서도 웃음이 났다. 나는 낯선 모든 것들이 여행으로 보였다.

 그들을 지나쳐 길을 따라 걸어가자 파도 소리가 들렸다. 나는 파도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계속 걸었다. 곧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햇살에 부딪혀 반짝였다. 바다 위의 빛망울이 눈부시다. 곧 바람이 불자 파도가 내게 밀려왔다. 나는 파도가 신발을 덮어버리고 지나갈 만큼 깊게 밀려와도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신발 사이로 차가운 바닷물이 스며들었다. 젖은 신발을 쳐다보며 물의 온도를 느끼다 고개를 들어 먼 바다를 쳐다보았다. 바다 저 멀리 경계에는 선을 그어놓고 그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하늘에는 하얗고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구름이 떠다녔다. 천사가 풍선을 불어 띄어놓은 것만 같았다. 이곳에 서 있는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미치도록 자유로웠다.

 그러니까 제주는 바람이 불었다. 따스한 햇살이 비쳤고, 공기는 어머니의 품과 같았으며, 사람들이 여행하고 있었다. 또 바다에는 빛망울이 맺히고 파도가 밀려왔다. 바다의 경계 위로는 하늘이 펼쳐졌다. 그 하늘에는 솜사탕 모양의 구름이 떠다녔다.

 그렇다. 아름다운 파도가 밀려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이곳은 제주도. 환상의 섬이다. 나는 환상 속에 빠져들었다.


 처음 만난 바다의 이름은 광치기 해변이었다. 성산을 품은 이 바다는 에메랄드빛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깊은 색을 가지고 있었다. 불길을 덮어버릴 만큼 차갑고 투명했다. 해변은 바다 옆으로 긴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다. 이 길만 따라간다면 바다를 옆에 두고 걸을 수 있었다. 산책로에는 사람 대신 말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매일 걷는 길이라는 듯 평온해 보였다. 이 아름다운 섬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생명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풀 뜯는 말을 보며 그들 곁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도 말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았다. 말은 배가 고프면 풀을 뜯고, 쉬고 싶으면 그늘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내가 바라던 생활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산책로를 따라가면 섭지코지가 나온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말들이 거니는 말도 안 되는 이 길의 끝을 보고 싶었다. 섭지코지를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도저히 이곳이 믿기지 않아 멈춰 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대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곳은 정말 환상의 섬이라는 호칭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 풍경들이 사실이라면 나는 분명 내 눈이 잘못된 것이라 믿어야만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20여 년의 세상이 모두 초라해지는 것만 같았다. 여태까지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단 말인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거대한 선박과 같은 모습의 성산일출봉, 이곳에서 희망이 뜬다. 뱃머리를 닮아 바다 위의 바람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섭지코지. 영화 타이타닉의 그 기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너무나 눈부셨다. 이 바다가 사무치게 아름다웠다. 내 등 뒤에 솜사탕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여유롭게 풀을 뜯는 말도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게 동화 같았다. 꿈이라면 깨지 말고, 현실이라면 변치 않길. 그저 주위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감동에 젖게 만들었을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Let's take a picture together?"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외국인이었다. 중동 어딘가 전통의상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하고 긴 무늬의 옷을 입고 나를 쳐다보았다. 바다가 한가득 담길 만큼 맑은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보다 더 부담스러운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나의 영어 실력이었다. 내 못난 영어 실력은 그녀가 정확히 이렇게 말했는지도 의심스럽게 했다. 나는 초등학교 수준의 영어도 못 하는 바보였다는 것과 그녀가 같이 사진을 찍자는 말을 영어로 했다는 것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셀카봉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셀카봉을 길게 늘어뜨렸다. 길게 뻗은 셀카봉을 이리저리 휘둘러보더니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오게 구도를 잡았다. 그녀는 내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물쭈물 그녀 옆에 섰고, 그녀는 처음 보는 내가 오래된 친구라도 된 양 어깨동무를 했다. 그녀의 핸드폰에 해변을 배경으로 어깨동무한 우리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아니, 찍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녀는 찍은 사진을 곧바로 확인해 보았다. 해맑은 그녀와 반짝이는 바다 사이에 시커멓고 못난 내가 담겨있었다. 어휴, 지지리도 못생겼네. 사진 속의 나를 보며 나는 한숨 쉬고 말았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누군지도 모를 여자가, 그것도 외국인 여자가 갑자기 다가와 같이 사진을 찍다니. 그녀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쳐다보자 피식 웃어 보였다.


 "God bless you."


 그녀가 웃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God bless you. 행운이 깃들기를. 아무리 영어를 못하는 나라도 그 정도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행운, 갑자기 들어버린 그 말이 이상하리만큼 내 심장을 요동쳤다. 그녀는 행운이 깃들라는 말과 함께 싱그러운 미소를 남기고 해변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걸어갔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녀가 지나간 곳을 보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언제부터 들렸는지 모를 일정한 파도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서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 햇살, 하늘, 바다. 해변을 걷는 그녀의 뒷모습은 이곳이 동화 속 같다는 생각을 더 절실히 믿게 했다. 나는 그녀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지랑이 속으로 그녀는 사라져 갔다. 그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는 그녀가 걸은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그녀가 걸어간 이 길을 따라 걷는다는 건 동화 속을 걷는 것이었다.


 곧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더 많은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나는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로즈처럼 두 팔을 벌려 바닷바람을 맞이할 줄 알았다. 그 상쾌한 자유로움에 나를 내던지고 이 동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정신을 놓은 채 섭지코지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른 선바위를 보고, 섭지코지에 얽힌 전설을 듣고,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건물을 보았다. 또 등대와 함께 바다가 주는 바람도 느꼈다. 그러나 어떤 감흥도 일지 않았다. 그녀와의 짧은 만남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행운이 깃들기를. 어느새 해는 기울고 한라산 너머로 노을이 졌다. 그녀의 말이 노을빛을 타고 내게 물들었다. 나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God bless you.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도 내 머릿속은 계속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낯선 곳에서의 낯선 만남. 그리고 낯선 언어의 그 말이 무엇이라고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좋았다.

 '행운이 깃들기를.'

 생각해보면 누구도 내게 행운을 빌어준 적이 없었다. 그 말 한마디는 우리 사이에 그렇게 어려운 말이었나 보다. 오늘에서야 내게 행운을 빌어준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것도 낯선 이방인이 낯선 이방인으로부터 행운을 기원할 줄은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처음 보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가 참 고마웠다. 그녀 덕분에 앞으로 내가 살아갈 제주에서의 시간은 행운으로 가득할 것 같았다. 길을 잃어도 무섭지 않을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도 결국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행운을 기원한다는 것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2015년 가을, 나는 제주에 왔다. 제주라는 동화 속 세상에 살게 된 동시에 이곳에서 새로 태어났다. 도망쳐 온 제주에서의 여행은 여느 일상과는 다르게 행운과 함께였다. 나는 이곳에선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나는 정말, 진심으로 행복했다.


 미래의 내가 했던 말이다. 내게 허락된 시간, 시간이 지나 제주를 추억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어요."


 행운과 함께 제주에서의 첫날밤이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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