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유에 솔직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0.
"그렇게 힘들었던 창업을 왜 다시 하려는 거에요? 어떤 생각이 바뀌었나요?"
두 번째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입니다.
첫 번째 창업을 하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참 많이 괴롭혔습니다.
만날 때 마다 죽을 상을 하고 있고, 입만 열면 무거운 소리만 하니 얼마나 꼴보기가 싫었겠습니까.
그럼에도 소주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면서 힘내라고 해준 주위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꾸역꾸역 버틸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창업한 회사가 스타트업에 인수(로 위장한 폐업)가 되고 난 뒤에, 한 동안은 창업의 "ㅊ"도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멋모르고 부딪혔던 첫 번째 창업의 기억이 너무나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주위에 창업을 고민하면서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으면, 제가 부딪혔던 현실을 이야기 하면서 염려 가득한 말들을 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두 번째 창업을 시작하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을 아주많이 버는 것도, 명예를 얻는 것도, 내가 정말 깊게 공감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창업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단 하나는 아닌 것 같습니다.
1.
Common Reasons to Become a Tech Entrepreneur (스타트업 창업의 가장 흔한 이유들)
- It's Glamorous (간지)
- You'll be the Boss (권력)
- Flexibility (띵가띵가)
- You'll make more $$$ & Have More Impact (돈, 영향력)
영상을 보면 이 4가지가 왜 Bull Shit(소똥) 인지 이야기 합니다.
다시 한번 창업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는 YC 정주행을 강력하게 추천 드립니다.
제 주위에는 창업을 했거나, 창업을 준비중인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창업가와 예비창업가를 많이 만나는 직업인 VC 분들을 만날 기회도 많은데요.
창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100%의 가까운 확률로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 창업을 하시려는거에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생각보다 사람에 따라 다양합니다.
그리고 들었을 때 어색하지 않은(=자연스러운) 답변들은 항상 단순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졸라 많이 벌고 싶은데, 직장생활로는 불가능 한 것 같다." 같은 답변들이요.
반대로 길고 복잡한 답변을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대학생 때부터 창업을 하고 싶었고, 그동안 사이드 프로젝트로 AA앱, BB앱을 만들었었는데요. 이번에 회사에서 스톡옵션 기간도 끝났고, 왠지 더 늦기 전에 시작을 해보아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이런 긴 답변을 주는 경우는 본인 스스로도 이유를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제 첫번째 창업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2.
2년 전 다니던 회사를 당차게 퇴사하고, 창업을 했습니다.
이전 회사에서 PO로 좋은 성과를 내고 퇴사를 했기에 창업을 하면 금방 PMFit(Product Market Fit)을 찾고, 3년 정도 안에 회사 벨류는 몇 백억은 찍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대학생 때 부터 생각해온 창업이었기에, 더 늦기 전에 한 번은 꼭 시도해 보고 싶기도 했구요.
지금 그 당시를 되돌아 보면, 제가 창업을 시작한 이유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창업에 대한 호기심" 이었고, 힘들때 마다 되새김질 했던 가장 큰 동기는 "3년 안에, 100억 벌어야지" 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뺨을 한 대 강하게.....)
물론 대학생 때 부터 창업을 하고 싶었고,
모두가 말려도 궁금한건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먹어봐야 하는 성격도 있었고,
더 높은 수준의 자기 결정권을 갖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결국 핵심은 "짧은 기간 안에, 많은 돈"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만나는 사람들이나, 투자자들에게는 절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들었을 때 상대방이 고개가 끄덕여질법한 답변을 길게 늘어놨습니다. 진심어린 표정으로 상대방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요. (성공하면 비져너리, 실패하면 사기꾼. 결과를 제외하면 둘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정작 일이 잘 안풀리고 힘들 때면, 투자 받은 벨류를 기준으로 내가 가진 지분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혼자 미소를 짓곤 했습니다.
3.
두 번째 창업을 준비하는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기결정권" 입니다.
이걸 문장으로 바꾸면 "남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 이구요.
지난 달에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습니다.
프랑스에서 부터 스폐인 끝 까지 780km를 30일 가까이 걸어가다 보니, 이걸 언제 다 걸아가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왜 돈 쓰고 이런 고생을 하나 싶기도 하고, 시작한지 2~3일이 지나고 나자 하루 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끝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이건 누가 강제로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경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빨리 도착하는 것에 집착을 하는건지, 싶더라구요.
그래서 관점을 180도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산티아고(목적)에 도착하기 위해서 걷는(수단) 것이 아닌,
걷기(목적) 위해서 산티아고(수단)에 간다고 생각하는 것으로요.
관점을 바꾸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 35km를 가려면 더 빨리빨리 가야되는데' 라는 생각으로 초조했던 머리 속이
걸으면서 보이는 풍경과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더 즐거운 방식과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호흡으로 걷게 되더라구요.
정말 신기했던 점은 그럼에도 하루에 걷는 거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 입니다.
걷는 과정이 즐거우니, 빨리가지 않더라도 조금 더 오래, 멀리 걸을 수 있었습니다.
산티아고에서의 경험이 목적와 수단을 바라보는 관점을,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180도 바꿨습니다.
얼마나 빨리 가느냐 보다 어디를, 어떻게 가느냐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과거에는 "3년 안에 100억을 벌어야지" 였다면,
지금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오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30년 정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에는 "빨리빨리" 였지만, 지금은 "오래오래" 입니다.
내가 만족감을 느끼면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누군가가 만든 회사에 소속되는 것 보다는 스스로 창업을 하려 합니다.
창업의 결과물이 스타트업이 아니어도 괜찮고, 큰 돈을 벌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자기 결정권" 입니다. 내가 판단해서 내 인생의 시간을 쓰고자 합니다.
물론 앞으로 생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구요.
4.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정말 이게 가능할까 싶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1무 1패로 9%에 불과했던 확률을 뚫고, 16강에 진출했습니다. 91%로 실패할 확률을 뚫어낸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볼 때 마다 괜히 가슴이 시큼한 이 문장이 이번 월드컵에도 등장했습니다.
롤드컵에서 DRX의 기적적인 우승을 이끈 데프트의 이 문장이, 월드컵에서 기적적인 16강을 이끈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에 의해 다시 한번 증명되었습니다.
코로나, 금리 등으로 다사다난 했던 올 한해를 관통하는 한 문장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나를 무시해도, 함께 시작한 친구들이 나를 제치고 앞서 나가도, 제자리 걸음만 반복하는 것 같아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 일을 내가 왜 하는지, 이 수모를 겪으면서도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스스로의 이유에 솔직한" 것이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갖기 위한 그 첫걸음 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유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