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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멸망이 내게 가르친 것

거의 모든 나라는 같은 이유로 망한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탈리아에 산다는 건 여러가지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산다는 건 일면 정신적 부담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 이래 가장 강렬한 스토리를 남겼다는 이탈리아, 아직도 지구촌 사회는 그 옛날 이탈리아를 두고 미주알 고주알 수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런 이탈리아(로마)에 사는 거주민으로서의 댓가인지 모르겠지만 불편한 순간이 있다. 한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통찰 비스무리한 걸 강요당하는 느낌, 가끔 그런 걸 느낀다.

“로마에 산다면서요?”

라는 지인들의 질문은 그래서  매우 무겁고 불편하다. 책 몇권에 적힌 로마에 관한 한없이 길고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면 다 때려치우고 그냥 타임머신이나 한번 타보고 싶어진다. 타임머신… 난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이라던 코모두스 시대로 돌아가 그 시대로부터 멸망까지의 시간을 구경하고 싶다. 아주 재밌을 것 같다. 원래 구경꾼의 입장에선 불구경, 싸움구경이 더 자극적인 것이다. 머리가 잘리고 허리가 꺾이는 검투사들의 쌩비극을 직접 보고나면 어지간한 반원형 극장의 사랑과 전쟁 스토리는 현실감 제로의 공간으로 여겨지기 쉽상일 것이다. 게다가 쇠락기 로마의 유혈난장판은 경기장도 필요없었다. 궁궐이든 거리든 정적들의 칼부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난 지금 전쟁도 기아도 없는 이 평화로운 공간에서 호의호식 중이다. 이 잘나고 감사한 평화 때문인지 내게 ‘팍스 로마나’를 구경하는 건 그닥 끌리는 일이 아니다. 반면 망해가는 로마를 구경하는 건 무지 재밌을 것 같다. 더불어 지금의 시대까지 난잡중인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라는 물음에 관한 살가운 답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망상이다. 타임머신은 없다. 가진 거라곤 서푼짜리 지식과 메마른 상상뿐…


책들을 읽다 이상하다 느낀 건, 로마의 성장에 대한 해석은 거의 일치하며 반론의 여지가 없는 반면 멸망에 대한 해석은 가지각색이라는 것이다. 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한데 내 따위가 뭐라 하리요. 혹 누군가 “로마는 왜 망한 거유?” 식의 질문을 받게 되면 또다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이쯤되면 로마에 살고있다는 게 원죄인 것이다. 자의반 타의반, 로마의 멸망에 관한 역사적 잡설들을 접하며 갖게 되는 몇가지 사적 망상들이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길 바랄 뿐이다.


흥하든 흥하지 않든, 국가는 수명을 다하면 결국 망하게 마련이다. 로마가 흥했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흥했다는 건 백성이 잘 먹었다는 얘기다. 나라가 흥하면 먹기만 잘 먹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식욕이 해결되면 2차 본능인 정서적 욕구를 찾게 마련이다. 흥한 나라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서적 욕구들이 성행했다. 흥한 로마도 결론적으로 잘 먹고 잘 향유했다는 얘기다. 잘 먹었다는 건 경제력, 잘 향유했다는 건 지(知)력이다. 또 흥을 오래 지속하려면 군사력이 필요하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가지는 유기체다. 어느 한가지만 독립적으로 따로 성장할 수 없다. 돈이 있어야 군대도 커지고 거기에 지력을 더하면 승률이 높아질 것이고 승률이 높아지면 돈이 더 많아진다. 그러면 다시 군대를 불릴 수 있고… 무한 서클이다. 로마 멸망을 두고 해석이 분분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거다.

성냥개비로 탑을 쌓는다 가정해보자. 쌓는 건 순서가 있다. 아래부터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허나 탑이 무너지는 건 순서가 없다. 어느 부분이든 하나가 흔들리면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연쇄작용이란 건 여러가지 일들이 줄줄이 터진다는 얘기다. 유기체이며 서클관계이기 때문이다. 터지는 여러가지 일들 중 어떤 걸 더 크게 여기느냐에 따라 멸망의 핵심 원인이라 판단할 것이다. 그래서 이거네 저거네 말들이 많은가 보다.


무릇, 쌓기는 어렵고 무너지기는 쉬운 법, 로마의 성공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멸망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졌을가? 하루 아침이라 하면 좀 너무하지만 탑을 성실히 쌓은 과정에 비하여 적잖이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건 맞는 것 같다. 로마다운 멸망이라면 모름지기 영화 ‘300’에 나오는 용맹한 장군과 시민군들이 “This is Sparta!!!”를 외쳤던 것처럼 “Roma victor!!!”를 외치며 피터지게 싸우다 극적으로 역전패 당하는, 그런 장엄한 멸망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로마의 멸망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기적같던 성장기에 비하면 아주 무기력하고 찌질한 멸망이었다. 그나마 수명을 더 연장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쌓아놓은 게 너무 대단해서였을 것이다. 각설하고, 도대체 그 대단했던 로마는 왜 망했을까? 구체적인 복합적 이유들은 이미 세간에 많이 떠돈다. 솔직한 고백을 한가지 하자면, 로마가 망한 이유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려다 이내 내팽개친 적이 있었다. 구구절절 늘어놓고 정리할 만큼의 가치를 굳이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멸망의 ‘외부적’ 문제를 정리하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국가간 이해관계, 계산방식, 싸움방식등이 지금과는 너무 달랐던 그 시절 이야기가 문득 동화책 판타지나 ‘반지의 제왕’처럼 여겨진 순간, 회의감은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외부적 문제에 집착하기 싫었던 또한가지 이유는, 멸망의 핵심적 이유를 외부가 아닌 ‘내부적’ 문제에서 찾고 싶었으며 그것이 지금 우리의 사회문제에 접목되어 더 살가운 교훈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간에 떠도는 로마 멸망의 수많은 내부적 원인들 중 몇가지를 정리해보자면 대충 이런 것들이다.


– 정치적으로는 성장기 잘 지켜오던 권력의 균형이 각종 음모와 유혈분쟁으로 변했고,

– 경제적으로는 각종 세금제도 변화가 일방적 분배로 귀착되면서 하층민들의 노동의욕이 사라졌으며,

– 군사적으로는 돈 많은 재력가의 군 사유화로 국가적 차원의 군기가 하락하였고,

– 종교적으로는 쇠약해져 가는 로마사회의 구성원들이 내세의 구원에 마음을 빼았긴 이유로 현세에 대한 노력이 반감되었다… 등등


어디 이 뿐이겠는가, 국가의 망조에 드러나는 현상들은 손가락으로 꼽기도 벅찰 것이다. 허나 뭔가 개운치 못하다. 저런 이유들은 내부적 원인이 맞긴 하지만 멸망에 대한 결과적 현상들일 뿐, ‘잘 나가던 로마가 왜 저렇게 갑자기 돌변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 원인설명은 아닌 것이다. 감성지수가 타고났거나 윤리교육을 훌륭히 받은 사람들에겐 쉽사리 헤아려질 이 문제가 내겐 너무 어려운 문제였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아우렐리우스 이후, 혹은 ‘팍스 로마나’ 이후 로마의 붕괴를 가져온 내부적 문제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결국 잠정적 명제를 떠올려 보았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의 입장을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명제 말이다. 물론 의문이 다 풀리는 건 아니다. 약자의 입장을 외면한 사례가 설마 코모두스가 처음은 아닐 진데 왜 하필 코모두스 이후가 본격 쇠락기가 되었을까? 이후 오현제와 같은 현자가 더이상 없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현자의 계보는 왜 다섯명에서 끊겼는가? 꼬리를 무는 계속된 질문은 여전히 나를 시험중이다. 여하튼 수많은 전문가들의 난무하는 해석들을 접하며 든 생각은 결국 {멸망의 과정 = 가진자의 이기주의가 심화되는 과정} 이라는 등식이다. 다시 말해서 붕괴의 원인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책적 패러다임을 창조하지 못한 이유와 더불어 그보다 더 큰 이유, 그간에 잘 해오던 공적인 일들을 사적인 욕심으로 내팽개쳤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지나간 역사가 현재에 투영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도 없을 일, 잠시 타임머신을 접고 주변을 살펴본다.


한국은 기록유산을 제외하곤 역사적 자원의 스캐일이 소박하거나 후손인 현대인을 먹여살릴 경제적 환원가치가 낮은 편이다. 고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개발 패러다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반면, 이탈리아는 역사적 자원의 스캐일이 거대한데다 현대인들을 어지간히 먹여살릴 경제적 환원가치를 지닌다. 전국 곳곳에 지구촌의 가장 많고 거대한 유네스코 복합유산을 가진 것 뿐만 아니라 도시마다 수백년 혹은 수천년을 이어온 유-무형 유산들이 건재하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치 않고 남아있는 인간의 많은 아날로그 영역의 전문성은 여전히 세계 최고이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쏟아내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의 이탈리아는 2천년전 로마의 성장기가 그랬던 것처럼 이미 잘 이루어져있는 것들을 내팽겨치지만 않아도 얼추 현상유지는 할 것 같아 보인다. 단, 조건이 있다. 가진 자의 이기주의가 심화되지 말아야 한다. 한때 가진 자로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했던 베를루스코니가 세번의 총리직을 연임하는 동안 개인의 이기주의가 어떻게 나라를 말아먹을 수 있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엄청난 국가부채 증가로 그리스에 이어서 국가부도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얘기가 한참 돌았던 건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전반적 정치부패와 좀처럼 줄지 않는 마피아의 지하활동도 이탈리아의 커다란 숙제로 남는다. 아무리 조상들의 유산이 건재하다 한들 영원한 영광은 없는 것이다, 과거의 로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 사회는 과거의 유산에 의한 국가의 운명이 이탈리아의 상황과 전혀 다르지만 가진 자의 이기주의가 악영향을 미친다는 명제는 똑같이 적용된다. 국가부채 1000조…

작년에 있었던 기획재정부의 국감발표는 그렇게 충격적이었다. 더 큰 충격은 따로 있었다. 영국의 ‘조세정의 네트워크’가 내놓은 발표에 의하면 한국기업들이 해외 페이퍼 컴퍼니에 쌓아둔 도피 자산이 900조 가까이 된단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라에 낼 세금을 외국으로 삥땅친 액수가 900조라는 얘기다. 그것만이라도 나라에 제대로 냈다면 국가부채는 거의 탕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국가 차원에서 IMF 기관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낭떠러지 상황이 벌어지거나 서민들이 아무리 부지런히 일을 해도 상대적 빈곤을 벗어나기 어려워지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 국가가 돌아가는 일이 어찌 그리 간단하랴마는, 이쯤되면 흥망성쇠의 지름길이 그렇게 복잡한 것만은 아닌 것이다. 개인이든 가족이든 사회든 국가든,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잘 구분하면 빠르게 흥하진 못해도 쉽사리 망하진 않는다. 이건 곧 도덕-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서양이 국가를 논하고 진선미를 논할 적, 동양의 현자들은 그 시대에도 도덕-윤리를 최상위 가치로 여겼으며 미학을 논할 때도 윤리의 테두리를 늘 적용시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덕이 붕괴한 나라가 오래도록 흥한 역사는 존재치 않는다. 역사는 그렇게 현자들의 예언대로 흘렀다.


사람들이 하나되어 500년을 지속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역사가 증명한다(인간이 만들어 놓은 ‘국가’라는 체제가 500년을 지속할 확률을 역사속에서 돌이켜 보라). 로마제국의 500년이나 고려의 500년, 조선의 500년, 혹은 신라 1000년을 함부로 여기면 안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허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조상들의 지난 날도 전혀 다른 문화를 소유했던 로마와 멸망의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이다. 골품제, 정권쟁탈, 종교타락, 사색당쟁, 쇄국정책, 공리공론, 반상제도… 어릴 적 학교에서 달달 외우던 이런 멸망의 원인들은 언뜻 보기엔 로마의 멸망과 전혀 다른 내용 같으나 그 내용의 핵심엔 항상 ‘가진 자의 이기주의’라는 명제가 존재했었다.


새삼 유럽의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200여년 전 프랑스가 사회적 계급 시스템을 붕괴시켜 시민주권의 씨를 뿌리더니, 경제적 계급마저 없애려던 사회주의 운동으로 마르크스는 19세기 철학자 중 최고의 네임드를 남겼다. 이후 두차례 거대한 전쟁으로 강자의 폭력이 얼마나 큰 충격을 남기는지를 깨달은 유럽은 자본과 윤리와 인권에 관한 철학적 담론을 공교육화 시키며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평화로운 공존에 관한 고민을 범국민적으로 실천중이다. 유럽의 복지 시스템의 골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이며 강자인 기업이나 국가의 기본윤리를 법제화 한 것이다. 가진 자들에게 더많은 세금을 부과하도록 하여 가지지 못한 자에게 분배하는 제도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범국민적 공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한다. 유럽의 논술-구술 시험체계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가 위대한 건 다 그 때문이며 더불어 우리나라 교육에 인문학이 죽고 사유과정이 죽어가는 건 그래서 슬픈 일이다.


멀고 거창한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살면서 아직 기부다운 기부를 해본 일도 없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바리스타에게 고작 몇센트 내려놓는 일에 조차 멘탈이 평안하지 못하다. 로마가 내게 자본과 윤리와 인권의 서클관계를 가르쳤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실천의 문제마저 로마에게 가르쳐달라 할 수는 없는 노릇, 부끄럽기 짝이 없다.


“로마에게 물어보라”,


세상에 떠도는 이 오랜 명언을 어렴풋이나마 실감하는가 싶더니 결국 남는 건 깨져야 하고 깨우쳐야 할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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