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n Feb 07. 2021

[D+92] New Life : Hi Sapporo

삿포로 생활 93일째. 

2020년 11월 9일 오전 8시



전날 부동산으로부터 받은 키를 문을 여니 현관 입구에 휴지가 놓여있다.

입주를 환영한다는 관리회사로부터의 편지를 보니 정말 이사를 온 모양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새로 이사 오면 휴지를 선물해주는 건 같은 똑같나 보다.

기분이 좋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 건 참 기분이 좋다.


이삿짐센터에서 전화가 온다.

도착했단다.


먼길 오신 판다 씨.

치바부터 천 킬로가 넘은 거리를 달려온 짐을 보니 기분이 새롭다.

이삿날 비나 눈이 오면 부자가 된다던데.

눈이 오기 시작한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을 해도 사카이 이삿짐 센터 직원분들.

너무 친절했다. 

첫날부터 계속 기분이 좋다.


600엔짜리 오늘의 정식(日替わり定食)

짐을 모두 받은 후 집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노부부가 운영하는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식당이다.

매일 바뀌는 정식을 부탁했더니 돼지 구이 정식을 가져다주신다.


600엔짜리 정식을 시켰는데 6000엔짜리 맛이 난다.

[이게 홋카이도야 임마!]라고 기선제압을 하는 맛.


2020년 11월 10일


10년 전, 이런 두꺼운 구름 때문에 홋카이도가 좋아졌다.

눈을 뜨니 새로운 하늘이 열려있다.

아.. 삿포로였지.


그래. 이사 왔었다.

그렇게 동경하던 삿포로에 살고 있다.

어제부터.


2020년 11월 20일

아직도 짐 정리 중이다.

짐을 싸는 것보다 푸는데 시간이 더 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바람이나 쐴 겸 스즈키노 거리로 산책을 간다.

걸어서 20분.



이 당시, 삿포로는 코로나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져 버렸다.

아마 이때쯤 북해도 전 지역이 goto 캠페인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와야 했던 곳이 20분 정도 걸어서 올 수 있는 동네로 바뀌었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2020년 11월 23일 


이건 2020년 11월 23일 사진

눈이 내려있다.


삿포로의 날씨는 흔히 등장하는 동화의 겨울 나라에 살고 있는 막내 공주를 닮았다.

태풍과 같은 바람과 함께 블리자드를 뿌려대더니 갑자기 파란 하늘로 바뀐다.

파란 하늘임에도 눈이 내리는 모습도 흔하게 경험할 수 있다.


아참 참고로 이날 이랬던 베란다의 모습은 

이건 2021년 1월 19일 사진

현재 초밥이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초밥의 모습은 사라져 버린 상태이다.


2020년 12월 6일

삿포로라면 스프카레지.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오늘 저녁은 배달을 시키기로 한다.



여행 다니던 시절, 오랜 시간 동안 줄을 서서 먹어야 했던 가게의 음식을 어플로 시켜먹을 수 있다는 점은 

[지금까지 살 수 있어 정말 다행이야.]

라는 안도감을 갖게 해 준다.


현재 삿포로는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모든 유명 가게의 음식을 배달로 시켜먹을 수 있다.

더군다나 일본은 최근 배달앱이 유행이라 많은 서비스들이 경쟁적으로 쿠폰을 뿌려대고 있어 싼 가격으로 배달까지 시킬 수 있으니 더욱 기쁜 요즘이다.


홋카이도 음식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다.

유난 떤다고 흘겨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으니깐.


2020년 12월 19일

곧 크리스마스다.

이사온지 벌써 한 달이 지나버렸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KFC가 있는데 이상하게 이 가게만 배달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트위스터가 먹고 싶을 땐 걸어가서 이렇게 할아버지와 안부인사를 종종 하곤 한다.


2020년 12월 21일

3주 전에 Qoo10에서 주문한 한국 전기장판이 도착했다.

주문한 두 개 중 1개는 하루 만에 고장이 나서 못쓰게 되었지만, 한 개는 여전히 잘 쓰고 있다.

고장만 잘 안 난다면 전기장판은 한국 제품이 지구 최고라고 말하고 싶지만..


2020년 12월 25일

일본은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니다.

일찍 일어나 업무를 시작해서 오후 1시쯤 업무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기분이나 낼 겸 삿포로 팩토리에 나들이를 나왔다.

원래는 사람이 바글바글 했을 시기지만 비교적 한산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더 좋긴 했지만... 팩토리 내에 폐업한 가게들이 종종 보여서 마냥 좋아할 수많은 없었지.


2020년 12월 28일

29일부터 다음 해 1월 3일까지 연말 6 연휴에 들어간다.

우리 회사는 28일부터 연차를 사용해서 12월 26일부터 다음 해 1월 4일까지 10 연휴를 권장하고 있지만 딱히 할 일도 없어서 (평소라면 여행을 갔겠지만.) 난 29일부터 쉬기로 했다.

그래도 연휴 기념으로 샤브샤브 나베를 해 먹기로 한다.


원래 샤브샤브의 메인은 고기라고 생각했지만, 홋카이도의 야채는 상상외로 맛있다.

때마침 쑥갓까지 팔고 있어서 행복한 마음으로 먹기로 한다.


2021년 1월 8일

삿포로는 이미 하얀 눈의 마을로 변해있다.


오늘의 배달 음식은 초밥.

맛이야 뭐.. 말해 뭐해..


2021년 1월 10일


하츠모우데(신년을 맞이해 절이나 신사에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며 소원을 바라는 행위)를 하러 홋카이도 신사에 다녀오기로 한다.

연초나 연말에 가면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시간을 좀 두고 갔는데 그날 마침 성인식이라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일본에 온 이후로 작년까지는 줄곧 아사쿠사의 센소지에서 하츠모우데를 했는데 올해부터는 이곳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소원을 빌고 올해의 운세를 보기 위해 오미쿠지(おみくじ)를 뽑는다.

결과는 대길.

올해는 기대를 해도 되려나.


홋카이도 신사에서 멀지 않은 마루야마 동물원에 들러 커피도 한잔하고 쓸쓸할지도 모르는 동물들에게 인사도 나누고 돌아오기로 한다.


홋카이도의 하늘은 여전히 박력 있어 좋다.



작년 11월 무사히 삿포로로의 이주를 마쳤습니다.


그 당시 때마침 진행되었던 GoTo Travel 캠페인 덕분에 비용도 절반 이하로 절약할 수 있었고, 좋은 관리회사나 이웃 덕분에 평화롭게 그리고 마음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긴급 선언 사태 재선언 등으로 인해 삿포로의 마을 모습이 한산해져 버려 얼핏 보면 쓸쓸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동네입니다.


상상외로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이사 이후 무려 5킬로나 살쪄버려 최근에는 고통의 다이어트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이제는 컨트롤도 해가며 먹을 정도로 적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같은 일본이라 하더라도 미묘하게 다른 문화라던가 생활방식을 겪으면서 또 다른 새로움에 하루하루가 참 즐겁습니다.


게으른 천성으로 인해 이사 이후 지금까지의 생활을 짧은 글과 사진으로 퉁쳐버린 느낌이 있지만 다음 글부터는 삿포로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점을 좀 더 차분하게 써 내릴 수 있도록 정신을 차려보겠습니다.


서울은 많이 추운 모양입니다. 요즘은 좀 많이 누그러진 듯 하지만 항상 몸조심하시면서 따뜻한 겨울 보내시길 바래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D-2] 작별 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