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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 Feb 23. 2022

#20. 하루 in Sapporo

이번엔 삿포로에서 리모트로 근무하는 일상을 적어봅니다.

AM 06:20


참 희한한 일이다.

회사로 출퇴근했던 시절에는 알람을 5분 간격으로 10개 이상을 맞춰놔도 일어나기 힘들었던 아침 기상이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도 눈이 떠지니 말이다.

한국에서 나를 경험했던 지인이나 부모님은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웃기지 말라고 빈정거릴 것이 뻔하다.

내가 나를 봐도 웃기는걸 뭐.


어찌 되었건 한국이었으면 지금 이 시간까지 신사동 설렁탕집이나 분당 야탑역에서 콩나물 해장국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치바 카시와에 살았던 시절, 출퇴근을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던 것과 비교를 한다면 무려 1시간 20분이나 더 잘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이득을 본 기분이다.


AM 06:21


전기장판을 끄고 베드메이킹을 한다.

예전에는 침대에서 나올 때 배게던 이불이던 상관없이 몸만 빠져나와 출근 준비를 했었다.


한 가지 룰을 정했다.

출근을 한다는 의식으로 베드메이킹을 하자.

거창한 베드메이킹이 아닌 베개 정돈과 이불을 바르게 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의식으로 인해 나의 몸은 집에서의 [뒹굴 모드]에서 [출근 모드]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렇게 리모트 근무를 한 이후부터 베드메이킹을 시작했다.


핸드폰과 아이패드와 보온병을 들고 침실에서 나와 업무방으로 향한다.


삿포로에 집을 구할 때 가장 신경 써서 본 부분이 업무방이었다.

나에겐 집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던 기회가 제법 있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매번 실패를 했었다.

여기서 실패란, 업무의 효율성의 실패였다.


이상하게 당시 재택을 했을 때는 업무의 진행은 더뎌졌고, 매일 해야만 하는 일들이 신용카드의 리볼빙 이자처럼 불어나갔다.

또한 업무에 대한 집중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짐을 느꼈고 업무 종료 후 휴식을 취할 때도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은 느낌. 그래서 일을 하면 집중이 안돼서 진행이 되지 않는 느낌. 그래서 좀 쉬려고 하면 (다시 윗줄로)


공간이 분리되지 않았던 게 원인이지는 않을까?


따라서 휴식을 취하는 공간과 업무의 공간을 분리하려 했고, 스스로 출근(업무 시작)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자신만의 상징적인 의식을 만들어내려 했다.


베드 메이킹을 하면서 집에서의 휴식시간은 종료되었음을 나 스스로 인식시키고, 침실의 문을 닫음으로써 이제는 업무의 시작을 인식시키려 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침실에서 업무방으로 공간적인 이동을 인식시켜 업무로의 전환을 뇌에게 주입했다.


우리 회사 삿포로 지부 도착

침실엔 컴퓨터 같은 업무에 필요한 도구가 없어야 하고 컴퓨터가 있더라도 업무 관련 툴은 모두 삭제하자.

업무방엔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는 안 되고 핸드폰은 침실에 놓아두고 알람은 스마트워치로 확인하자.


출근 준비 완료.


AM 06:24


삿포로의 2월의 아침은 춥다.

그래도 치바 카시와 시절의 집보다는 덜 춥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업무 방에 있는 등유 보일러를 켠다.

끼~~~익 거리는 소리와 은은하게 공기 중에 퍼지는 기름 냄새가 퍼진다.


이상하게 주유소 지나갈 때 나는 기름 냄새가 참 좋았다.

석유 냄새를 좋아하면 몸에 기생충이 있다는 거라고 옛날에 할머니께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게 맞는 말이라면 난 구충제를 매일 먹어야 할지도 몰라.


컴퓨터를 켜고 출근 처리를 한다.

우리 회사는 AKASHI라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근태 관리를 한다.

출퇴근 및 휴식시간, 잔업(야근) 처리, 연차 관리를 모두 이곳에서 관리를 한다.


AKASHI의 출퇴근 화면 : 직관적이라 좋다.


그리고 MS Teams로 들어가 내 분보(分報:times 또는 timeline / 해당 내용은 https://brunch.co.kr/@seonology/35 에 설명) 채널로 들어가 출근 보고를 한다.


그리고 대장에게도 메일로 보고를 한다.

사실 이 부분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대장의 하루 일정 관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자발적으로 보내는 메일이다.


그리고 세면실에서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에 물고 다시 책상으로 돌아온다.

양치질을 하며 어제 보고했던 업무 보고를 살펴보며 오늘의 할 일을 정한다.

이 순간은 참 짜릿하다.

재택을 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작은 일탈이다.

뭔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일탈을 한다는 정전기 같은 스릴이 느껴진다.

디지털 노마드니 워케이션이니 하는 번지르르한 말 따위는 다 집어치우고 양치질을 하며 오늘 할 일을 정리하는 모습이야 말로 재택근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입을 헹구고 돌아온 뒤, 항상 실행하는 커멘드를 실행한다.


[게으름과 귀차니즘은 신문명을 창조한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들은 모두 커맨드로 만들어놓았다.

수동으로 작업을 하게 되면 보통 2시간 걸리는 일들을 하나의 커맨드로 만들어놓으면 30분에 처리가 된다.

그리고 그 30분은 나의 시간이 된다.

그리고 그 30분 동안 나는 샤워를 한다.


AM 07:00


샤워를 하고 잠옷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음으로써 완벽한 업무 모드로 전환되었다.

고마운 나의 PC가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잘 수행해주었고, 리포트까지 정리하여 파일로 던져놓고, 화면에는 OK라는 글자를 남겨놓았다.


나는 분보 채널에 완료 보고를 올린다.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난 샤워를 했고, 업무도 했다.


흐뭇한 아빠미소를 지으며 업무방에 한쪽 공간에 마련해 놓은 커피 서버로 가서 커피를 내린다.

이 부분도 동선 낭비를 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만든 공간이다.

커피를 마시려고 업무 방을 나가서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내리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돌아오면 본래의 리듬이 깨져버린다. (쉽게 말해 일하기가 귀찮아지고 딴짓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카페가 좋은 이유는 포인트카드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괜찮은 원두 200그램을 1500엔 정도에 사면 12~3잔 정도를 내려먹을 수 있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원하는 커피를 골라 먹을 수 있으니 재택의 혜택을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원두 그라인더 등은 선물로 받은 거니 패스.

종이 필터와 철망 필터를 모두 사용하는데, 대량으로 내려 먹을 때는 철망, 한잔씩 내려먹을 때는 종이 필터를 사용한다.


아참, 친구 타이라가 어제저녁에 라인으로 연락이 왔었는데 답장을 잊었다.


뭔가 하고 봤더니 삼겹살을 먹은 모양이다.

징기스칸을 먹은 줄 알고 피식-했는데, 자세히 보니 삼겹살이었다.

의도적으로 깻잎과 함께 찍어서 나에게 삼겹살을 먹고 있다고 강하게 어필하려 한 흔적이 보인다.

삼겹살의 기름은 어쩌려고 저기다 구워주는 걸까.


사실 타이라는 작년 여름에 우리 집에 며칠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때, 그래도 한국의 진짜 맛을 느끼게 해 주려고 베란다에서 삼겹살 바비큐를 해서 먹인 적이 있었는데 나름 입맛에 맞았던 모양이다.




이제부터 업무 집중모드다.

일본어 청력 훈련을 위해 일본 아침 프로를 틀어놓고 업무를 시작한다.

일본의 아침프로는 전날 이슈와 밤새 있었던 사건 사고를 다뤄주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것도 파악할 수 있고 발음도 깨끗하기 때문에 BGM으로 틀어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느 정도 듣게 되면 CM송을 똑같이 따라 부르며 흥얼대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홈플러스에 갔을 때 "연두"송을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는 것처럼. (요새는 안 나오려나)


PM 12:15


요일마다 회의의 빈도와 시간에 조금 변경이 있긴 하지만 우리 회사는 매일 팀 회의를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주로 각자 업무를 진행한 내용과 문제점 또는 필요한 사항 등을 공유하는 것이 주가 된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 아이스 브레이크 타임으로 그날의 이슈에 대해서 잡담도 한다.


보통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우리 팀의 팀 미팅은 오전 12시 30분이다.

팀 미팅을 하기 15분 전쯤 나는 지금까지 진행한 업무와 진행 예정에 대한 업무를 요약해서 메일로 보낸다.

일본어가 부족한 내가 말로만 전달하게 되면 혹시나 모를 의사전달 왜곡이 발생할 수 있어서 일단 미리 업무 내용을 보내서 파악하도록 한다.

증거 + 의사소통 원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15분이 되면 업무를 정리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고 전반전 종료를 위한 업무를 정리한다.

그리고 12시 25분이 되면 아이패드를 들고 부엌으로 향한다.


PM 12:30

30분이 되면 방이 열린다.

아이패드에 MS Teams를 열고 방에 들어간다.

하나둘씩 모여들고 가벼운 잡담을 시작한다.

오늘의 주제는 삿포로의 폭설이다.

A : SEON, 살아있어?
SEON : 안타깝게도 아직 생존해 있어.
A : 뉴스에서 삿포로에 눈 때문에 꽤 시끄럽던데
SEON : 창밖을 보니 눈은 꽤 쏟아지는데, Wolt 배달원(우버 이츠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배달의 민족 같은)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게 보여. 괜찮은 거 같아.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화단에 쌓인 눈이 1미터 80에서 2미터가 되었을 뿐이야.
B : 아.. 나는 그곳에서 못 살 것 같아.

팀원들의 각자 업무 보고 순서에서 항상 내가 먼저 발표를 하기 때문에 조금 전 메일을 보낸 내용을 보며 공유를 한다. 이것저것 피드백을 교환한 후 다음 팀원의 차례로 넘어가면 나는 싱크대에서 도마를 꺼낸다.


오늘의 메뉴는 나폴리탄. (파스타면에 각종 야채와 소시지를 넣고 토마토소스나 케첩으로 볶아 먹는 요리)

각 멤버마다 3분 정도의 보고 시간을 갖게 되고 우리 팀은 6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나를 제외하고 15분의 여유가 있다. 이미 잡담과 나의 보고를 통해 5분을 사용했으니 남은 시간은 25분.

6분간 면을 삶는다.

그리고 그 6분간 야채와 소시지를 썰고 소시지를 볶는다.

4번째 팀원이 보고하는 순간 면을 꺼내 볶으면 된다.

5번째 팀원이 보고하기 시작하는 순간까지 소스와 조미료를 넣고 모두 볶는다.

마지막 팀원이 보고할 때 음식을 그릇에 담고 설거지를 한다.

모두 보고 공유 후, 해결해야 할 과제나 공지 등을 설명한다.

평균 25분 정도면 대부분 미팅이 종료된다.


대략 30분 동안 회사에서는 미팅 업무를 수행했고, 집에서는 점심 준비를 수행했다.



PM 01:10

오후 1시 10분쯤 휴식 버튼을 눌러 음식을 식탁으로 들고 가서 식사를 시작한다.

아이패드에서 넷플릭스 연후에 어제 봤던 [결혼 못하는 남자]의 이어 보기 버튼을 누른다.

벌써 7번째 보는 옛날 드라마인데도 참 재밌다.

2기도 나왔지만 1기가 제일 재밌어서 1기에만 손이 간다.


10분에서 15분 정도면 식사가 끝이 난다.

5분 정도 드라마를 보며 소화를 시킨 뒤.


워킹을 한다.

보통 때는 근처 오오도리 공원이나 동네 산책을 하지만 눈이 오는 요즘에는 밖에서 느긋하게 산책이 아닌 등산이 되기 때문에 와실(和室:다다미로 이루어진 방)에 설치해놓은 워킹 패드에서 한다.


홋카이도 음식을 더 먹기 위한 몸부림

속도는 4KM로 설정해두고 20분 정도 걷는다.

창문을 열어두면 제법 괜찮은 풍경이 눈에 들어와서 드라마는 켜놓지만 보통 밖을 보면서 걷는다.


PM01:50

오후에 워킹은 한번 더 할 예정이므로 20분 정도만 걷고 침대로 들어간다.


헤이 구글, 20분 뒤에 깨워줘.


약 15초 만에 잠이 든다.

PM 02:10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두 번째 베드메이킹을 한다.

이때는 업무 모드로 전환하기 위한 부분보다는 잠을 깨기 위해서다.

그리고 업무방에 와서 휴식 종료 버튼을 누르고 업무를 시작한다.


6시간 이상 근무를 하게 되면 AKASHI(근태 관리 서비스)에서 자동으로 휴식 시간을 1시간으로 강제 처리해버리기 때문에 되도록 1시간을 가득 채워 휴식시간으로 사용한다.

우리 회사는 풀 플랙스 타임 제도(Full Flex Time)이므로 출퇴근의 제한(물론 과도한 업무를 방지하기 위해 밤 10시 이후 새벽 6시까지는 업무 금지)도 없지만 휴식시간의 제한(이 또한 법정 휴식시간인 6시간 이상 근무 시 1시간)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 얼만큼을 사용하더라도 특별히 간섭이 없다.

오히려 휴식시간을 많이 사용하라는 권고를 하지, 휴식시간을 아껴 쓰라는 분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전에는 내내 앉아서 업무를 했으니

남은 시간에는 서서 업무를 하자.


회사에서 각 직원마다 한 번씩 지원해주는 재택근무 지원금 (3만 엔)을 받아 구입한 스탠딩 책상은 나의 허리를 지켜줄 거야.

의외로 저 책상은 다림질할 때도 편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중이다.


PM 03:30

하루에 7시간 30분만 근무를 하게 되면 전혀 문제 되는 부분이 없으므로

오늘의 내 퇴근 가능시간은 오후 3시이다.


사실 우리 회사의 근무 시간 룰은 하루 7시간 30분이 아니라 하루 7시간 30분 기준을 그 달의 업무 일수를 곱한 시간이 그 달의 근무 시간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2월의 내가 근무해야 하는 시간은 135시간이다. (7.5 X 18일)

이 제도의 이론상은 9일 동안 15시간씩 일을 하고 나머지는 몽땅 쉬어도 문제는 없다.

업무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는 회사에서도 터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근무 초과 제한 시간을 넘지 않는다던가, 업무 제한 시간에 업무를 진행하지 않는 한 전혀 문제가 없다.


AKASHI에 표시된 업무 현황

극단적으로 8일 동안 15시간씩 일해서 9일을 쉬는 직원은 존재하지는 않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가감하며 관리하는 직원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평일은 30분에서 2시간 정도 (상황에 따라서는 4~5시간도 초과하여 업무를 하긴 하지만) 의식적으로 더 업무를 하고 매주 금요일마다 6시간만 근무하고 퇴근을 한다.

금요일은 대충 7시부터 업무를 시작해서 팀 미팅 종료 시간인 오후 1시에 맞춰서 퇴근을 한다.

그래서 주 5일제가 아닌 주 4.5일제의 기분으로 근무할 수 있다.


따라서 위에서 오늘 내 퇴근 가능시간은 3시라고 했지만 사실은 1시에 해도, 5시에 해도 상관은 없는 것이다.


오늘 나는 3시 30분쯤 퇴근하기로 했다.

최근 들어 릴리즈를 맞추기 위해 꽤 많은 초과시간을 쌓아놓았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한 상태이다.

위에 업무 시간에 표시된 것처럼 플렉스 월간 법정 제한 시간이란 것이 있어서 이번 달은 160시간 이상 업무를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난 이미 초과를 해버려서 이번 달은 남은 업무일 동안 4~5시간씩 밖에 업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저 플렉스 월간 법정 제한을 3개월 연속 초과해버리면 감사기관에서 회사에게 경고를 주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비교적 엄하게 관리하는 편이다.

제한 시간을 넘는 직원들에게는 따로 불러 잔소리를 하기 때문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업무 보고를 적어 메일로 보내고.

분보에 퇴근 보고를 올린다.


이런 경우도 종종 있다.


Dobby is free.


재택근무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퇴근 시간에 차가 밀리거나 연착이 되거나, 또는 열차에 사람이 미어터진다거나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퇴근하고 귀가하는 시간도 대단히 짧다는 점이다.


오후 3시 30분에 퇴근을 했는데.

오후 3시 30분 30초에 귀가를 할 수 있다.


이제 자유다.


잠을 자도 되고.

술을 먹어도 되고.

노래를 불러도 된다.

돌려놨던 세탁물을 널기도 하고.

느닷없이 플레이스테이션을 켜서 게임을 하기도 한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근처 쇼핑몰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한다.

매장 폐점 시간에 대한 걱정도 없어지니 불필요한 스트레스 하나도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보통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워킹을 한다던가 홈트를 한다.

그리고 사촌동생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저녁식사를 하고 모두 정리해도 오후 7시를 넘지 않는다.


또 자유다.

자기 전까지 책을 읽거나.

자격증 준비를 위한 공부를 좀 하거나.

토이 프로젝트를 좀 만지작거리거나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쓸 주제들을 끄적거리기도 한다.


날짜가 바뀌는 밤 12시 정도까지 이것저것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잠이 들어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안녕 오늘.




https://brunch.co.kr/@seonology/34

출퇴근을 했었던 시절의 글을 다시 한번 살펴보니

문득 재택을 하면서의 모습도 글을 적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벌써 이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한 지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앞서 글에도 말했던 것처럼, 이전에도 재택을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실패를 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업무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을 했었었지만 결과적으로 업무의 효율이나 생활 리듬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업무를 하면 할수록 다음날 해야 할 일들이 쌓여만 갔고, 그렇게 되니 업무를 종료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도 계속 신경이 쓰여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었습니다.

집중력은 자꾸 떨어져만 가고 생활 패턴은 얽힐 대로 얽혀버려서 가위로 잘라야만 하는 상태까지 간 적도 잇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에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을 때는 여러 준비를 비교적 꼼꼼히 실행해갔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깨달은 재택근무의 효율적인 관리 방법은.

공간의 분리와 의식의 전환, 그리고 건강 관리였습니다.


출퇴근이 기본이었던 시절 의식 중에 존재하는 인식은, 집은 휴식의 공간이며 회사는 업무의 공간이었습니다.

재택이 되면서 그 인식의 전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공간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

업무 모드와 휴식모드의 전환에 필요한 트리거가 부족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 베드메이킹을 한다던가, 본격적인 업무를 하기 전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작은 의식을 통해 휴식모드는 종료. 업무 모드는 시작이라는 트리거를 의식적으로 만들었으며, 공간의 전환을 통해 그 인식을 확고하게 굳힐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인테리어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재택근무의 효율성을 위해 침실은 회색 계열, 업무 방은 붉은 계열로 명확하게 분리해서 그 인식을 뚜렷하게 하고 싶었고, 업무에서 발생하는 자질구레한 행동들(커피를 마신다던가, 담배를 피운다던가, 물을 가져온다던가)의 동선은 최소화해서 되도록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냥 신경 쓰지 않고 진행했던 반복 업무들도 하나씩 자동화시키며 개선하기 시작했고, 출퇴근 및 그에 따른 기타 행동들이 재택으로 인해 사라짐으로써 줄어든 운동량을 보충하기 위해 쓰지 않고 방치해놨던 방을 정리해서 트레이닝 룸으로 만들어 체력관리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근데 살은 안 빠집니다. 왜죠??!)

다행히 그 작업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으며 2년 가까이 업무의 효율성에 변함이 없이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생활 패턴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건 나이가 들어서도 참 재밌네요.

올해는 재택근무가 아닌 다른 지방에 1~2달 머물면서 업무를 진행해보는 테스트도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워케이션이라는 말을 동의하는 입장은 아니거든요.

제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맞는 건지 아니면 정말 즐거운 개념인지 테스트를 해보면서 느껴보려고 합니다.


최근 글을 연속으로 짧은 기간 동안 써 내려간 것 같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게으름에 묻혀서 또 1년 뒤에나 쓸 것 같아서

생각이 난 김에 적어보려고 슬쩍 애써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쓸데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복받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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