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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May 13. 2021

<철학이 필요한 순간>

“행복지수 세계 1위 덴마크를 매혹한 철학 명강의”

<철학이 필요한 순간>
“행복지수 세계 1위 덴마크를 매혹한 철학 명강의”

                                      해헌(海軒) 강 일 송

오늘은 불안과 허무 등 삶의 공허함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위한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스벤 브링크만(1975~)으로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 알보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심리학과 철학,
사회학은 물론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저서로는 <스탠드펌>, <The Joy of Missing Out>등이 있고 스탠드펌은 덴마크
서점가에서 106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미국, 한국
등에서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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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의미가 있는가

영화감독 우디앨런(1935~)은 2014년 기자회견에서 삶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우주 역시
계속 무너지고 있어 결국에는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의식의 흐름’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로 유명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1842-1910)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말했는데 ‘우주에는 정해진 의미가 없고,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문을 공부해서 우울증에
빠진 것이었다고 합니다.
제임스의 해결책은 실용적이고 간단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따라서
개인이 직접 자기 삶에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었지요. 그는 이 방법을
통해 우울증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합니다.

★ 도구화의 문제

‘도구화’란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들이 다른 것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처럼 취급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예컨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거나 우정을
나눌 때에도 그 관계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여부를 잘 따져야 ‘현명한’ 처신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처럼 우리 사회는 갈수록 많은 일을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고,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도구화가 무엇인지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돈입니다. 돈은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지만 도구로서의 돈은 보편적인 교환수단으로 기능하면서 우리를 도와주지요.
물론, 도구화 자체가 무조건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삶 그 자체를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도구화는 우리 삶에서 정말 의미 있는 것들을 너무 쉽게
가려버릴 수 있습니다.

★ 인문학, 쓸모없음의 쓸모

오늘날 우리는 대개 가장 큰 이익을 주는 수단이나 도구를 원하지요. 달리 말해
가장 쓸모 있는 것을 찾습니다. 여러 나라의 정치인들도 ‘투자 대비 효과’를
교육 정책이든 의료 문제든, 환경 대책이든 대입을 하여 투자한 돈으로 최대치의
효과를 끌어내길 바랍니다.

교육을 예로 살펴볼까요? 투자 대비 최대의 학습 효과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메타분석을 통해 효율성이 증명된 교육 활동만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에 걸친 양육방법과 교육 전통을 전혀 존중하지 않지요. 이에 따라 교사의
역할은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단지 연구자와 관료의
뜻을 그대로 수행하는 통로가 되고 말았지요.

이런 세태는 교육의 수단에 불과한 시험 성적을 목적으로 변질시켜 진짜 목적이
되어야 할 지식을 쌓고 민주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시민을 기르는 일은 관심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거듭 말하건대, 수단을 목적으로 변질시키는 도구화는 현대
사회의 가장 해로운 현상입니다. 이는 단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은 학생을
대량생산하는 시기, 어느 정치학자의 표현대로 ‘경쟁 국가의 병정’을 훈련시켜
유능한 노동력을 키우는 시간으로서만 가치가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고 싶은데, 인문학은 과연 쓸모가 있을까요? 효용성을
중시하는 이 도구화된 시대에 인문학은 온갖 도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역사학이나 연극학, 또는 프랑스문학 같은 것이 국내총생산(GDP)이나 국가
경쟁력 강화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기본적인 전제 가운데 하나는 역설입니다.
그러니까 인문학을 포함해서 많은 학문은 바로 그 쓸모없음 덕택에 쓸모가
있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는 쓸모만
따져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 깊은 의미에서, 더
실존적인 의미에서 쓸모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과 놀이, 사랑, 윤리 같은 가치는 쓸모없을 때, 그러니까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쓰이지 않고 그 자체로 목적일 때 가장 쓸모가 있습니다.

★ 좋은 삶은 행복이 아니라 의미에 달려 있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개인이 느끼는 행복한 경험 같은 것으로 쉽게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의 공허함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들은 아마
사뮈엘 베케트의 유명한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등장인물 에스트라공
처럼 묻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해. (침묵) 행복하니 이제 무얼 할까?” 그러자 블라디미르가 대답
합니다. “고도를 기다려.”

오늘날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들은 삶의 의미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행복이란 ‘주관적 안녕감’이나 ‘자아실현’ 같은 심리학 개념을
토대로 한 주관주의적 감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저의 기본 입장 중
하나는 의미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들을 우리 삶을 지탱하는 실존적
관점이라 부르겠습니다.

철학자 로버트 노직(1938-2002)은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에서 삶의 의미에서
경험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금 살펴보면,
어떤 위대한 과학자가 일종의 ‘경험 기계’를 발명했다고 상상해봅시다. 이 기계는
정교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우리의 중추신경계와 연결된 슈퍼컴퓨터입니다.
이 기계에 사람이 연결이 되면 누구나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개인의 기호에 따라, 축구 팬은 호날두나 메시가 되어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거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나 노벨상을 받는 의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경험은 너무 생생해서 마치 현실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한 번 연결되면 두 번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기계가 있다면 정말 거기에 연결되기를 바라시나요?
저는 절대로 그런 기계에 연결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답을
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행복하려고 하면 종종 고난과 불행에도
부딪혀야 하는데, 경험 기계는 오직 행복만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관적인 행복감은 얻겠지만 의미는 전혀 얻을 수가 없지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된 삶보다는 진짜 삶을, 그러니까 온갖 불확실성과
고난을 겪을 수는 있지만 동시에 의미 있는 활동도 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리라
믿습니다. 의미 있는 삶은 오직 우리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 활동에 참여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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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전 몇 년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스탠드펌>의 저자의 다른 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때도 언급했는데, 저자는 자기계발, 과잉 긍정의 심리학에 반기를
드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판치고 있는 우울, 불안, 허무감 등에 대해서 자기계발서의 조언이 아닌
순수 인문학, 즉 쓸모없음의 쓸모를 가진 본질적 학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중심에는 철학이 있습니다.
현대의 불행한 현상으로 효용을 최우선으로 하는 도구화를 꼽고 있는데, 도구화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도구화로 인해 우리 삶에서 진정 가치있는 것들이 쉽게
가려져서라고 합니다.

저자는 교육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어서 북유럽의 덴마크인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관한 관점에서는 동의할 부분이 많습니다.  너무 투자 대비 효용
성을 중시하다보니 오로지 성적만 추구하여 교육의 본질을 잊고 있다는 것이지요.
인문학은 효용이나 효율성을 놓고 본다면 가장 쓸모가 없는 학문들이지만 이러한
쓸모없음이 가장 쓸모가 있다는 역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술, 놀이, 사랑, 윤리
등은 다른 목적을 위함이 아니라 가 자체가 목적일 때 가장 유용하다는 견해는
지극히 동의합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인 행복에 대해서도 비판의 시각을 보여주는데
좋은 삶은 행복이 아니라 삶의 의미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주관적 안녕감 등
주관적인 감정이 행복감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감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실존적
존재감을 의미 추구를 통해 가져야 옳은 삶이라고 제시합니다.

철학자 로버트 노직의 행복 기계를 예로 들고 있는데,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 모두를 가져야 하는데, 작위적인 쾌락, 만족감만을 추구하는
기계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철학이 등장하는데,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학문이 철학이고 이 철학을 통해
인간은 우리 삶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무엇이 의미있는 삶인지 성찰하도록
돕는다고 하지요.

다시 한번 정리를 하자면, 저자는 삶의 의미를 통해 현대인의 병폐인 불안감, 우울감,
공허함 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며, 그 삶의 의미는 오직 우리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 활동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얻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쓸모없어 보이는 철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시야를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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