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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Nov 13. 2023

MZ 세대와 아트페어 붐: 아트페어에 대한 단상들:

디파인 서울 2023 방문기


대학원 초기 예술 공부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아트 페어가 이렇게 대중적인 행사로 인식되진 않았었다. 아트 페어는 주로 나이가 있는 재력가들의 모임 같은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요즘은 젊은 셀럽들과 인플루언서들의 영향 때문인지, MZ 세대도 방문하고 싶어 하는 지적인 유희의 장처럼 기능하는 듯싶다.





디파인 서울 아트페어 포스터




프리미엄 디자인과 아트페어를 표방한 디파인 서울에 다녀왔다. 부산 아트 페어로 이미 한차례 큰 성공을 이룬 바 있는 아트 부산이 디자인과 파인아트 두 단어를 연결한 개념의 새로운 아트페어를 선보였다. 성수동에서 열린 제1회 ‘디파인 서울 2023’에서는 유명 갤러리나 디자인 스튜디오가 선보이는 다채로운 작가들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었다. 


형태와 색의 울림이 특별했던 츠보타 마사유키


1.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은 2007년 이후 장기적인 침체기를 겪었으나, 코로나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경제 침체가 한창 가속화되던 2021년에는 미술품 총거래액이 9천억 원을 돌파하였고, 올해 5월엔 '한국미술시장 규모 1조원 돌파'라는 유례없던 시대를 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이 휩쓴 뒤 세계경제는 처참히 무너졌지만 국내 미술 시장의 활기는 극도로 달아올랐다. 미술품 거래가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해지고, SNS에는 미술품과 관련된 다양한 포스팅들이 활발히 올라왔다. 나이가 많은 재력가들뿐만 아닌 2030 젊은이들이 떠오르는 소비자층으로 유입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 중심에 아트페어가 있다고 진단한다. 


아트페어는 1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 다양한 갤러리가 한데 모여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형식의 예술계 행사다. 각 갤러리들은 갤러리의 개성을 살린 다채로운 작업을 선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아트페어는 옥션이나 갤러리처럼 예술작품을 거래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물론 훨씬 개방되어 있고, 진입 장벽이 낮아 이제 막 미술품 컬렉터가 되기 시작한 이들도 편안하게 작업을 살펴보고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츠보타 마사유키 2



2.


요즘의 아트 페어가 기존의 아트페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MZ 세대의 방문 비중과 거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예술 시장으로 유입된 데는 소셜 미디어의 발달이 한몫한다. 최근 인플루언서들이 VIP로 초대되어 아트페어에 참석한 사진을 공유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전시장은 점차 인스타에 올릴만한 장소로 (instagrammable spot)가 되어가기 시작한 듯 보인다. 이전에는 와인이나 골프, 공연이나 맛집 포스팅이 자신의 정체성을 특별하게 규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요즘은 '예술'이보다 '있어 보이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한몫하고 있는 듯하다. 예술 관련 행사에 참석하거나 예술품 구매와 관련한 포스팅을 올릴 경우, 올린 이는 스스로를 여행이나 맛집 사진을 올리는 또래들과 차별화할 수 있다. 더불어 자신을 지적이고,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으며, 부유한 사람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니, 아트페어란 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시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지어줄 만한 좋은 도구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해외 갤러리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이우환


3.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신의 저서 ‘자기를 위한 인간’(man for himself)에서 현대인은 자아를 상실한 채, 허망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노동 상품으로 전락했으며, 이에 따라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한다. 정체성의 혼란은 가치관을 왜곡시켜서 가치 없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가치 있는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현대인들이란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자신의 행위가 헛되고 무익한 짓이라는 자괴감을 느끼는 존재다. 그들은 물질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지만, 인간은 무엇이 인간다운 삶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고,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방출하고 활용하는 방법에 대하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트페어의 유행은 젊은 세대가 자신을 규정해 줄 수 있는 가치를 하이에나처럼 사냥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과 부합하다. 여행이나 골프, 맛집에 대한 포스팅은 이미 만연하니 '아트 페어'라는 '지적'이고 '세련된' 가치가 이들의 공허와 결핍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아트페어가 제공하는 ‘미술을 아는 지적인 나’, ‘예술과 함께 하는 나’, ‘미술 작품을 살 수 있는 재력을 갖춘 나’등의 정체성은 유명인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해주는 주요한 기제이자, 자신을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한 욕망까지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아트페어 입장권의 매진이나 작품 완판, 오픈런과 같은 아트페어의 활성화 현상은 미술 자체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가진 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으로 규정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점점 '트렌디' 해지는 아트페어가 장기적으로 대중과 예술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아트페어의 유행은 새로운 소비자들을 미술 시작으로 유입하게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미술이 아닌 다른 것들이 트렌드가 되기 시작할 때 아트페어에 대한 유행은 자연스레 소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렌드는 속도감 있게 바뀌어간다. 무언가가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또 다른 트렌드가 그 자리를 대체할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 유입된 젊은 소비자들과 미술계는 어떤 상생관계를 가지고 발전할 것인가. 


평소 좋아하는 이수경 작가의 도자기 작업과 아이웨이웨이의 사진 작업


4.


사람들은 예술을 소수 엘리트만이 누릴 사치 중 하나이거나 보통 사람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신비로운 그 무엇이라고 여겨왔다. 그리고 이제 이 가치는 트렌드를 주도하는 젊은 세대까지 확산되어 왔다. 하지만 새로운 소비자들이 기존 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예술을 향유하는 목적에 대하여 숨기지 않는다는 점일 테다.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예술 향유의 흐름은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예술은 타인의 얕은 관심과 좋아요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되어 갈 것이며, 이 흐름은 지금보다 더 빠르고 널리  확산될 듯 보인다. (이걸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꼰대 같은 마음일까. 예술의 전당에서는 아이돌은 공연하면 안 된다는 식의 마음일까_) 그렇다면 지금 예술계는 새로운 예술의 향유층으로 등장하고 있는 젊은 세대가 보다 의미 있게 예술을 수용하고 지속적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소비자가 되게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들을 착취(?) 혹은 겨냥하여 단순히  요즘 뜨는 전시 혹은 아트 페어를 기획하기보다는 말이다.



정우원의 작업



에리히 프롬은 위의 저서에서 독립적 자아로 살지 못하고 스스로 행복을 포기해 버리는 현대인의 혼란에 대하여 지적하며, "우리 시대의 도덕적 문제는 자신에 대한 무관심이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기는 예술이 아닌, 보다 깊이 있게 스스로를 사랑하게 하는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 참고 자료

Min-ha Lee "A Study of Generation MZ's Perceptions and Behaviors Regarding Art Fairs", Journal of the Korea Entertainment Industry Association(JKEIA), Vol. 17, No. 2, 28-Februar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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