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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Nov 14. 2022

소란하지 않은 한국화 산책.

일민 미술관,《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리뷰.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

Korean Traditional Paintingin Alter-age

2022.10.28.(Fri)─2023.1.8.(Sun)

Exhibition Hall 1, 2, 3 and Project Room



일민미술관 전시 포스터



내가 졸업한 대학에서는 미술 대학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미술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미술사 과목이 단순 교양이 아닌 전공과목으로 열렸다. 미술사 전공자로 졸업을 하기 위하여는 타 전공과 마찬가지로 일정 수 이상의 미술사 과목을 수강해야 했다. 당시 나는 서양의 현대미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의 현대 미술 과목과 서양미술사 수업을 수강했는데, 서양 미술 수업만으로는 채워야 하는 수업 시수가 부족했던 기억이 난다. 고학년이 되니 전공 학점을 채우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남은 한국 미술 강의를 몰아듣게 되었는데, 돌아보니 한국 미술 관련 수업만 네 개를 듣고 졸업했더라. 


로랑 그라소, <과거를 연구하다>, 2021, 206x130cm


당시 한국화는 지루하게 들리는 단어였다. 모네나 피카소같이 기품있게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워홀이나 세련되지도, 제프 쿤스나 데미안 허스트처럼 대중적인 느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전 세계적으로 K 문화가 뜨는 추세지만, 내가 대학에 있을 때만 해도 한국적인 것은 곧 하품이 나오는, 서양의 예술보다는 덜 세련되고 투박한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당시 '한국화 전공'을 선택하면 늘 따라오는 말이 '뭐 먹고살려고 그걸 전공하느냐'였으니, 뭐 한국화의 위상이 어떠했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물론 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단색화의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으며 한국화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씩 걷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만에서 만난 한국화는 조금 달랐다. 이번 가을 일민에서 기획한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은 한국화에 대한 케케묵은 고정관념을 갈아엎는 단단한 삽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화려하고 때로는 충격적인 설치 미술이 미술계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는 요즈음 '회화'란 임팩트 없는 작업의 형식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회화가 주를 이루는 이번 전시가 과연 흥미로울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전시장을 방문했다. 


전시는 제목과 같이 한국화의 단절, 그리고 연속을 정선 이후부터 전후 한국 화가들의 작업들과 지금 2030 세대 한국화 작가들의 작업을 함께 아우른다. 전시장 1층부터 3층에는 겸재 정선 이후부터 전후 한국화들이 시간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더불어 각각의 한국화 소장품 옆에는 현대의 젊은 한국화 작가들의 세련된 작업들이 어우러져 있다. 뻔하게 시대순으로 작업이 배치하지 않고, 근대 한국화는 시대에 따라 나열하되, 주제와 분위기에 걸맞은 동시대 한국화 작업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오원 장승업, <군안도 Wild Geese>  (ca. 1800s) , ink on paper, 78x277cm.



전시장은 한국화 특유의 고요하고 소란하지 않은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루의 스케줄을 맞춘 이른 저녁 방문하기 좋은 전시였다. 일민에서 만난 한국의 회화들은 전통 한국화 특유의 평온함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넘치는 패기와 탁월한 재치를 엿볼 수 있었다. 


대학에서 스크린으로만 구경하던 한국화 작업들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마주하니, 각 그림이 주는 평온함의 힘과 역동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전시장에는 세월을 머금은 연로한 소장품들만 줄 수 있는 위로와 편안함이 흐르고 있었고, 관람객들은 홀로, 혹은 삼삼오오 모여 조용히 작업의 숲을 거닐었다. 


산정 서세옥, <춤추는 사람들 Dancing People>, 1995, Ink on paper, 139x174cm


직접 만난 근대의 한국화는 서양화나 혹은 중국화와 달리 시끄럽지 않았다. 고즈넉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림들은 고요한 전시장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소란하지 않은 그림들의 틈 사이를 걷는 일은 하루의 일이 끝난 오후에 걸맞은 따뜻한 산책과 같았다. 시대가 변하고 화풍이 바뀌어도, 그리하여 서양의 화풍을 접목하고, 그림의 소재를 다양하게 바꿔보아도 전통 한국화들은 숨을 죽이고 감상하게 하는 면이 있다. 각 그림이 주는 여백과 잘 절제된 아름다움을 멍하니 감상하는 동안,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어지고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지금도 분명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한국적인 그림’을 향한 여정은 조선 이후부터 어지러웠던 일제 식민지 시기, 그리고 해방 이후와 근대적 의미의 국가 건설 이후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불안정한 역사와 시대적인 상황을 지나며 참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변화를 모색하거나 전통을 고수하는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한국화를 계승하고 또 발전시켜왔다. 분명한 것은 숨 가쁘고 치열하게 ‘한국화’를 형성하고자 했던 시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위트 있고, 때로는 역동적인  ‘요즘의 한국화'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민 미술관 3층 전시장 풍경.


역사의 발자국을 찍었던 전통 회화들을 보다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고, 동시대의 '한국화'를 하는 젊은 작가들을 내적으로 응원하게 되는, 일민의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에 방문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추운 겨울 몸도 마음도 따뜻한 산책을 제공해 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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