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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May 13. 2024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낙타와 벼룩

그림 '낙타와 달'


"이 낙타그림이 뭔지 알아? 사막의 유목민들은 밤에 낙타를 나무에 묶어둬. 근데 아침에 끈을 풀어. 그런데 보다시피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나무에 끈이 묶인 밤을 기억하거든. 우리가 지닌 상처들이 기억하듯이. 과거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야."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 대사-



2014년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보았던 이 그림은 오랜 시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치 나도 그때 그곳에 묶여버린 것처럼. 그림은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위의 그림 '낙타와 달'은 배우이자 화가인 송윤아의 작품으로 자그마치 1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후문이다. 문득 노희경 작가와 잘생긴 조인성의 숨은 공로도 있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다.


드라마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계속해서 '평범하고' '안전하게' 소소한 일상을 살아왔다. 보통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후 아이를 낳고 사는 내내 나는 그저 내 인생이 허락된 범위가 딱 그 정도라고 믿었다. 딱히 멋지게 살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됐지.', '나 정도면 됐어.' 라며 나를 토닥이고 독려했다. 이따금씩 알 수 없는 욕망이 치밀어 올랐지만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나는 꾹꾹 눌러 나를 주저앉혔다. 내 삶은 최선이고 나는 더이상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사는 동안 그럴 때가 있으리라. 누굴 위해 사는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뭐 그 따위 고민을 할 여력이 없었기에 그땐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지족상락(知足常樂)이라고 했던가? 스스로 만족하며 즐거워하는 인생이라. 나는 과연 스스로 만족하며 즐거웠던가? 그리고 또 다른 몇 해가 흐른 후 나는 우연히 펼친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속에서 같은 질문을 발견했다.


<상상력 사전> 벼룩 이야기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의 운두는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다음에는 어항의 아가리를 막기 위해서 유리판을 올려놓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올라 유리판에 부딪친다. 그러다가 자꾸 부딪쳐서 아프니까 유리판 바로 밑까지만 올라가도록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히지 않는다. 모두가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오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서-


낙타와 벼룩, 그리고 나


2014년 낙타를 봤던 나와 2021년 벼룩을 발견한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채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낙타 같았다. 유리판에 부딪힐까 스스로에게 한계를 그어놓은 벼룩처럼 무의미한 도약을 반복하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그처럼 오랜 시간 끌어앉혔을까? 이제는 내 삶을 돌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신은 계획대로 되는 삶이 무료한가 보다. 나는 충분히 고민해 보지도 못한 채 또다시 내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간을 맞이했다. 마치 너 왜 아직도 그러고 있니 라며 종국의 간절함을 던져주듯이. 이제는 쳇바퀴에서 벗어날 시간이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지나친다면 나에게 다시 기회가 올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한 때 낙타 또는 벼룩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날의 상처가 그리 만들었든 현재의 내가 그리 묶여있든 결국 우리 자신에게 한계를 그은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아닐까? 앞으로 내 인생은 몇 번의 고비가 더 남았을까? 이 역시 알 수 없다. 나는 어제보다 늙었고 나에게는 내 인생을 통째로 흔들 수 있는 가족이 있다. 그야말로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적어도 앞으로 나는 나에게 한계를 긋지 않을 생각이다. 나도 내가 얼마나 날아오를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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