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신경 끄기의 기술> 을 읽고
일단 책은 얇고 글은 비교적 산만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 중 하나라는 저자는 과연 신경 끄기에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저자의 화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저자의 화법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때때로 꼼짝하지 않는 대상에 강력한 힘을 가하면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니 말이다. 하지만 대상에 따라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험도 존재한다. 나는 그저 그런 화법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그는 삶에서 중요한 가치에 우선순위를 정해 '신경 쓸 것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들을 분류할 것을 제안한다. 다만 흥미로운 건 저자가 '좋은 가치'와 '나쁜 가치'를 친절하게 나눠준다는 사실이다. 가치를 이분법 할 수 있을까? 또한 그는 역효과 법칙을 언급하며 오히려 애쓰는 것이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한편 행복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쁨에서 온다고 역설한다. 많은 철학자들도 역설을 즐겼으니 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글을 읽고 퍼즐을 맞추는 건 독자의 몫이니까.
그는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향해 ‘꺼져’라고 외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문제의 중요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삶은 끊임없이 변수를 만들고 관계는 얽혀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신경 써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그 중 당장 해결해야 할 것과 잠시 내려두어야 할 문제를 구분하는 건 더더욱 어렵고 거의 불가능할 때도 있다. 하지만 숨 넘어갈 정도록 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도 드물다. 그럴때 나는 잠시 내려두는 쪽을 택하는 편이다.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라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를 테니까. 시간적 제한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기한을 정하고 그저 침착하게 생각할 시간을 벌어 본다. 힘을 빼고 충분히 숙고한 결정에는 대체로 후회가 없다.
반대로 그가 언급한 ‘역효과 법칙’에 따르면 끊어내는 것보다는 직시하는 편이 나은 문제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변수는 존재한다. 갑자기 불행이 닥칠 확률만큼 운 좋게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기적이라고 보기에는 꽤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삶의 불확실성은 중립인 셈이니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저 흐르는 대로 저항, 회피 또는 집착하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개입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 ‘충분히’는 매우 모호하지만 선택권이 주어진 가장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1장을 통해서는 신경 끄기의 기술을 연마할 수가 없었다. 저자는 신경 끄기의 역설과 변수를 강조했지만 결국 신경 끄기 같은 건 없다는 진리도 언급했다. 그러다가 다시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향해 ‘꺼져’라고 말하라니. 1장 마지막의 ‘애쓰지 마’라는 굵은 글씨는 내게 그저 성의 없는 위안처럼 느껴졌다.
2장에서는 점점 더 신경 끄기와 멀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성공으로 결정하는 질문은 나는 무엇을 즐기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이며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똥 덩어리와 치욕이 널려있다.’라고 말했다. 저자가 언급한 메탈리카에서 쫓겨난 기타리스트 머스테인과 비틀스 초기 멤버인 드러머 피트 베스트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그는 그 둘의 차이가 추구하는 가치가 달랐다고 강조한다. 세상적인 ‘성공’을 빌미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똥과 치욕을 견뎌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과는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고통을 똥과 치욕이라고 치부하는 순간 추구하는 가치는 손상을 입게 되지 않겠는가?
잠시 최근 읽었던 강신주의 <다 상담 2> 내용 일부를 소개해본다. 강신주의 책 속에서도 신경 끄기(쫄지 말기)는 주된 주제이다. 심지어 나를 지키기 위해서 권위 앞에서는 때때로 거짓말을 하라고도 제안한다. 나쁜 말을 듣기 힘들어하는 마음은 인정욕구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기꺼이 욕을 들을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나를 탐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강신주는 소위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 쓸모는 그저 타인을 위한 가치라고 주장하며 차라리 쓸모없어도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모두 특별하다는 말에는 모순이 있다. 이 말을 ‘유일하다’로 바꿔보면 어떨까? 과거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겨우 대학 총장 앞에서 쫄았던 기억 (겨우라는 단어는 내가 그 당시 대학총장의 권위를 지나치게 높게 여겼던 것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다), 노무현 대통령 경제인 방문 만찬 때 통역단의 일원이었던 경험, 호텔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근엄한 임원급 주재원들의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들. 그저 다름의 언저리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비로소 지구상에 유일한 나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최근 내 삶에 들어온 장자의 말을 소개하고 싶다. 为善无近名, 为恶无近刑. 선에 가깝되 명성에 가까워서는 안 되고 악을 행하더라도 형벌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삶에는 분명 옳고 그름도 존재하지만 사실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이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이 아닌 선에 조금 더 가깝거나 악에 가까운 것. 인간의 삶은 그저 그 사이에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걸지도 모른다. 모두는 아니어도 누구나 말이다. 극단을 피하는 방법은 강박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로울수록 좋다. 그저 흐르는 대로 관찰하고 행동한다면 어떤 지점에서든 조금 더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가까워질 것이다. 선 자체는 결코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반문하는 형식으로 시선을 끌고 때때로-자주- 확신에 찬 명령조로 우리의 불안을 소거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장들은 얽혀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마치 엉터리 사주를 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분명한 건 저자는 나를 설득하거나 위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차라리 신경을 끄고 덜어낸 순간을 예찬하는 방식으로 ‘순간이어 멈춰라 너 참 아름답구나 (괴테 <파우스트>)’라고 말하는 편이 내게는 더 끌렸으리라.
한편 무한 긍정의 시대는 그저 '현상(트렌드)'이었다고 생각한다. 절대 긍정의 시대는 과거에 없었다. 삶에서 긍정과 부정은 늘 밀땅을 해 왔고 우린 그저 판단하고 선택하여 행동했을 뿐이다.
결국 그 어떤 것도 자신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이런 자신감 넘치는 화법은 나에게 설득력이 없고 오히려 위험하게 보인다. 저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수많은 글을 읽었겠지만 독자는 그저 요약본을 본 셈이니 효과가 어떠할까? 글을 잘 이해하고 멋진 퍼즐을 맞출 수 있는 독자가 많다면 몰라도. 그런 점에서 나는 자기계발서적을 피하는 편이고 심지어 마크 맨슨도 '자기계발서적은 쓰레기'라고 했으니 그도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않을까?
나는 종종 중요한 일을 앞두고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곤 한다.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이 혼동되는 순간이다. 그럴 때마다 깊은 호흡으로 불안을 뱉어내곤 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몸에 힘을 빼는 일은 무엇보다도 내게 중요하다. 한창나이 때는 뭐든 분명해야 했던 나였는데 결국 인간은 끊임없이 수련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다행히 수련이란 몸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닌 오히려 힘을 빼는 일이니 누구든 맘만 먹으면 해낼 수 있다. 마치 긴장한 손목에는 팔찌를 끼울 수 없는 것처럼 그저 힘을 쭉 빼면 된다.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되새겨본다. 아쉬운 점은 책 속에 저자만의 고유한 생각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디테일하게 지적하면, 저자는 심리학과 철학 등 수많은 인용을 사용했지만 참고서적 공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때때로 참고서적에서 책을 골라 읽는 나로선 당혹스러웠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사회 초년생이라면 이 책이 조금 더 신선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 내에서 풍부한 경험치가 있을 나이에는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적이 자극이 되긴 어렵지 않을까? 마치 수차례 엄마 아빠의 잔소리를 들으며 안전감을 획득했지만 돌아서면 잊곤 하는 아이처럼 잔소리의 효과가 다했을 수도 있다. 자기계발서적의 애정 어린 잔소리를 지속적으로 듣기에는 실천과 경험을 쌓을 시간이 부족하니 나도 이제 그만 책을 내려놔야겠다.
이 책을 음식점과 비유해 봤다. 적당히 조미료를 써서 제대로 단짠인 메뉴가 고루고루 준비되어 있는 패스트푸드점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배고플 때 급히 챙겨 먹었고 맛도 있었는데 돌아서니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나는. 건강을 생각해야 할 나이에는 그저 어울리지 않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조금은 차가운 나의 감상문이 누군가에게는 조금 다른 메시지를 나눠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나는 신경 끄기의 기술을 정확히 반 정도 읽고 나서 이 글을 썼고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아 굳이 수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자기계발서적에는 대체로 매우 야박한 점수를 주는 편인 것 같다. 베스트셀러를 제대로 씹고 나니 강신주의 쫄지마 라는 한 마디가 들려온다. 이 정도면 내가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충분히 성의껏 나열해 본 것이리라.
저자 Mark Manson
1984년 텍사스 주 출생. 보스턴 대학교를 졸업했다. 2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지닌,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 중 하나다. 각종 매체에 지속적으로 칼럼을 기고했으며, 날카로운 통찰력과 직설적인 문체로「CNN」,「뉴욕타임스」,「타임」,「포브스」,「월스트리트저널」등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Infinity Squared Media LLC를 설립하여 운영 중이다.
그가 처음부터 성공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학창 시절 마약 문제로 퇴학까지 당했던 문제아였으며,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한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해 친구네 집 소파를 전전하던 백수였다. 뚜렷한 삶의 목표나 확고한 가치관도 없이 그저 되는대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지금 그는 180도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그의 미디어 파워는 메이저 언론에 버금갈 정도이며, 그에게서 인생의 답을 찾으려 하는 대중들의 이메일이 하루에도 수천 통씩 쇄도한다.
현재 50개국 이상의 나라를 바쁘게 누비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중요한 가치를 찾는 방법을 설파하고 있다. 삶의 문제를 파고들어 놀라운 통찰력을 제시하는 마크의 글은,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뒤통수를 맞은 듯 생각을 깊이 가다듬게 만든다. 수많은 선택지와 기회비용 앞에서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뜻밖의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신경 끄기의 기술』을 집필했다.
책 <신경 끄기의 기술> 목차
프롤로그: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고 모두 지워버려
1장: 애쓰지 말고 노력하지 말고 신경 쓰지 말고
2장 해피엔딩이란 동화에나 나오는 거야
3장: 왜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해?
4장: 고통을 피하는 법은 없어
5장: 선택을 했으면 책임도 져야지
6장: 넌 틀렸어, 물론 나도 틀렸고
7장: 실패했다고 괴로워하지 마
8장: 거절은 인생의 기술이야 9장: 결국 우린 다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