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za Jul 18. 2023

포기할 수 있는 용기

프롤로그

‘공무원 준비를 하셨나 봐요?’ 


공시를 그만두고 취업 면접에서 받았던 첫 질문이다. 분명 예상했던 질문이었는데, 막상 공시에 대해서 말하려니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준비했었는데, 잘 안됐어요.’ 이 한마디를 하기가 어찌나 어렵던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내 입으로 공시에 떨어졌다는 말을 내뱉는 건 스스로가 시험에 불합격한 인생 낙오자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취업에 도전한 이유도 취업에 성공하면 공시에 실패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공시라는 단어를 지우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


대한민국 청년층 10명 중 8명이 공시를 준비한다. 합격률은 1.8% 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합격하는 사람보다 불합격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아빠는 시험에 떨어진 나에게 “합격자보다 불합격자가 많은 시험에 떨어진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합격하지 못한 내게 남은 것은 후회와 낮아진 자존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시험에 투자한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후회감이 밀려왔고, 누가 나의 근황을 물어볼까 두려워 친구를 만나지도 않는 생활이 계속되면서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다. 심지어 카톡까지 지우며 사회와 단절을 선택했다.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이룬 건 없고 나 자신을 볼 때 마다 우울했다. 그래서 취업에 매달렸던 것 같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볼 때면 취업만이 공시의 흔적을 지워낼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막막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5년 전 취업을 했다. 취업을 하면 공시 실패의 기억은 자연스레 잊힐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막상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보면 일이 매끄럽게 진행이 잘 안됐다. 신입사원인 내가 능숙하게 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업무와 피드백, 어찌 보면 직장생활의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겠지만 나는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과거의 실패 경험이 자주 떠올랐다. 공시도 떨어지니까 이런 것도 못하나?’ 이런 자괴감이 들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결국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 문제다’라는 결론에 도착했다. 그렇게 공시는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되어 날 괴롭혔다.


이제 진심으로 공시와 이별을 하고 싶다. 더는 상처 받은 기억을 안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받았다고 느낀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혀보기로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공시를 통해서 정말 나는 배운 게 아무것도 없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많은 생각 끝에 나는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배운 게 있긴 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 오늘보다 나아진 내일이 중요하다는 마음가짐. 그런 좋은 습관들을 만들었다. 지금도 좋은 습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공시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꼭 공시의 기억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에 있다.


사실 공시를 준비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하루하루가 작은 노력의 점을 찍는 날들이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진 않았지만, 목표를 위해 작은 노력을 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천천히 꾸준하게 쌓아온 점들은 시간이 흘러 선이 되었다. 그 작은 선들이 길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닐까. 공시를 실패해서 받은 상처들이 쉽게 지워질 수 없겠지만, 지금 다시 내가 찍어가는 점들이 모여 미래의 나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정해진 답이 없는 삶이라면, 이 책이 당신의 삶과는 다른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 더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