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5번 in C minor, Op.67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준비하며 공부한 나름의 정보를 담은 글입니다.
음악 계열 전공자가 아니기에 글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바로 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씀해주세요.
같이 보면 좋은 것 - 구글, "베토벤 탄생 245주년 기념 로고"!
https://www.google.com/doodles/celebrating-ludwig-van-beethovens-245th-year
따다다단-
운명 교향곡은 몰라도 들으면 다 안다는 그 멜로디, 낯익고 익숙하다.
베토벤 5번 교향곡을 연주한 지휘자 중 가장 마음에 든던 영상을 먼저 달아두겠다.
West-Eastern Divan Orchestra에서 연주되었으며 지휘자는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연주 장소 및 일시: Royal Albert Hall, 23 July 2012 ///// https://youtu.be/jv2WJMVPQi8
다니엘 바렌보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바렌보임바렌보임바렌보임바람둥이) 그건 다음으로..!
이 지휘자는 정명훈과는 대조되게 관악기를 많이 배치해뒀는데, 덕분에 웅장함의 대명사인 5번 심포니의 매력을 아주 잘 살렸다. (정명훈은 현악을 많이 사용해 상대적으로 더 섬세한 면모가 있으니 그것이 더 좋은 사람들은 정명훈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연주 난이도는 전공자급. 전공자 오케스트라에서 단골로 연주되는 곡 중 하나다. 일반인에게도 아주 잘 알려져있어, 음악적 해석이 수준 이하여도 좋게 들리는 마법의 곡이다.
안단테로 느리고 평온한 2악장은 첼로에게 아주 어려운 난이도로 손꼽힌다. 피콜로는 4악장에만 등장해 고조된 분위기를 화려한 스케일로 치장해주는데, 실수를 하면 아주 화끈하게 틀려먹게 되므로 연주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피콜로나 첼로 뿐만 아니라 파트 대부분 옥타브를 이리저리 옮겨다녀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다.
사실 베토벤 5번 교향곡을 두고 "운명 교향곡"이라고 이름 붙여서 부르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두 나라밖에 없다. 베토벤이 "이 곡의 제목은 <운명>이다!"라고 창시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학자가 안톤 쉰들러의 말을 인용하여 붙인 이름이다. 쉰들러가 "그는 [작품의] 깊이에 다가갈 수 있는 실마리를 주었는데, 하루는 그가 필자가 바라보는 가운데 1악장의 첫머리를 가리키며 그의 작품의 악상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 라고 저서에 썼던 것.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는 같은 주제에 대해 "그 작은 음형은 [베토벤이] 빈의 프라터 공원을 지날 때 들은 노랑촉새의 노랫소리에서 나왔다."라고 표현했는데, 전문가들은 쉰들러보다 체르니를 더 신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이름이 붙여진다면 "노랑촉새의 노래"라고 붙여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5번 교향곡은 노랑촉새와 문을 두드리는 운명의 소리 가운데 조금 더 극적인 이야기가 이름으로 선택되었다.
베토벤의 풀네임은 루드비히 판 베토벤이며, 독일 라인 강변의 작은 도시 본에서 태어났다. 베토벤의 아버지가 모짜르트의 집안처럼 궁정 가수였는데, 말이 궁정 가수지 술주정뱅에 불과했다. 광포한 성질에 치맛바람까지 겹친 아버지는 아들이 일찍이 음악에 재능을 보이자 제2의 모짜르트를 만들겠다며 혹독한 훈련을 시켰는데, 그 때문에 베토벤은 어린 시절을 매우 힘들게 보냈다. 극성맞은 아버지의 거침없는 압박 덕분인지 6세(실제로는 8세-베토벤의 아버지가 작정하고 나이를 낮춘 것으로 전해진다)에 불과한 나이로 베토벤은 데뷔를 할 수 있었다. 광포한 성질에 치맛바람까지 겹친 아버지는 데뷔에 성공한 베토벤을 데리고 "(모짜르트 같은) 어린 천재가 등장했다"며 연주 여행을 떠났다.
연주 여행을 거치며 만난 다양한 인연을 겪으며 연주가의 길을 걷던 베토벤은 기회를 얻어 그가 가장 존경해마지않던 하이든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하이든은 연주자로써는 굉장했지만 스승으로써는 그다지 열의를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당시 하이든은 이미 부와 명성을 다 얻고 여유롭게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었을 때이므로 후계를 키울 생각은 잘 안했을 것 같긴 하다). 베토벤은 하이든이 제대로 가르침을 자세하고 섬세하게 주지 않는다며 크게 실망했다. 열성이 없는 스승이라며 베토벤은 가끔 이전 스승에게 냈던 숙제를 그대로 배껴서 다시 제출해버리는 무례를 저지르곤 했는데, 이 때문에 하이든도 베토벤을 "아주 못돼처먹은 놈"이라며 좋게 보지 않았다. 결국 베토벤은 더 이상 그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1년 만에 사제지간을 청산했다.
베토벤이 실제로 모짜르트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현재는 이것이 낭설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당시 모짜르트는 오페라 돈지오반니를 작곡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무명의 음악가 베토벤을 굳이 만나 가르침을 주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1787년 베토벤의 1차 빈 여행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으며, 모짜르트 전기작가인 오토 얀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한 이야기이므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써는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며 <비창>, 1번 교향곡 등 활력 넘치는 작품들을 써내려갔다.
한참 전성기를 누리던 그에게 갑작스러운 귓병이 찾아왔다. 귓병으로 인해 청력이 점점 상실해갔는데, 음악가에게 있어서 청력은 생명과도 같았으므로 그에게는 그 귓병이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인생의 전성기를 달리다가 단번에 인생의 나락까지 추락한다는 절망감에 빠진 그는 결국 유서(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썼는데, 유서를 쓰며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생각을 바꿔 자살 시도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5번 교향곡 등 걸작 몇 편을 주르륵 써내려갔는데, 9번 교향곡을 쓸 때 쯤에는 이미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9번 교향곡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청중의 환호가 들리지 않아 모르고 있다가, 테너 가수가 그를 돌려세워 객석을 바라보게 하자 그때서야 환호를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의 성격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것은 베토벤에 대한 일생을 정리할 때 제대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다 정리하긴 조금 힘들 것 같다. 5번 교향곡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따로 글을 다시 써보도록 하겠다.
5번 교향곡은 총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알레그로 콘 브리오 - 1악장
안단테 콘 모토 - 2악장
알레그로 - 3악장
알레그로-프레스토 - 4악장
3악장과 4악장은 연결되어 있어 보통 쭈욱 연주되곤 한다. (아마 우리도 그렇게 할 듯...)
수준 높은 연주를 위해서는 각자의 감성을 담고 지휘자가 다듬어주어야겠지만 일단 실력부터 제대로 갖추어져야 감성과 생각을 담을 수 있으리라. 3옥타브부터 1옥타브까지 자유자재로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는 것도 모자라 세기와 감정을 담아야 하는 탓인지 이 곡만 연주하고나면 너무 배가 고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