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꿈꾸는 오래된 미래속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10년 전인 1904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이 있다.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Pauvre et Douce Coree)”
프랑스의 여행가 조르주 뒤크로는 1901년 12월 한양을 방문하고 본국에 돌아가 조선 여행기를 남겼다.
“끝없이 늘어선 초가들과 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 웅장한 성문. 여기가 바로 한양이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얼굴 표정은 온화하며 눈은 꿈을 꾸는 듯하고 행동에는 무사태평과 관용이 엿보인다. 한민족들은 항상 눈을 맞은 듯 한 그들의 아름다운 의관을 고수하고 있다. 갓을 쓰지 않은 조선인은 상상할 수도 없다.... 중략...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집과 따뜻한 화로, 자신만의 삶이 있다. 소박한 일상 속 넘치는 행복,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조선 사람들은 행복하다.... 중략... 친절하고 우아한, 가난하지만 꿈을 꾸는 이 민족에게 악한 점이라고는 없다. 그저 조상들처럼 평화로운 삶을 살길 바라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구름이 지나간다.”
이것이 불과 100여 년 전 우리 민족의 모습이라니...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오늘날의 서울거리, 그곳을 거니는 이들에게서 과연 조르주 튀크로가 보았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나라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이 오히려 100여 년 전 우리 민족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친절하고 우아한, 가난하지만 꿈을 꾸는, 악한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민족.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 부탄을 방문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느꼈던 것들이 조르주 튀크로가 우리 민족에게 느꼈던 전부였다.
하지만 신기함도 잠시 그의 책 제목이 마음에 걸린다.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 당시 주변국과 서구 열강에 압박에 의해 신음하던 조선의 신세를 한탄하는 속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를 적으며 담배연기를 길게 뿜었을 그의 모습이 그려져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수차례 부탄을 방문하면서 혹은 부탄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그들의 처지와 변화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느껴지던 답답함에 내쉬던 한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북쪽으로는 중국령과 남쪽으로는 인도령과 마주하고 있는 히말라야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남쪽의 좁고 긴 평야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악지대에 속한다. 가장 낮은 해발고도 100m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는 7,200m에 이르는 험준한 산악지대가 동서로는 350km, 남북 150km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38,394㎢)에 분포되어 있다.
따라서 좁은 국토이지만 변화무쌍한 기후 분포를 보인다. 남부 평원지대는 여름에는 덥고 습윤하며 겨울에는 시원하여 울창한 숲이 우거진 아열대성 기후를 보인다. 중동부의 언덕과 계곡은 서부에 비해 온화하고 건조한 편으로 여름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는 서늘하다. 약 1,500m에서 3,500m의 고도에 이르는 계곡들이 연속적으로 위치해 있어 히말라야의 중심부와는 단절되어 있으며 청송과 침엽수, 오크나무, 목련 단풍나무, 자작나무와 철쭉 등이 울창을 원시림을 이루는 온대기후를 보인다. 북부지방은 대부분 해발 7,000m를 상회하는 고산지대로 일 년 내내 만년설이 보인다. 부탄 내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Gangkar Puensum(7,564m)이다.
이처럼 만만치 않은 지리적 요건 탓에 외국과의 교류는 물론이고 부탄 내에서의 교류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길, 자동차, 전기, 전화, 우편제도로부터 고립된 삶을 살았던 부탄에 근현대적인 발전이 시작된 것은 1961년부터였다. 시작은 늦었지만 지난 50여 년간 부탄은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오늘날 부탄 전역은 물론 주변국으로 연결된 도로망을 갖추었고, 1999년에는 TV와 인터넷이 개통되었고, 2003년에는 휴대전화가 보급되는 등 의사소통의 현대화를 이루었으며 풍부한 전력을 확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자부심을 잃지 않았고,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달리 오히려 자신들만의 삶의 가치를 완전무결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한국전쟁이 나라전체를 휩쓸어 간 뒤 최빈국의 위치에서 국민모두의 바램은 오로지 경제발전이었다. 수많은 희생을 통해 세계가 놀랄 정도의 국가 발전을 이뤄냈다. 그러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100년 전 프랑스인의 눈에 비친 순박하고 행복이 넘치는 어떤 사람들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부탄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아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티베트에 갔을 때, 거의 매일을 울고 다녔다. 워낙 감정적이고 눈물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바람에 찢어질 듯 펄럭이는 따르촉마저도 나라를 빼앗긴 설움으로 울부짖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분명 같은 티베트 문화권인데도 부탄의 그것은 마치 까르르 웃는 어린아이의 천진한 얼굴 같은 느낌이었다. 이념이나 종교문제, 혹은 빈부의 격차와 정치적 갈등으로 신음하던 다른 불교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바로 국민의 행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부탄 정부의 노력의 결과물이다. 부탄 정부는 1976년 제4대 국왕인 지그메 싱게 왕축이 국민 총 행복, GNH(National Gross Happiness)를 공표한 이래 ‘성장’이 아닌 ‘행복’을 가장 중요한 국가 목표로 삼고 있다.
부탄 국민행복지수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지그메 틴리 전 총리는 “나라의 발전과 성장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져야만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시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년 부탄 국민 8,000명을 대상으로 국민의 행복을 실질적으로 측정하는 부탄연구센터(Center for Bhutan Studies)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불교의 가르침이 견고하게 깔려있다. 인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불교의 가르침에 따른 행복을 추구하는 지구 상의 다른 나라들과는 조금 다른 성장방식을 선택한 작지만 위대한 나라. 우리 모두가 꿈꾸는 오래된 미래, 부탄을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