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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진 May 04. 2024

마흔 둘

각자의 것

각자의 심연을 느낄 순 없다.

그럼에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 요소가 많았기 떄문이 아닐까


물론 이전의 10대나 20대때처럼 우울하고

우울해야 할 거 같고, 공허해야 할 거 같고는 마흔 둘엔 아니지만


나밖에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고 깊은 곳은 좀 더 간결하고 짙다는 느낌이다.

마음의 깊은 곳이 짙고 간결한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음 또한 간결하다.


발에 흙이 닿을 때,

마당의 꽃잎 위 이슬에 아침햇살이 비칠 때

창을 통해 깊이 들어오는 오후 4시의 주황빛 햇살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그림

꽃을 잡아 본능적으로 작업을 할 때

텍스트를 통한 배움이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타자를 비출 때

뽀록뽀록 소리내는 오미자를 탄 탄산수를 볼 때

공장의 굴뚝넘어 저녁 하늘의 그라데이션을 볼 때

한 없이 가깝다가도 서로의 에고로 절대 좁혀질 수 없는 거리를 가진 부부라 하더라도

잠든 숨결을 느끼거나, 그의 살 냄새를 맡을 때처럼


작은 것들에 기대어 겨우 지탱해오던 목숨이

마흔 둘까지 왔다.


수많은 치열함을 치르면서 이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게

감격이고,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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