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소영 코치 Aug 04. 2022

부산 한 달 살기가 나에게 준 것들.

따뜻한 남쪽 동네로

“지난 일 년 동안 행복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코칭의 질문으로도 많이 쓰였던 이 질문을 코치인 내가 대답하지 못했다.  2021년은 나에게 그런 해였다. 지독하게 아팠고, 일도 나를 힘들게 했다. 여러가지 이유들로 건강은 안 좋아졌고,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힘들고 신이 나지도 않았던.  


나 스스로도 이러한 나의 상태는 충격이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별명이 조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균 이상으로 긍정적이었던 ENFP 내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 이러저러한 우연과 우연의 레이어링으로 부산 한달 살기를 결정했다. 평생을 살면서 부산이라고는 2박3일씩 3번 가본 것이 다였던, 부산에 관심이 1도 없던 평범한 서울 거주자였다.

부산에 한달 살기를 하러 내려가요. 란 말을 하자마자 듣는 이야기는 “왜 제주도가 아니고? 부산이에요?” 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부산을 살면서도 일이 있을 때마다 서울에 와야 하는 상황이기에 KTX가 있어야 했고(비행기 결항으로 서울에 못가면 내  코치 커리어는 끝이다.) 멀지않은 곳에 스타벅스가 있었으면 했을 뿐이다.

방에서 보일러를 틀어도 으실으실한 서울 추위를 도망가고 싶었을 마음에 서울보다 따뜻한 남쪽이면 어디든 좋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살고 싶어 했던 여행지들은 ' 시드니, 바르셀로나, LA, 발리' 등 따뜻한 바닷가였다.


그래! 인생 어떻게 되겠어? 일단 가보는 거야.


그리고 내려가기 2주일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입원으로 인해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끝까지 고민이 많았는데 기적적으로 부산 내려가야 하는 전날 의사 선생님에게 “이제 큰 걱정 안 해도 되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도 몇 달 전에 준비한 것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적극적으로 짐을 싸게 해주셨다. 서울 집에서 부랴부랴 짐을 싸 자동차 뒷자석에 꾸겨 넣었다. 한달만 살고 올 것인데 이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다니. 물론, 내 욕심으로 넣은 스피커도 한 몫 했지만.


이렇게 나는 (중간에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 온 것을 빼고 )거의 보름 정도 부산에 살고 있는 중이다.


1.     생각보다 부산의 겨울은 무척 따뜻하다.

“서울 사람들은 왜 까만 롱 패딩이 유행이에요? 색도 다 까맣고, 너무 두껍고 길고 안예쁜데 왜 유행이에요? 저게 이쁜거에요? 이상하네~ 왜 입지?”

 란 질문을 받았다.  

그렇다. 부산은 패딩을 “패션”의 용도로만 입는다. 얼음이 얼면 엄청나게 추운 날이라고 난리가 난다. 아무리 추워도 낮에는 영상이다. 장갑을 껴야한다는 생각도 없고 아, 오늘 좀 춥네 하면 목도리는 챙길까 말까. 여기에서 영하로 떨어지면 난리난다.

"와 오늘 물이 얼었네 얼었어. 이렇게 추워 어찌사나?" 라는 편의점 사장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행복한 웃음이 나왔다. 와 진짜 춥네요. 하하하


(물론) 이것을 그냥 말로만 알고 있었는데 내가 겪고 보니 “너어어무 좋다!!”는 것. 추위에 너무 약해서 서울에서는 겨울만 되면  체력이 급하강하며 아무 곳도 안가고 집안에서 보일러를 마구 돌리던 나로써는 이런 천국이 없다.


장갑과 패딩이 필요 없는 곳. 하루에 1시간 정도만 보일러 돌리면 충분한 곳.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놓고 깜빡할 수 있는 곳. 단 한번도 으슬으슬하구나. 를 느끼지 않았던 해운대.

(본 사진은 2022년 모래축제 사진입니다.) 



2.     운동이 하고 싶다. 너무나!

겨울이어도 춥지 않으니 많이 움직인다. 오자마자 운동하겠다고 동백섬까지 산책을 했는데 롱패딩을 입고 앞 지퍼는 연 채 걸었는데 – 땀이나더라는..!  서울에 갔다 오면서 롱패딩은 벗어두고, 서울”패션”용으로 샀던 좀 더 가볍고 짧은 패딩을 가지고 내려왔다. (이걸 입어도 역시 난 ‘패딩’입은 서울 여자지만) 아버지 간호 때 쓰레빠 신고 뛰어다니다 얻은 ‘족저근막염”만 아니었다면 하루에 2만보씩 걸었을 듯이다. 사실, 처음 부산에 내려오자 마자 만 오천보씩 걷다가 발이 난리가 났고 결국 난 의사의 지시대로  바다만 보고 있는 중이다.


5시에 6시가 넘어가는 일몰의 시간,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고 가벼운 옷을 입고 뛰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속에는 "뛰고 싶다"는 열망이 마그마처럼 분출하는 중이다.

바람이 좀 센 날은 새벽에 나오면 서핑연습을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여성분도 있다. 멋있었다. (사진은 남성분) 



점점 여름에도 해운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다이어트의 의지를 가지게 된다. 이 곳은 여름이면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스팟이다. 수영복 입고 스벅가고, 편의점가고 집에 들어오는 곳이다. 나는 정말


1월에도 맨발걷기가 가능한 곳


3.     건강한 식재료

역시나 해산물이다. 회는 물론이고 해삼, 멍게, 낙지 같은 해산물이 너무 많다. 복국, 대구탕, 낙꼽새 등등 해산물 베이스 맛집들의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분명히 과식을 했어도 속이 불쾌하게 배부르지 않다. 건강한 돼지가 되는 느낌이다. 매일 바다 보며 걷고, 좋은 음식 먹고 기분 좋고, 점점 더 건강해지고 있다. 배민으로 시킨 1인용 회의 퀄리티는 어찌나 좋은지, 마감시간 전에 이마트에 가서 사온 떨이 회와 숙회도 어찌나 좋은지. 점점 퀄리티가 좋은  Raw food 에 내 몸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4.     Motivation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부산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싶고, 동백섬까지 조깅하는 아침을 만들고 싶고, 여름에 집에서 수영복만 입고 해운대 바닷가 가고 싶고,


무엇보다도 돈 벌고 싶어졌다.  부산에서 사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산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다.


해운대 금사빠.



 p.s.

이 글은 2022년 1월 한달살기 중에 썼던 글입니다.  

그리고 사고 싶던 것을 샀고, 이렇게 전 해운대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해운대에서 동시에 살고 있습니다. (brunch.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