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진작할 걸 그랬어> & 북바이북 북토크
인생이 어떻게 풀려가든, 그 길에서 행복을 찾아내겠다.
김소영 전 아나운서이자 당인리책발전소 책방 주인인 <진작할 걸 그랬어>를 읽고, 북바이북에서 하는 북토크에도 다녀왔다. 퇴근 후 한시간 반의 북토크까지 듣고나니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좋은 에너지를 받고 왔다. 책의 서문에서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나 역시 조금은 다짐을 했더랬다. 인생이 어떻게 풀려가든, 그 길에서 행복을 찾아내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곳을 떠났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곳으로 스스로 발을 뻗었다. 훗날 너무 빠른 포기였다고, 조금 더 참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면 어떡하지. 복잡한 생각의 잔재가 여전히 머릿속에 엉켜 있지만 이제 돌아갈 수 없다. 조금 더 자유로워지자. 책방 여행을 앞둔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인생이 어떻게 풀려가든, 그 길에서 행복을 찾아내겠다고.
솔직히 그녀가 부러웠다. 나 역시 한 때는 언론사에서 일하고 싶었고(아나운서는 아니지만), 책을 읽는 남자가 이상형이고(<신혼일기> 속 부부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더랬다), 동네 책방 가는 것도 좋아해 책방을 내고싶다는 생각도 해봤고, 또 글도 쓰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아나운서가, 그것도 언론인을 꿈꾼다면 모두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MBC (지금은 바뀌었을지도) 의 메인 뉴스 앵커가 되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연애에 대한 고민 없이 일찍 좋은 반려자를 만났고, 퇴사 후에도 책방과 책이 인기를 얻고 있으니. 솔직히 승승장구 아닌가!
하지만 북토크를 들으며 부러운 마음은 사그라들고, 배움과 격려의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원했던 꿈을 내려놓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위로와 격려의 마음. 조금만 비바람을 피해 버티고 나면 보장된 성공이 따라올 수도 있는 길을 떠나기로 한 결단력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도.
처음 마주한 좌절이라고 한다. MBC 간판 아나운서에서 파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1년 동안 아무런 일도 주지않는 한직으로 물러난 것이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그녀의 삶의 태도는 '주어진 보기 중에서 지금 꼭 해야하는 것 순서대로 처리하시오' 였다고 한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대학 생활 동안 아나운서에 도움 안되는 인턴, 봉사활동, 각종 대외활동은 하지도 않았다고. 그렇게 악착같이 이뤄낸 꿈이 자신의 노력 유무와 상관없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으니, 혹독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주어진 보기에 없는 길을 나선 것이 바로 퇴사 후 도쿄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책방을 내기로 한 것이라고 한다.
흘러가는대로 사는 삶
퇴사 후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악착같이 계획대로 살던 그녀는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아보기로 했다고. 책방을 내기로 한 후 부터는, (계획대로 할 수도 없거니와)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우연히 주어지는 기회들에 흘러가는 대로 맡겼다고 한다. 마포구 당인동에 책방을 내고, 책을 쓰고, 책 큐레이팅을 해보고, 이제는 위례에 두 번째 책방 낼 준비를 하는 것까지. 우연히 오는 기회들에 몸을 맡기면 또 다른 기회가 오는 그런 삶을 살고 있고, 이런 삶의 태도가 좋다고 한다.
회사생활 7년차인 나는 주어진 보기 중에서 뭐가 정답일지를 골똘히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다. 흘러가는대로 살기엔 이미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재미있어 보이는 일과 활동과 직업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걸 하려면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걸 놓아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지금 가진 것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사실 요즘 회사에 들어오는 후배들을 보면 오히려 과분하다. 진심), 혹여나 실패한다면 이젠 나에게 다시 시작할 시간이 남아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흘러가는대로 산다는 건, 지금 좋은 걸 좋아할 수 있는 용기다.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이 변해버렸을 때, 혹은 좋아하는 것이 바뀌었을 때, 그것을 놓을 수 있는 것은 큰 용기다.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보겠다는 것 역시도. <진작할 걸 그랬어>를 읽다보면 그녀가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가 느껴진다. 특히 도쿄의 작은 서점들을 둘러보며, 책을 파는 일, 즉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일에 반한듯 하다. 반했다고 해서 무작정 시작하기는 어려운데, 그걸 행동으로 옮겨버린 그녀의 용기가 새삼 대단하기도 했다. 그러한 결단력과 원동력이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아주 단순했다.
즐거운 일을 즐겁게 하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왜 이제야 알았을까. 앞으로 나와 우리 책방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벌써부터 50년 차 책방지기가 될 수 있을지를 미리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오늘 하루 더 즐겁게 책을 읽고, 책방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날까지 내가 책 파는 일을 더 많이 좋아해야지. 힘차게 휘파람을 불며.
지금 좋은 것을 해내는 힘은 그걸 더 좋아하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좋아하다보면 어느샌가 꾸준해지고, 그 길로 흐를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책에서 소개한 한 도쿄 서점 주인의 말도 일맥상통한데, 너무 좋아서 적어뒀다.
"책을 파는 것은 양배추를 파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처럼, 오히려 큰 기대없이 할 일을 해온 것이 쌓이고 쌓여 그의 인생을 이루었다. 그저 서점에서 일한다는 자체만으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대개 어떤 분야득 독하고 눈빛이 부리부리한 사람이 반짝 돋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마지막을 지키는 이는 대부분 시바타 씨처럼 진득한 사람이다.
"오늘 하루를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날은 거의 없어. 일본의 앞날을 한탄하거나 출판계의 미래를 근심하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생각하는 척은 하지. 하지만 곧바로 저녁밥을 생각하니까." 이 부분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는 일상적으로 책을 팔고, 집에 와서는 저녁밥을 챙겨 먹으며, 그렇게 생의 마지막 날까지 책과 함께 살았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아 저 부부, 너무 좋다' 였다. 책의 주된 내용이 아닌데도 살짝씩 등장하는 묘사만으로 부러웠는데, 두 부부가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보였다. 사족이지만, 꼭 비슷했던 느낌의 책이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였다. 빵집이 어쨌고, 그래서 자본주의가 어쨌고 보단 그 부부가 서로가 원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함께 나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잠들기 전에 책 읽는 즐거움을 공유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머리맡은 얼마나 황량했을까
결혼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잠들기 전에 함께 책을 읽다 스르르 잠드는 것이다. 평소에도 자기 전에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드는 걸 좋아하는데 (일단 잠이 진짜 잘오고 꿀잠잔다), 무엇보다도 책을 읽을수록 내가 가졌던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고 내 감정만이 아닌 상대의 감정까지도 헤아리는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이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사람인 것이 그가 책을 읽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활발한 친구들'에게 책을 강제로 읽혀도 보았지만, 대부분 "그래서 이 사람이 악당이야?"같은 일차원적인 감상으로 나를 좌절케 했다.
반면 남편은 혼자 책을 읽다가도 대뜸 이런 말을 한다. "이 부분을 읽는데 어제의 내 모습이 겹쳐졌어.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했어. 나는 결혼을 참 잘한 것 같다. 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책만 한 스승이 없다더니.
잠들기 전에 책 읽는 즐거움을 공유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머리맡은 얼마나 황량했을까.
바로 이런 것이다. 책은 다른 매체와 달리 오롯이 혼자 시간을 들여 읽어야한다. 그렇게 책 한권을 다 읽고나면 아무리 고집 쎈 사람이라도 분명 깨닫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책을 읽다보면 정말 도통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화나게 했던 누군가가 갑자기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곤 문자나 전화를 한다. "아까 이러저러해서, 미안했어..."라고. 이렇게 좋은 책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북토크에서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난다. "책이 좋은 걸 굳이 상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아요. 이게 왜 좋은지 말하지 않아도 그(오상진)도 알고있으니까." 아니 그래서 결론은 책 읽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