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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요덩이 Feb 26. 2017

[제 31장]

[2017년 2월 26일 - 근황]

주말 아침이다. 마지막 일기는 벌써 한 달 전 얘기였다.

주말에도 전시회 참여다 뭐다 하면서 바빴더니 시간은 빨리 간 것 같다. 몸이 피곤해서 그렇지...


지난 1월 말 경, 델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우담푸르라는 북부 지역으로 급 출장을 갔던 적이 있다. 그곳의 한 병원에서 우리 회사의 장비에 관심이 있었기에 갈 수밖에 없었는데, 장비의 부피나 규모가 있다 보니 차량으로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가 델리에서도 꽤 멀었기에 12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꼭두새벽부터 출발을 했는데 도착 하지 5시 반경이었다.

왕복 4차선 고속도로였지만, 산사태로 인해 2개 차선을 트럭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나도 조금만 빨리 도착했다면 산사태에 같이 휩쓸려 갔을 수도 있다.

영상에서 보이는 트럭들의 행렬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뉴스에 나올 정도로 컸던 이번 산사태로 지역 주민들은 고립되었고, 식량난까지 벌어지는 상황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이 우담푸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일단 이 지역이 파키스탄 국경과 매우 근접하게 위치해 있기에 군인들이 사방에 널려있었고, 군인들이 많다 보니 경찰 인력은 따로 없었다. 군인이 경찰의 역할도 같이 하고 있기에 군인의 영향력이 매우 큰 지역이었다.

두 번째 특이점은 야간에 통금이 있다는 점이다. 매우 작은 도시이지만, 파키스탄과 사이가 껄끄러운 상황에서 국경까지 인접해 있으니, 특별한 경우가 없으면 야간에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저녁 7시에 잠깐 나갔었는데 이미 모든 가게들이 장사를 접은 상황이었고, 지역에서 가장 크다는 슈퍼마켓도 서둘러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 그런지 역시 주류 백화점은 불이 켜져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얘기를 하자면, 인도에서는 주류 백화점에서 주류를 구매하는 것이 매우 흔한 일상이다. 일반 식당이나 업소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술 값의 50%에 해당하는 세금이 별도로 부과되기 때문에 정신을 놓고 몇 번 마시다 보면 돈 몇십만 원이 그 자리에서 증발해 버린다.

어찌 되었든 처음 보는 양주였고, 고주망태가 될 수준까지 마실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작은 병으로 구매를 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이틀에 걸쳐서 나눠 마셨었다.

사진 상으로 보면 스카치위스키라고 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두 번 다시 안 마시고 싶은 양주다. 같이 있던 파트너에게 무례한 한국인의 이미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이등병의 시절을 떠올리며 마셨다...

술이 워낙 독했기에 양주만 마시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그래서 둘째 날에는 전날 봤던 대형 슈퍼마켓에서 안주거리를 샀다. 이름하여 마탈 마살라 (Matar Masala), 그냥 번역하면 양념 완두콩 과자다.

매콤하면서 카레향이 섞여있는 완전 바삭바삭한 완두콩 과자였다. 생각보다 매우 양주와 잘 어울렸다. 그리고 저 한 봉지에 들어있는 양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질소를 구매하면 과자를 시식용으로 넣어주는 대단한 민국의 과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사진상으로 보면 매우 빵빵해 보이는데, 저게 다 내용물로 꽉 차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인도 과자이기에 매우 거부감이 들 거 같고, 포장도 헐크 피부색이랑 똑같기에 뭔가 확 당기는 비주얼은 아니지만, 이것보다 좋은 안주거리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찾기 매우 힘들기 때문에 다음 휴가 때는 몇 봉지를 구매해서 같이 가져갈 생각이다.

확실히 군부대가 많다 보니, 호텔 1층에서도 총포상이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외국인도 총기 소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총기 소유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소지할 수 있는 직업군도 매우 국한시켜 최대한 총기와 관련된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인도 정부의 모습이 돋보인다.

하지만 여기는 인도다. 총기를 구매할 수 없다면 만드는 곳이고, 일련번호를 지운 불법 총기류도 마음만 먹으면 구매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아무래도 남자라서 그런지,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총기를 구경하는 것도 꽤나 재밌었다. 분명 저 가게는 구멍가게 수준으로 작았지만, 안에 있었던 총의 종류는 1개 병력을 구성할 수준으로 다양했고 더군다나 가게 아저씨도 외국인이 관심을 가져주니 엄청 신나서 이것저것 막 설명을 해주었지만, 힌디어밖에 할 줄 몰랐기에 우리의 대화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요즘 내 아이폰이 빌빌거리면서 아파하고 있다. 쉽게 지쳐서 밥도 자주 먹여줘야 하고, 가끔은 힘들다고 통화도 끊어버리는 등 상태가 메롱메롱하다. 그래서 짧게 사용할 수 있는 뭔가를 찾다가 눈에 들어온 폰이 바로 블랙베리 패스포트이다.

사실 갤럭시 S8이 빨리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기에 30만 원대 핸드폰을 찾다가 구매하게 되었는데, 왜 다들 블베 병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블랙베리의 OS는 정말 쓰레기다. 폰이 출시된지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사양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을 키패드 하나로 다 무시해버릴 수 있다. 저 쿼티 키패드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쫀쫀함과 타격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빠지면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앱은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좋다. 이미 왓츠앱이나, 여러 앱들은 블랙배리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다. 간신히 안드로이드 어플이 몇 개 돌아가지만, 완벽한 수준은 아니고, 호환성 문제로 앱이 느린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경우는 안된다고 보면 된다.

키패드의 중독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장문의 메일을 쓰거나 카톡을 보낼 때 오타도 많이 나도 짜증 나는 경우도 많은데, 블랙베리의 경우 장문일 수록 신나서 키패드를 누른다. 딱 따닥 따다 딱... 여하튼 개신난다. 궁금하다면 내 블랙베리를 구매하여 사용해보시기 바란다.


도깨비는 이미 방종을 했지만, 난 아직도 도깨비 앓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깨비 OST를 들으면 아직도 몇몇 장면들이 떠오르고 혼자서 상상의 나라에 빠지기도 한다. 인도에 있기 때문에 감수성만 풍부해진 것 같다.

그러다 페북에서 이 사진을 봤다. 한국에 가면 써먹어봐야겠다.


이제 인도에 온지도 어언 반년을 지나 1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더 이상 길거리에서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는 소리에 예민해하지도 않고, 매일 아침 창문 앞에서 울어대는 까마귀와 비둘기랑은 친구가 된 것 같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들개들도 더 이상 더럽게 느껴지지 않고, 가끔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는 소도 너무 평범해 보인다.

인도에 적응을 해버린 것이지 어떻게 보면... 하지만 가끔은 무섭기도 하다. 이대로 살다가 한국을 가면 인도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게 될까 봐...

하지만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니까 뭐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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